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가장 큰 능력입니다.
공군 장교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사격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장교들에게는 권총이 지급되었고, 1인당 20발씩을 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가을 바람이 불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장교들이 줄을 서서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권총은 총신이 짧아 실수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각 사선은 철판으로 된 칸막이 속에 있습니다. 왼쪽부터 7발, 7발, 6발이 든 탄창이 각 사선에 놓여 있고 각기 원하는 폼을 잡으면서 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동료들끼리 누가 좋은 점수를 내는지 짜장면 내기를 하면서 즐겁게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총을 쏠 때에는 총알이 든 탄창을 준비해주는 단기 사병들이 각 사선에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탄창도 공급하고 총을 쏘고 난 다음 탄피를 회수하는 일도 맡아서 했었습니다. 그날 저를 도와주던 친구는 김상병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였는데 꽤 싹싹하고 똘똘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상병은 첫 탄창을 제게 주면서 아주 귀여운 표정으로 “이중위님, 한번만…”하며 눈을 찡긋했습니다. “뭘….?” 하고 묻자, “이중위님, 다음 달에 저 제대 아닙니까? 제대하기 전에 권총 한 번 만 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안돼!”라고 거절했습니다. 매번 총을 쏠 때마다 단기 사병들이 같은 요구를 해 올 수도 있고, 다른 동료들의 눈도 있어서 쉽게 그렇게 해 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탄창 7발을 다 쐈습니다. 김상병은 두 번째 탄창을 제게 주면서 다시 눈을 찡긋하며 더 귀여운 척을 했습니다. “이중위니이이임~~” 저는 다시 “안돼, 임마!”하며 두 번째 탄창 7발을 다 쐈습니다. 김상병을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세 번째 탄창을 제게 건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중위님, 제가 이중위님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정말 이번에도 다 쏘시면 저 실망합니다.” 저는 “시꺼, 임마! 너 하나 부탁 들어주면 다른 녀석들 다 들어줘야 해!” 그리고는 6발을 다 쐈습니다. 김상병은 정말 분노(?)했습니다. “이 중위님, 정말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한 발 정도는 주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는 어이가 없어서 김상병의 뒤통수를 때렸습니다. “짜샤, 빨리 탄피나 주워…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자 김상병은 더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몰라요. 이중위님이 탄피 주우세요. 이 중위님이 다 쏘신 거잖아요.” 저와 김상병은 티격대기 시작했습니다. “너 빨리 탄피 안주워? 이 짜식이…!”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짜샤, 뭐 가 너무해… 단기 사병이 무슨 권총을 쏘냐?” “그래도 다음 달에 제대하는데 한번쯤 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으이그, 이 자식이…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빨리 탄피 주워” “배 째십시오. 저 못합니다.” “확 쏴버린다…” “총알도 없는 총 쏘면 뭐합니까? 어디 쏴 보시든지요.” 김상병은 제 손에 들려 있던 총을 자기 이마에 대고는 쏴보라고 달려들었습니다. 주변에 탄피를 줍던 단기 사병들과 총을 정리하던 동료들이 재미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으이그, 이 자식을 확…” 그러자 김상병은 더 “쏘십시오. 기왕에 권총 한번 못 쏴보고 제대하는 거 공총이라도 맞고 제대할랍니다.”
그때는 정말 방아쇠를 당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록 총알은 없지만 워낙 까불어대는 대다가 아무리 친해도 장교 체면도 있는데 김상병이 너무 버릇 없이 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가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격에 관한 수칙이었습니다. 반드시 지정된 사격을 마치면 허공에다가 2-3차례 격발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군에서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공총을 맞으면 3년간 재수가 없다…” 비록 총알이 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고 격발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빨리 탄피나 주워, 임마… 공총 맞으면 3년간 재수 없대… 내가 확 쏴버리고 싶지만 너 제대하는 마당에 재수 없을까봐 참는다” 저는 김상병의 뒤통수를 다시 세게 때리면서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빵!”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었습니다. 저와 김상병도,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웃으면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멍하니 제가 쏜 총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탄창에 총알이 한 발 더 장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20발을 쏘게 되어있고, 7, 7, 6의 순으로 탄창을 준비하는데, 제 탄창은 7, 7, 7로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김상병은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저도 너무 당황했습니다.
“너 이 탄창에 총알 몇 발 넣었어?”
“어… 제대로 넣었는데…. 이중위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상병은 주저 앉은 채 멍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 를 연발했습니다.
가끔 그때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저의 인생이 바뀔 뻔한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원칙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쉽게 잊고 지냈던 사격 수칙, 그리고 사람에 대한 예의, 그저 지나갈 수 있고 자주 잊고 지내는 것들이었는데 순간 그것을 기억하고 따랐더니 제 인생을 바꿀 뻔 했던 보이지 않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칙은 지킬 때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의 삶이 원칙인 하나님이 말씀은 순종할 때 능력이 됩니다. 요즘 많이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 성도들의 삶에 당당하고 자신있는 믿음의 선택이 반복되면 좋겠습니다. 어려울수록 말씀의 원칙을 기억하고 힘들수록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된 능력입니다. 힘이 들 때마다, 시험과 유혹이 다가올 때마다, 이익과 손해가 갈릴 때마다 우리의 가장 단순하고 분명한 원칙,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때 염려와 걱정이 아닌, 우리가 순종한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