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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케하시는 원리 김나래 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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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케하시는 원리

 

존 로울스라는 학자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어떤 지위를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어떤 이웃을 만나야 하는지 걱정해야 한다면 아직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고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로 가는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교육, 경제, 정치 등의 모든 분야에서 불평등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사람은 서로에 대해 평등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 대해 공평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설명합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전 7:29)

 

하나님은 사람을 평등하게 지으시고 공평하게 살도록 하셨으나 사람은 욕망과 이기심으로 세상의 질서를 왜곡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그렇습니다.  태어나보니 켄싱턴 골목에서 날마다 마약과 범죄가 일상화된 이웃들을 만나고 있을 수 있고, 태어나보니 나바호 황량한 벌판에서 ‘Pain and Sadness’의 삶을 살고 있을 수 있고, 태어나보니 아프리카 가난과 질병과 수백년의 수탈의 역사를 유산으로 안고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누리고 있는 권리와 유익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덜 누리는 권리와 유익에 집중해서 늘 불평등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만듭니다.  비교하여 더 많이 누리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미안해하는 마음이 없고, 비교하여 덜 누리는 것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현대교회는 이 원리에 적응해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와 교회가 경쟁하고 교회와 교회 사이에 높은 담장을 세웠습니다.  세상보다 더 세상 같은 교회가 되었고, 세상보다 더 세상 같은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만든 ‘꾀’가 교회와 성도의 삶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질서 속에 살아갈 때 하나님은 나의 삶에 대해 지극히 불공평하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기회를 독식하고 그들의 욕심보다 더 많은 재물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득실거립니다.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삶의 불공평함을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 대해 하나님은 다시 공평하게 하는 원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공평의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평균케 하려 함이니...”(고전 8:9-14) 

 

고린도교회는 은사와 물질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늘 불평했습니다.  서로 경쟁했습니다.  1)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와 은사를 풍족하게 허락하셨으나 그들은 늘 갈급했고 부족했습니다.  2)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먼저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고, 예수의 가난은 그들의 풍요로운 은혜가 되었습니다.  3) 이제 그들의 차례입니다.  예수를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균케 하시는 은혜, 공평하게 하시는 삶에 동참해야 합니다.  4) 이 은혜는 모두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할 마음이 있는 성도들이 이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가 허락되었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그 은혜를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공평케하시는 은혜를 십자가를 통해서 허락하셨습니다.  그의 가난하게 되심이 우리의 풍요와 만족이 됩니다.  그를 본받는 우리의 삶이 그의 풍요한 은혜에 동참하는 길이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원리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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