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보다 나침반’
몇 달 전 뉴욕 뉴저지 아버지 학교 강의를 위해서 북부 뉴저지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와 모든 순서를 마치니까 거의 11시가 되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11시, 참 부담이 되는 시간이 아닐 수 없지요. 내일이 주일인데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눌렀습니다. 약 80마일 정도가 되더군요.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직전에 잠시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남은 것이 약 70마일, 95번 고속도로 입구가 보였습니다. 빨리 가자... 빨리 가자.....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한참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네비게이션에 마일리지가 75마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잠이 오다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좀 있다가 보니 고속도로의 EXIT의 숫자도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게 어찌된 일이지....하고 네비게이션을 자세히 살펴보니 제가 95번 SOUTH를 타야 할 것을 NORTH 방향을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이 자꾸 EXIT으로 나가서 U TURN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방향을 잘못 선택했더니 달린 만큼 오히려 손해를 보는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은 그런 운전을 해 보셨습니까? 달린 만큼 손해인 운전, 달린 만큼 더 달려 돌아와야 하는 운전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요즘 제가 만나는 제 또래의 목회자들이 늘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새 40대 중반, 이제 더 이상 젊은 목회자는 아니라는 말에 다들 공감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앞으로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미국에 온지 이제 13년째인데요, 길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그 정도의 시간을 두 번 더 보내고 나면 저는 목회자로서 은퇴를 해야 합니다. 목회자로 더 섬기고 싶고 더 일하고 싶어도 법으로 정한 기한이 있어서 더 섬기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슬슬 조급해집니다. 뭔가 제대로 목회를 해야할텐데...라는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 중에 어떤 분들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목회지를 찾기도 합니다. 허겁지겁 다른 길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우리의 남은 인생과 일들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급해진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인생의 시계를 들여다보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남은 날을 세어보는 것, 그래서 다시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 마음을 다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아무리 시계를 보고 조급하게 달려도 사는 만큼, 달리는 만큼 손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시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나침반’, 즉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시계가 보여주는 ‘시간’은 우리가 조작할 수 없지만 나침반이 보여주는 ‘방향’을 보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 중에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그리고 7,80대에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지요. 조급해지는 마음,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절망과 같은 냄새가 아련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느껴지지도 합니다. 이렇게 달려가는 시간의 끝에 내가 만날 깊은 벼랑의 끝, 우리는 결국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인생을 살도록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방향은 우리의 가치와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삶의 환경 속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달리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시간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시고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인생으로 우리를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고 열심히 앞을 보고 달리는 우리들,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의 나침반이 되시는 주님과 함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점검합시다. 너무 쉽게 어긋난 길로 들어서는 어리석은 우리 자신을 겸손히 인정하고 물어물어 주님이 허락하시는 길로 가야겠습니다. 시계보다 나침반, 남은 시간보다 우리의 목적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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