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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傳家)의 보도(寶刀)’ na kim 201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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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傳家)의 보도(寶刀)’

 

전가의 보도라는 말을 아십니까? “.....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다.” 등으로 사용됩니다. 원래 이 말은 '傳家寶刀' ,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좋은 칼혹은 傳家之寶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삼국지에 보면 왕윤은 조조에게 전가의 보도인 칠성검을 건네었다.”와 같이 원래의 뜻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는 틈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자랑하곤 했다.”처럼 은유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좀 더 발전해서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병들에게는 휴가나 외박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습니다.”라든가 회식비를 어떻게 갹출할까 모두가 고민하고 있을 때 과장님이 법인카드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냈습니다.”등으로 사용됩니다.

 

여러분에게도 믿음이 흔들리거나, 감정에 격동이 있거나, 탐욕과 정욕으로 흔들리거나, 관계에 균열이 있거나... 그 어떤 신앙을 위협하는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전가의 보도가 있으십니까? 성경은 성도가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 비교불가, 반박불가, 대체불가의 무기, ‘전가의 보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안에 들어온 세상을 물리쳐야 합니다. 십자가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십자가를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성도와 성도의 관계에 존재하는 세상을 물리쳐야 합니다. 십자가입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에서, 관계에서,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내가 사는 세상에서 증거되고 확장되고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무장하고 싸워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 니까? 십자가로 싸우는 싸움, 그 싸움은 내가 더 크고 많고 강하고 무섭다는 것을 증명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무너뜨리고 박살내고 이겨먹는 싸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가장 무력하고 낮고 천했습니다. 가장 온유하고 겸손하며 친절하고 존중했습니다. 하늘과 자신과 사람에 대해 투명했고,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성도가 세상과의 모든 싸움에서 사용해야 하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면 우리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전가의 보도에 대해서 고민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전가의 보도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었지만 이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된 나라는 일본입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잘 아실 겁니다. 그들은 가문마다 검과 무를 숭상하는 전통이 있었고, 그 가문의 명예의 상징인 보도’(寶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가족 가운데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면 그 칼로 목을 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2차 대전 때 일본의 젊은 장교들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다는 각오로 가문의 명예의 상징인 전가의 보도를 들고 전쟁에 나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조상들이 나를 지킨다는 보이지 않는 든든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전가의 보도가 기술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수제로 대장간에서 만들어졌다는데 있습니다. 오랫동안 보물로 보관되면서 외양은 화려하고 폼은 나는데.... 실제로 질이 좋은 칼이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가문의 보물로 높은 부가가치와 희소성은 있지만 기능은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조상의 가호와 함께 칼을 휘둘렀는데 현대 공학이 만든 총이나 대량생산한 칼에 쉽게 부러지고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전가의 보도를 휘두른다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를 품게 됩니다. '잘 듣지도 않는데, 잘 듣는 것처럼 휘두르는 뻔하고 상투적인 논리나 방책'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시대,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전가의 보도를 사용했습니다. 율법이고 할례였습니다. 수천 년 그들을 지탱해왔고, 이제 십자가의 복음 앞에 녹슬고 이가 빠진 칼을 들고 그들의 전통과 생각을 지키겠다고 발버둥쳤습니다. 그런 녹슨 칼로는 결코 유대주의의 높은 장벽을 넘을 수 없고, 복음의 대로를 건설할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할 수 없는데.... 그들은 자신에게 있는 자랑거리를 포기하지 못해서 십자가라는 아름답고 귀한 가치를 품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전가의 보도는 그들을 망하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혹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라는 무기가 아닌, 내가 고집하고 포기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내가 이 세상을 좀 제대로 살아가려면... 적어도 이것은 있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꼭 붙들고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겠습니다. 아름다운 결단이 있어야겠습니다. 십자가, 하늘이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가 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무장하고 세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과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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