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옵’ vs. ‘옵시’
- 김나래 2023.4.23 조회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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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옵’ vs. ‘옵시’
제가 매일 새벽기도를 마칠 때마다 하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할 때 혹 실수를 할까봐 가능하면 성경 맨 앞장을 펴서 읽습니다. 눈을 감고 암송을 하면 너무 빨리 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천천히 성도들 속도에 맞춰서 읽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는 주기도문을 읽을 때... 고민이 됩니다. 주기도문의 하반부를 보실까요? 제가 사용하는 이 성경에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구하시옵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될텐데... 저는 언제부터인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주시옵고’가 아니라 ‘주옵시고’라고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불편했습니다.
사전적으로 어느 말이 맞는지 찾아봤습니다. 결과는.... 둘 다 사용할 수 있다.... 의미와 사용에 차이가 없다...였습니다. 그래도 책에 적힌 대로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나는 왜 책과 다르게 입력이 되었을까...? 불편함을 느끼면서 생각하는 중에 서광이 비춰왔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다른 성경책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성경책 첫 페이지에는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는 겁니다. 그 날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날부터 강대상에는 그 성경책이 올려져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 성경책에 인쇄된 대로 주기도문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했습니다. 두 성경책은 각 출판사의 판단을 따라 ‘옵시’와 ‘시옵’으로 했다고 치고, 주기도문이 기록된 마태복음 6장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물론 번역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두둥~~ 저는 마태복음 6장에 소개되는 주기도문의 원문이 궁금했습니다. ‘시옵’ vs. ‘옵시’.... 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결과는 ‘시옵’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다시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습관의 문제입니다. 언제부터 왜 저는 주기도문을 그렇게 암송했을까요? 잘 모르겠는데 그것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작심하고 ‘주시옵고....’라고 했더니 그 다음 구절에서 버벅거리기도 했습니다. 은근히 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의미있는 문제가 아닐텐데... 저는 저의 오래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은근히 싫었습니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제가 너무 제 편에서 문제를 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성경 앞부분에 그렇게 적혀 있으면 아... 내가 잘못알고 있었구나... 하고 고치면 될 일인데, 여기저기를 찾아보고 사전을 뒤져보고.... 너무 저 자신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바꾸지 않고 내가 옳은 것처럼 주장을 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정말 많이 내편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요즘 ‘공정’(公正) 혹은 ‘공평’(公平)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사실 이 말은 개념으로는 존재할 수 있지만 우리들의 실재적인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공평무사(公平無私)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자기 편에서 생각하고 자기 경험에 근거해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관계에도 집착하고 자신의 이익 혹은 입장을 강화시키려 합니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 작은 이익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으려는 마음,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롭기란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완전한 공정과 공평을 자신할 수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비워서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의 편에 서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에 대해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시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없다면, 그가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는 인류에게 제대로 설명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셨습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실현되었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주옵시고’ 하나 오랜 습관으로 제대로 포기 못하는 제게 주님의 뒤를 따르는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내 삶을 하나님의 온전한 공평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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