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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4 정사예배: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na kim 2017.4.16 조회 602

2017. 4. 14. 정사 예배

 

* 본 문 ; 요한복음 1312-17절 말씀

* 제 목 :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우리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한 주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아니면 다른 한 주간과 다름없이 바쁘게, 정신없이 사셨습니까?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여러 절기를 지키지 않는 대신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 한 주간의 시간이 구약의 모든 절기들보다 의미 있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해본들,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전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한 주간을 보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바쁘면 잘 잊기 때문이고, 내게 직접 이익이 되거나 피해가 되지 않으면 소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고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한 가지 드릴까 합니다. 우리가 흔히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한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진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진다....’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랐던 구레네 시몬처럼 우리도 정말 십자가를 만들어서 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 고통을 몸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도 이렇게 십자가를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요?(사진 1,2,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서 추상적인 십자가가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제자들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시청각이기도 하고 체험교육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을 이후에 교회는 세족식’(洗足式)이라고 했습니다. 발을 씻는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난 다음 아직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3:12)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세족식을 하신 이유, 이 질문을 하신 이유, 이 질문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1. 발을 씻기시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일까요? 오늘 본문 이전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세족식은 분명히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행하신 행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이 왜곡됩니다. 그들 중에 한 제자가 있어서 이미 예수님을 유대의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배반과 계획을 알고 계셨습니다. 3절을 보면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아시고, 4절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물을 담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했습니다. , 가룟 유다의 배신과 예수님의 세속식은 일정한 관련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는 일을 말립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하실 일이 아니라 종들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13:6-8)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록 지금은 예수님이 그들의 발을 씻기시는 이유와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래도 주저하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2절에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이 일의 의미를 너희가 알겠느냐?” 여러분은 이 질문을 누구에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베드로에게 한 것이요, 요한에게 한 것이고, 도마에게 한 것이고... 다른 모든 제자에게 한 것이고, 그리고 그 마음에 배반을 품은 가룟 유다에게도 한 것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마지막 자비의 기회, 마음을 돌이킬 기회... 이 예식의 이유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곧 우리들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2. 세례와 세족

 

이후에 카톨릭 교회는 세족식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세족식은 가톨릭 교회가 하는 공식적인 의식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이 있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다는 성경의 기사를 본 받아서 성목요일, 실은 어제 행했어야 합니다. 개혁교회에서는 굳이 예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예전이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적 의미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많이 축소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족식은 오랫동안 개신교회에서는 없었던 예식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세례식이나 성찬식처럼 공식적인 예전으로 행하기 보다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나 수련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많이 사용하고 있지요.

 

, 그렇다면 세족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행하신 여러 가지 예식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시고 제일 먼저 하시는 것은 어떤 예식이었을까요? 바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세례식, 이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죄를 씻고 하나님 안에서 새생명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3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제자로, 그리고 미리 교회의 지도자로 훈련받습니다. 그 중에 그들이 마을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직접 주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세례 이후에도 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 안에서 거룩해졌기 때문에 제자로 선택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어부였고, 세리였는데 예수님이 그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거룩한 소망을 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치관, 습관, 성품은 아직도 옛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천국에서 누가 더 높고 큰 제자인지 다투고 논쟁했습니다. 그들 중 한 제자는 결국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 예수님을 만나서 이루기를 원했던 그의 꿈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되자 예수님을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에게 세족의 의식을 직접 실천하십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세례는 씻김의 예식이라면 세족은 그들이 지키고 본받아야 할 삶의 가치관, 사역의 태도에 대한 실천적인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세족의 예식을 행하심으로 그들에게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몸으로 배우게 하십니다.

 

3. “내가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먼저 본을 보이십니다. 14-15절을 봅시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교과서가 없습니다. 보고 배우고 실천하면서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3년간 그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와 가치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마지막 그들을 위해 섬기시는 날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누가 높은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를 논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의 주와 선생이지만 너희들의 발을 씻긴다. 이제 너희들도 서로의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었느냐? 내가 이렇게 해서 너희들에게 본을 보여서 너희들이 본받고 따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희들은 여전히 높은 것, 많은 것, 큰 것을 원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낮고 헌신하고 섬기기를 원한단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곳에 있단다. 너희가 나의 제자라면 이제 나와 함께 저 낮은 곳.. 십자가의 길로 가자.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러분! 우리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선언할 수 있고,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 말고, 말 말고, 자신이 무엇을 믿는가 말고.... 우리는 가치관과 삶의 태도로 예수님과 우리가 같은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4.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3:17)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알고, 세족식의 의미를 깨닫고... 그리고 이것을 삶에서 실천하면 그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복으로 받고 실천할 것인가? 이것을 내가 원하는 복이 아니라고 거부할 것인가? 우리의 신앙과 삶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과 함께 성찬을 나누고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셨던 제자 중 한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마음 속에 품었던 반역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달려갑니다. 이 말씀을 들은 어떤 제자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어떤 제자는 의심합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어떤 제자는 아버지를 보여 주면 말씀을 믿겠다고 떼를 씁니다. 어떤 제자는 모든 세상이 밝히 알도록 잘 설명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시는지, 왜 십자가를 지기 전에 세족의 예식을 행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그들의 마지막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세월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인도했던 제자 베드로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교회와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서고 복음이 증거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제 순교를 앞두고 흩어진 교회에 편지로 복음을 전합니다. 자신이 버리고 갔던 십자가, 주님께서 홀로 지셨던 십자가... 이제 성령 하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삶으로 배우고 실천했습니다. 곧 다가올 순교의 시간을 바라보며 베드로는 흩어진 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다시 십자가를 가르칩니다. 마치 유언과도 같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던 말씀과 같은 말씀을 함께 읽읍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7-11)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를 지는 길 - 예수님은 세족식을 통해 보여주셨고, 베드로는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서로 대접하고 섬겨야 합니다. 마치 주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긴 것처럼 베드로가 초대교회를 섬겼고, 초대교회는 이웃과 시대를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그렇게 증거되고 증명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섬김의 역사의 마지막에 여러분과 제가 있고 우리 초대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사랑과 섬김을 알고 행하면... 십자가를 지면... 서로의 발을 씻기면... 그것이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의 주간에 허락하신 이 거룩한 복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엎드려 서로의 발을, 세상의 발을 씻기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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