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가 되라. | 이응도 | 2017-0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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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자가 되라.’ 모세는 나이 40일 때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큰 꿈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애굽의 관리를 죽이고 한 히브리인을 구해줍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히브리인과 다른 히브리인의 분쟁을 목격합니다. 모세는 “네게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고 꾸짖습니다. 그런데 그 히브리인의 반응이 무섭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주재와 법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사람을 죽였던 것처럼 나도 죽이려고 하느냐!”(출 2:14)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히브리인을 도운 것, 그들 사이에서 분쟁을 해결하려 하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정말 위험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그의 선택의 대상이 된 히브리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대적으로 거절합니다. 모세는 그들에 대해 처절하게 실패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위협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 간 목자로 살게 됩니다. 모세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가 그렇게 가진 모든 것을 헌신하고 드리려고 했는데 왜 백성들은 그를 거절했고,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내몰아가셨을까요? 생각해보면 모세는 참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그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모세가 나이 40일 때, 그는 자신감이 가장 충만했을 터이고, 이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선택한 이때가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때와 관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맞는지, 자신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으로 잘 준비되었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동족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모세가 히브리 동족들을 대하면서 애굽의 왕자로서 살아왔던 삶의 태도를 그대로 가지고 대했던 것 같습니다. 애굽의 왕자이면 히브리인들의 지도자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역에 자신이 주인공이 될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시기도 자신이 선택하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사역 –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지지하실까요? 모세는 광야 생활 중에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짓습니다. 게르솜은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이 그 부모의 신앙의 고백인 경우가 많습니다. 게르솜 역시 당시 모세의 삶과 신앙이 묻어나는 이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지중해 주변에는 주권 국가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고, 그러한 주권 국가의 국민이 되지 못하거나 혹은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을 때, 혹은 기근이 생기고 혹은 전쟁이 생겼을 때 많은 사람들은 광야로, 산으로,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았습니다. 때로 이유 없이 죽임 당하기도 하고, 때로 노예가 되기도 하고, 뜨거운 광야에서 이름 없이 죽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낭만적인 나그네가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실패하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유랑민이요,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인정받을 수 없는 하찮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모세가 아들을 낳고 자기 아내와 장인과 그리고 그 아들 앞에서 자신을 고백합니다.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일이 없고, 이룬 일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나그네입니다. 자신의 모든 지위와 자격과 기득권과 자부심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을‘게르솜’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비로소 ‘히브리인’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노예이며 나그네이며 애굽의 노동현장에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며, 가진 어떤 능력과 자격과 가능성도 없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면 안되는 사람,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사모하는 사람, 내가 더 높아서 더 잘나서 더 많아 가져서 가르치고 지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며 나도 노예요 나그네인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 사명을 감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주재와 판관으로 히브리인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낮아지고 더 가난하고 더 가진 것이 없어서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고백입니다. 이전에 풍성하게 가졌던 모든 것이 광야와 세월 앞에 비워지고, 이전에 없었던 단 한 가지가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겸손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시고 그를 드디어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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