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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異邦人)을 향한 복음 na kim 20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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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異邦人)을 향한 복음

 

알베르토 까뮈의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인류가 즐기고 있는 현대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팔렸습니다. 소설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마치 제 3자가 아무런 감정 없이 읊조리듯 풀어갑니다. 소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950년 대 프랑스가 다스리던 알제리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뫼르소는 어느 날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그는 한 방울도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담배를 나눠 피며 여자 친구와 장난을 치고 심지어 성관계를 하기도 합니다. 장례식을 마친 다음날 그 동네에서 사는 불량배와 친구가 되어 어울리고, 함께 해변에 갔다가 그 친구와 다투는 한 아랍인을 총으로 쏴서 죽입니다. 그는 재판을 받습니다. 당시에는 프랑스인들이 알제리인들에 대해 저지르는 범죄가 많았고, 대부분 프랑스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뫼르소 또한 관대한 판결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태도가 언급됩니다. 여론이 나빠집니다. 재판관이 그에게 묻습니다, “왜 해변에서 아랍인을 죽였습니까?” 그는 그때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생명에 관해서도, 심지어 자신의 범죄와 그 결과에 대해서도 마치 아무 감정이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재판은 점점 불리해지고, 친척들과 변호사는 그에게 살인의 동기에 대해 설명이 가능한 이유를 찾아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때 정말 눈이 부셔서 짜증이 났고, 그를 총으로 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사형이 선고됩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겠다는 신부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이 사형 당해야 할 사람임을 주장하면서 형장의 이슬이 됩니다.

 

이 소설이 발표되자 20세기에 있었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유럽의 젊은이들은 열광합니다. 소설에 발표된 1942,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에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수많은 청년들이 이데올로기와 국가 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되어서 전쟁터에서 서로를 죽이고 죽었습니다. 당시 제국들이 내세웠던 전쟁의 이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독일의 나찌즘이나 아탈리아의 파시즘이나 일본의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결국 그들의 국가이기주의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는 것은 각 나라의 청년들이었고, 이익을 보는 집단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전쟁이라는 집단적, 합법적 살인의 수많은 이유들은 모두 이기심을 포장한 거짓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뫼르소라는 한 청년이 프랑스가 점령한 식민지 알제리에서 살다가 죽이고 죽습니다. 그는 왜 살인을 하고 왜 능동적으로 사형을 선택할까요? 그 이유는 그가 살아온 이전의 삶에 있습니다. 그 시대가 그에게 남긴 수많은 상처들이 그로 하여금 그런 삶을 선택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유럽의 청년들은 이 소설에서 자신들을 발견합니다. 부조리한 이유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그 시대의 청년들,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했고, 또 죽을 수도 있는.... 뫼르소는 바로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청년들이 뫼르소의 살인과 죽음을 그 시대를 향한 구원의 메시지로 읽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시대는 오늘날도 반복됩니다. 올해에도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는 수많은 총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매년 500여명이 총기 사건으로 생명을 잃습니다. 총기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들의 내면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원래 악마이고 살인마일까요? 그들이 분노조절에 실패했고, 모방범죄를 했고, 평소에 성품에 문제가 있고... 언론에서는 그 원인을 다양하게 추측해보지만 실은 그 어떤 이유도 총기를 사용해서 익명의 다수를 죽이는 일에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지난 주 시리아를 폭격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던 시리아 정부군이 민간에 대해 대량화학살상무기를 사용했고, 미국은 그것을 응징했습니다. 러시아와 미국이 대립하고 중동과 중국이 긴장하고 앞으로 있을 북미협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속에서 화학무기에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은, 폭격에 죽는 민간인들은 그들의 죽음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각국이 주장하는 전쟁이라는 합법적인 수단과 각 나라에서 일어나는 테러라는 반합법적인 폭력 속에서 희생당하는 현대인들의 절망과 분노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들 모두가 이방인일 수 있고, 우리들 모두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복음을 생각합니다.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교회는 이방인으로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복음을 제시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는 폭격 속에 죽어가는 민간의 아이들과 여성들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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