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014 다니엘 프로젝트 - 2. 형제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 na kim | 2014-04-08 | |||
|
|||||
2014. 4. 6. 본 문 : 다니엘 2:17-18 제 목 : 다니엘 프로젝트 – 2. 형제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작년 단기 선교를 다녀와서 제가 여러분께 해드린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리조나 사막에 사는 코요테에 관한 것입니다. 기억 나십니까? Black Falls Bible Church 교회당 밖에 있던 Pavilion에서 잠을 자던 남자 아이들과 집사님이 교회당 주변 사막에서 들려오던 코요테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막을 떠도는 코요테가 염소나 양들을 노리고 원주민 마을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고픈 코요테가 울면 동네 개들이 함께 짖어대는 바람에 아주 시끄러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들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자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남자 아이들이라 겁을 먹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다들 밖에서 자겠다고 만용을 부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뭔가 쑥덕대다가 한명씩 들어와서 무엇인가를 챙겨서 나갔습니다. 가일이를 붙들고는 뭘 들고 나가는지 물어봤습니다. 나무젓가락이었습니다. 무엇에 쓰려고 그걸 들고 나가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을 듣고는 함참 웃었습니다. 서로 의논을 했답니다. 혹시나 코요테가 덤비면 어떻게할까....? 결론은 “한쪽 팔을 내주고 젓가락으로 눈을 찌른다”였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다들 비장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하나씩 들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그날 결국 모두 식당으로 들어와서 잠을 잤습니다. 1. 삶은 늘 위기 속에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 교회는 단기 선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매년 단기 선교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첫 해에는 제가 타고 가던 차 타이어가 광야 한 가운데서 터져서 고생을 했구요, 정은미 집사가 사막 거미에 물린 팔에 박테이라에 감염이 되어서 퉁퉁 붓기도 했습니다. 오는 길에 응급 병원을 찾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나름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두 번째 해에는 무난하게 일정이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비행기로 먼 길을 오고가는 과정과 라스베가스에 내려서 차로 선교지까지 이동하는 과정, 그리고 선교 현지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새로운 상황을 만났고 선택과 결정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늘 위기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 애써 위기를 외면하기도 하고, 때로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그네 인생을 사는 우리들 모두는 위기 가까이에 우리의 삶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위기에 대해 늘 반응합니다. 나무젓가락을 준비하기도 하고, 야구 방망이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위기를 외면했다가 사막 거미에 물리고 박테리아에 감염이 되기도 하고, 타이어가 터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준비를 잘 하려고 해도 내가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늘 다양하고 커서 위기 속에 헤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위기의 인생을 살면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은 얼마나 안전합니까? 무엇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무엇이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2. 위기와 선택 다니엘서는 유다왕 여호야김 3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근동지방을 지배하던 잔인한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합니다.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무너집니다.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갑니다. 다니엘서는 나라를 잃고 고향과 가족을 잃은 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과연 어떤 마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요즘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를 그들의 심리적인 상황에 적용해 보십시오. 눈 앞에서 예루살렘 성이 불타고 성전이 무너지고 부모와 이별했습니다. 원수의 나라에 잡혀와서 3년간 원수의 나라의 왕의 궁에서 그가 주는 음식을 먹고 그 나라의 문화를 공부해야 했고, 3년이 지나면 왕 앞에 서야 합니다. 왕 앞에 서면 잘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잔인했던 느부갓네살왕이 마음이 변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혹시 삶에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이미 심각한 위기 속에 있었던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 위기에 대한 해석을 달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함께 포로가 되어 잡혀갔던 다른 유대인들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신앙을 버리는 선택을 할 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생명을 잃는 것이 위기가 아니라 신앙을 잃는 것이 위기라고 믿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것이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 위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허락한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3년간 채식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믿음을 지키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또 한번의 위기가 닥칩니다. 이 위기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어느날 꿈을 꾸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앞으로 있을 일들과 종말에 관한 어떤 꿈을 꾼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을 불러서 자신의 꿈을 알아맞히고 그리고 해석하라고 명령합니다. 술사들에게 자신이 꾼 꿈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참된 신을 믿는 술사라면 꿈을 알아맞히고 그리고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왕은 바벨론에 있는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단 2:12-13을 보십시오. “왕이 이로 말미암아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 명령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단 2:12-13)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피할 길이 없습니다. 같이 죽임 당할 것입니다. 이전에는 위기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제는 다른 해석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이 때 다니엘은 세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 왕에게 들어가서 자신이 꿈을 해석할테니 시간을 달라고 말합니다. 둘째, 친구들에게 찾아가서 상황을 알리고 함께 기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셋째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합니다. 첫째, 문제를 직면하고, 둘째 함께 문제를 해결할 동지들을 구하고, 셋째 그 동지들과 함께 문제 해결의 능력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친구들과 함께 함께 하나님께 엎드리다. 