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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닥 na kim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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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닥’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막 중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석 혹은 설 명절이었고, T.V.에서 특선 명화를 방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화를 방영했었는데, 그 날은 ‘순교자’라는 한국 영화를 방영했습니다. 별 뜻 없이 봤던 영화 한 편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현목 감독의 영화였고,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소설가 김은국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김은국은 우리나라 소설가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1950년 6월 25일 당시, 평양에서 처형된 12명의 목사와 살아남은 2명의 목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이 벌어집니다. 특히 제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살아남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인 젊은 목사는 위기가 다가왔을 때 의연했습니다. 그는 처형대에 매달려서 연약한 모습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다른 목회자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사람씩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절망합니다. 때로 그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때로 비판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보기도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총살당하기 직전, 그는 고통과 위협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처절한 배신감에 배교를 선언하고 맙니다. 인간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는 신을 더 이상 믿지 않겠다는 분노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미치고 말았고, 살아남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보면서 받았던 충격은 참으로 컸습니다. 아버지가 목회자였고, 나도 목회자가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는데 그 영화는 목회자들로 대표되는 신앙인들의 연약한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고 듣고 배운 목회자는 어떤 순간에도 진리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영화에서는 고민하고 배반하며 비겁해지고 나약해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처형대에 매달려서 하나님을 저주하는 젊은 목회자의 울부짖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충격이었고 두려움이었고 고민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표현 중에 ‘바닥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 여러분은 이런 말을 사용합니까? 사람이 가진 기본 소위 ‘바닥’은 위기 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강바닥이 가뭄에 드러나듯 얕은 저수지가 더운 여름 한철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내듯,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면, 시련이나 고통 앞에서, 유혹과 시험이 다가올 때, 헌신과 희생의 필요가 펼쳐질 때,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힐 때, 상처와 분노가 마음을 장악할 때 우리는 여지없이 우리들의 마음 깊은 곳에 거칠게 누워있던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 바닥에는 숨기고 깊은 비겁함도 있고, 잘 감춰두었던 이기심도 있고, 자기 신념과 확신으로 똘똘 뭉친 두려움도 있고, 단단하게 굳은 교만과 아집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린 나이에 그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 영화가 우리 마음에 있는 바닥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얄팍한 신앙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바닥을 세상에 드러내며 살고 있는지를 어린 마음에도 두려움 속에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만일 그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에 대해 자신 있고 신념에 찬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대 중반의 목사로 살아가는 지금, 저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얄팍한 믿음과 은혜의 강물로 채운 제 삶에 걸게 누워있는 바닥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애를 쓰고 땀을 흘려도 여전히 제 안에 남아서 위기의 순간마다 용틀임치는 거친 본성의 바닥은 때로 저를 부끄럽게 하고, 때로 관계를 상하게 하고, 때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아픔을 남기기도 합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나의 바닥을 생각해 봅니다. 그 바닥을 송두리째 들어낼 수 없다면 그 바닥의 깊이를 더해야겠습니다. 보다 겸손하게, 보다 나의 마음과 삶을 낮추어서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더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어떤 위기와 유혹에도 쉽게 나의 바닥이 드러나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의 삽을 들고 더 깊은 샘을 파야겠습니다. 깊은 곳에서, 더 낮은 곳에서 나의 바닥이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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