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9. 제2기 비전 - 1. “사람만이 희망이다.”(눅 17:21) | na kim | 2011-0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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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9. 주일 예배 설교
* 본 문 : 누가복음 17장 21절 말씀 * 제 목 : 제2기 비전 - 1. “사람만이 희망이다.”
대학을 다시던 시절,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읽으면 안된다는 금서가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학 중앙 도서관의 칸막이 시설이 된 열람실 한 구석에 앉아서 어렵게 구했던 금서를 읽으면서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결심을, 때로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게 가장 큰 충격으로, 그리고 눈물로 다가왔던 책 세권이 있었습니다.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집, 황석영 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광주 항쟁에 관한 기록, 그리고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었습니다. 문학을 배우며 시인으로서의 미래를 마음에 담고 있었던 때라 이 분들의 글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중 박노해 시인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고졸 출신의 노동자였고, 치열한 노동 현장의 삶을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로 이어지는 그의 시는 이제 막 사회에 대한 눈을 뜨던 시절, 제 양심과 신앙을 흔들었습니다. 내 이웃의 고통스런 신음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나도 이렇게 살수는 없다는 자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급변했습니다. 노동 운동의 이면에 있던 어두운 부분도 드러나게 되고, 시와 문학을 통해서만 보이던 시인이 개인의 생활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었을 때 많은 실망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언론에 의해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박노해 시인은 많은 부정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1991년 사노맹(사회주의 노동자 연맹) 사건으로 검거되었고 8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사회는 계속 변하고 있었고, 노동 운동의 현실도 변했으며, 사회 변혁을 꿈꾸던 이들의 관점도 변하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지 7년, 그는 그 동안 자신의 고민과 결단이 정리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습니다. 그 중에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는 이 짧고 간결한 시로 자신이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에 대한 생각과 반성을 요약했습니다. 이론과 투쟁의 시대가 지나가고 사람이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삶으로 새로운 세상을 먼저 살아가는 사람,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이 되는 사람, 새로운 세상이 그 사람의 가슴 속에, 그 사람 속에 있어서 그 사람을 보면 새 세상이 보이고,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이 보이고, 새 세상의 소망이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었습니다.
저는 최근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의 시는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와 관계없이 제게 큰 의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제가 섬기는 교회와 사역에서도, 우리가 함께 섬기고 이뤄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결국 사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헌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요, 사람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시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는 소돔과 고로라에 의인을 찾으시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을 만났던 하나님의 사자들은 소돔과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성에 만일 의인이 50명만 있다면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하겠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하여 천사들은 10명의 의인만 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인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대했던 것은 롯과 그의 아내와 딸들과 사위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던 사람들이 롯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을 수 있지만, 롯의 삶의 현실은 오히려 그가 소돔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선지자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예레미야 5:1) 아무리 사람을 찾고 또 찾아도 그 시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선지자의 절망이 표현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 사건을 잘 비교해 보십시오. 멸망과 구원에 대한 중요한 단서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혹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게 된 이유는 ‘악인’이 많아서입니까? ‘의인’이 없어서입니까?” 성경은 그것이 의인의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와 역사를 책임지도록 사명을 맡기신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것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안일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와 이 지역 사회는 날로 경건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있습니까? 날로 어둡고 악해집니까? 누구의 책임입니까? 누가 변해야 합니까?