저는 다니엘서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주는 두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는 다니엘서가 그저 다니엘 한 사람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의 땅,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방의 불합리하고 무자비한 권력에 희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문제를 직시합니다. 이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문제도 아닙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함께 기도해야 할 문제로 인식합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가 아니라, 염려와 걱정이 아니라 기도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본 그는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포로의 땅에서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 함께 뜻을 모으던 사람들, 함께 위기를 경험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온 신앙의 동지들을 찾습니다. 다니엘은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제게 여러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세 친구를 허락하셔서 생명의 위기 속에서 함께 기도하게 하신 것처럼 이 원수의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은 제게 여러분을 허락하셨습니다. 함께 기도하게 하시고 예배하게 하시고 위로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여러분 모두를 허락하셨습니다. 저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위기를 경험하고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노래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서가 단순히 2600년 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 청년들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과 저의 이야기이며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의 이야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눈물과 피와 땀을 쏟으며 기도하실 때 졸고 자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거듭 그들을 깨우시면서 기도할 것을 부탁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왜 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을까요? 그렇게 어리석은 자들에게, 그렇게 연약한 자들에게 왜 기도를 부탁하신 것일까요? 그들의 기도가 없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해 실패하셨을까요? 그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힘도 용기도 얻을 수 없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기도하고 서로를 도와야 할 필요에 대해 가르치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십자가 사역이 실패하거나 제자들이 십자가 지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해서 십자가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들이 함께 기도함으로 십자가를 지는 일에 서로 동지됨을 가르치셨습니다. 함께 기도함으로 십자가를 지는 일에 서로가 영적인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4. 위기 속에 핀 구원의 꽃 그리고 오늘 본문이 주는 두 번째 메세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위기가 한번 오고 그치지 않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삶에도 거듭 위기가 닥칩니다. 이번에는 그들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살고 있는 모든 지혜자들이 함께 당하는 위기였습니다. 이전에 유대에서 잡혀왔던 모든 왕족들과 귀족들은 그들에게 다가온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각자 살 길을 찾아서 굴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한번은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하게 굴복해서 위기를 넘길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를 않습니다. 세상은 거듭 그들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과거의 그 방법을 다시 한번 사용해볼까요? 느부갓네살에 굴복하고 그를 찬양해볼까요? 오히려 더 잔혹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위기를 벗어날 길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그때 다니엘과 세친구가 바벨론 역사의 전면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이 문제가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함께 유대에서 잡혀왔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버렸던 하나님, 바벨론에 굴종하면서 외면했었던 하나님, 느부갓네살이 주는 진미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잊기로 작정했었던 하나님, 오직 다니엘과 세 친구만이 거룩한 뜻을 품고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지켰던 그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함으로 위기를 피했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이 네 청년은 하나님만이 참된 피난처요 산성이요 바위이심을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생명의 위기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택이 결국 그들 모두를 구원하는 길이었음을 지금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멋있는 청년들입니다.
저는 그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다니엘이 허급지급 세 친구가 있는 숙소로 달려갑니다. “자...빨리 이리 모여봐. 일이 급하게 되었네. 지금 느누갓네살 왕의 진노를 아무도 막을 수 없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가 아주 무서운 꿈을 꾸고는 잔뜩 겁을 먹고 있네.... 그 꿈을 알아내고 해석해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네. 그걸 누군가가 알아내고 해석하지 않으면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동료들도 죽게 되고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와 술사들도 죽임 당하게 될 것이야...” “그래, 다니엘, 자네는 어떻게 하면 좋겠나...” “기도해야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해야지. 자네들 나와 함께 기도해줄거지? 우리 함께 기도하는거지?” “그래, 답은 우리 하나님께 있지. 우리 함께 기도하세!” 그리고 그 네 명의 청년들이 서로 손을 잡고 무릎을 맞대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각자의 무릎을 적시고 바닥을 적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적십니다.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원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한마디 한마디 거룩한 씨앗으로 심깁니다. 그들이 기도를 마칩니다. 고개를 들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그 얼굴은 바로 최장로님의 얼굴이요,, 오장로님의 얼굴이요, 정장로님의 얼굴이요, 여기 여러 장로님들의 얼굴이요 권사님들의 예쁜 얼굴이요 우리 집사님들의 얼굴이며 우리 청년들의 푸른 얼굴이며 우리들의 자녀들의 얼굴입니다. 그런 상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거룩한 뜻을 품고 하나님을 지킨 사람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 되어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이 시대를 위해 기도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그림.... 함께 뜨거운 가슴을 맞대고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뜨거운 초대교회 공동체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가슴을 만져봅니다. 거룩한 뜻이 아직도 내 안에서 불타고 있는지, 그래서 그 뜻으로 살기로 결단하고 있는지... 허락하신 거룩한 뜻에 내 삶을 두고 헌신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그 뜻 이루어지도록 함께 마음으로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