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승리 vs 부활신앙
- 김나래 2023.4.9 조회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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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승리 vs. 부활신앙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서 ‘정신승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지 아빠가 거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 형제들끼리 재산 다툼이나 하고 말이야... 우리처럼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오순도순 사는 것이 행복한거야...” 혹은 축구경기에서 패배했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졌지만 잘싸웠어...” 비록 현실에서 패배했지만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을 ‘정신승리’라고 말합니다. 이 개념은 루신의 ‘아큐정전’이라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주인공 아큐는 깡패들에게 맞고 난 다음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내가 싸울 수도 있는데.... 아들뻘 되는 녀석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차라리 맞아 주는게 나아....” 그리고 그는 상황이 바뀌어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즉 강자를 만나면 정신적으로 승리하고 약자 앞에서는 실제적인 승리를 원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신승리가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오늘 비참하고 힘든 삶을 위로하며 서로에게 말합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힘들고 험한 삶을 살지만 우리에게는 천국이 예비되어 있어. 하나님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셔...” 이 말은 맞는 말이면서도 고민해야 할 말입니다. 이 말이 정신승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활의 신앙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넘어서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2000년 전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이면서 우리의 미래에 있을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있었던 부활이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들에게도 있을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즉 부활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이 우리에게 있을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딱 그기까지 그칠 때.... 우리의 부활신앙은 정신승리에 불과합니다. 부활신앙이 오늘 나의 현재적인 삶에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나의 인격과 가치와 지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부활을 알고 예수를 믿되 부활신앙의 능력을 부정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것처럼 나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었고, 나의 새사람이 예수 안에서 예수를 위해 지금 살고 있음을 고백하고 증명하지 못한다면.... 나의 부활신앙이 현재적인 의미와 증거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큐의 정신승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영생을 얻을 것이고, 부활 할 것이고... 그것은 나중에 나에게 일어날 것이고.... 현재 나는 이 세상에 대해 타협하고 패배하고 세상과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산다면 말입니다.
목회자들을 만나면 모두가 걱정하고 고민합니다. 교회에 청년들이 없습니다. 성도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학교에 정원이 차지 않습니다. 원하면 누구나 다 합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오늘날 현대교회가 부활을 알고 믿음은 있는데..... 부활의 믿음으로 교회가, 성도가 살지 않기 때문에.... 부활은 미래에 있을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부활의 신앙이 나의 현재의 삶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의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부활의 신앙으로 살지 않으면서 부활할 것이라는 정신승리만 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교회와 성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확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을 증거하는 책임을 교회에 위임하셨습니다. 너희는 땅끝까지 가서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증인,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삶의 증인이 될 의무와 책임이 오늘 교회에 있고 성도들에게 있고, 여러분과 제게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내가 부활할거예요... 내가 영생할거예요...나는 부활과 영생을 믿어요.....라고 주장하면 될까요? 부활과 영생에 대해 정신승리를 하면 될까요? 우리가 부활신앙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의 삶에 구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정신승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예수가 살아나야 합니다. 내가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가치, 예수의 질서, 예수의 선택이 나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비로소 우리가 부활의 신앙으로 오늘을 산다고 말할 수 있고, 증인의 삶을 산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서 오늘 예수가 살고, 내가 예수 안에서 오늘을 사는 은혜가 초대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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