2. 사람, 반복되는 실패와 포기할 수 없는 희망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가장 먼저, 가장 마지막까지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제일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들에게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셨고, 배신했던 그들을 다시 찾으셔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 대해 집요하신 분이십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님을 배신하고 피하려 해도 예수님은 그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거두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실패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에 대해 결코 실패하지도, 돌아서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그에 대해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실 뿐입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반복되는 배신과 실패를 하고 있는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먼저 예수님의 사람에 대한 관점은 우리들이 가진 일반적인 관점과 조금 달랐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한 사람이 가진 능력이나 업적은 그리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진 그 무엇, 이룬 그 무엇을 나도 원하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을 동경하는 이유는 그들만큼 예쁘고 멋있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요, 기업인을 동경하는 이유는 그들처럼 부자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을 끄는 사람들은 그런 능력이나 업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후 처음 만나시고 제자로 삼았던 사람들은 어부였고, 나아가 세리였습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그들을 택하시면서 부터 반복되는 실패의 가능성을 예상하셨을 것입니다. 소위 말해서 기본적인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상태,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 혹은 유대 귀족들에 비해 가진 것 없고 자질 없고 능력 없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인류의 모습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없으면 안되는 사람들, 계속 돌아서고 퇴보하고 물러서는 사람들 - 예수님은 그들을 택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훈련시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시작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반석의 역할을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베드로가 반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한 베드로 안에 두신 교회를 향한 우리 주님의 뜻이 반석이 되고, 그 신앙의 고백이 기둥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한 신앙을 고백하는 주체가 되는 사람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에 두신 희망을 거두지 않고, 죽기까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까지,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너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저는 조금 전에 여러분께 이 세상이 날로 악해진다면, 점점 어두워진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지 물었습니다. 세상에 악인이 점점 많아져서입니까? 의인으로 부르신 우리들이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어둠이 더 짙어져서 세상이 어둡습니까? 등불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해서입니까?
예수님은 자꾸만 돌아서는 제자들을 복음 앞으로 돌려세우면서 그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눅 17:21) 너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너희들이 나와 함께 그 나라의 주인인데 너희들은 왜 자꾸만 그 나라로부터 돌아서려 하느냐? 만일 너희들의 삶이 그 나라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나라가 너희들에게 불편하다면 너희들은 자신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너희 내면을 변화시키고 너희 관계를 변화시키고 너희 소원을 변화시켜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 속에 이미 들어와 있으므로 그 나라에 합당하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훈련시켜서 참된 나의 제자가 되라!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신 호소입니다. 이미 그들은 부르심과 택하심 가운데 있고,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변화와 훈련을 통해서 그들의 성장과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 나눠드린 요람을 보셨습니까? 저희 교회 제 2기 사역의 Key word는 ‘빛’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이제 이 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한편으로는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사실 저희 예수님이 제자들에 대해 하셨던 일이 바로 그 일이요, 우리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먼저 스스로 준비되고 서로를 격려하여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나 관계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할 것입니다. 정말 실망스러운 상황, 부끄러운 상황 속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른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실망하지도,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부끄러워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 실망스러운 존재일 수 있지만, 우리 주님은 그럴수록 우리를 더 무겁게 책임지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이며,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4. 결국 사람입니다.
저는 올해 저희 교회 서리 집사로 임명받는 분들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가 있습니다. 조용행 집사님, 조재란 집사님 - 하나님이 이 두 분을 만나신 과정과 이 두 분이 주님 앞으로 나오는 과정을 우리는 압니다. 몇 년 전 세례를 받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리고 이제 집사로 임명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가정 안에 이미 임했다는 증거입니다. 박명희 집사님은 등록하시기 전부터 여러 가지 모습으로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저 먼 곳에서 교회에 출석하시고 그 어떤 성도보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시는 모습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김희자 집사님은 이상열 집사님과 더불어 저와 오랫동안 교제했습니다. 이렇게 같은 교회를 섬기고 집사로 임명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두 분은 이미 한 사람의 헌신과 수고가 교회 전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경철, 김윤희 집사님도 볼 때마다 참 즐겁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고, 열심히 섬기고자 하는 모습이 오히려 모든 성도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김길구, 권위자 집사님이 교회에 합류하시고 또 여러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은 교회에 큰 힘이 됩니다. 참 기대가 큽니다. 김문성, 김나래 집사를 보면서도 참 감사합니다. 저보다 성도 여러분들이 더 이 두 분과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시 기대가 큽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왜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배신당하시면서 계속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 줄 아시겠습니까? 사람이 곧 교회요,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시고 만나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변화시켜서 교회가 되며, 훈련시켜서 제자가 됩니다. 그들의 말씀의 섬김과 삶의 나눔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결국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의 변화와 성장이 우리 주님의 사역의 핵심이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면서,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본성인 것입니다.
2011년, 희망차게 시작합니다. 옆을 보십시오. 서로에게 인사해 봅시다.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 믿음, 이 고백대로 2011년에 함께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아름다운 빛으로 세상을 더욱 밝게 섬기는 초대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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