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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 선교 이응도 목사 20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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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 선교

 

얼마 전에 인디언 원주민 선교사로 섬기고 있는 한 선교사님으로부터 기도를 부탁하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현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디언 보호구역에서의 원주민 사역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보호 구역 중에서도 가장 척박한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선교사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리조나 광야의 모래바람, 쓰러져가는 인디언 원주민 교회당, 끝이 보이지 않는 거친 비포장 도로... 뭐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기도를 부탁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함께 인디언 사역을 하는 기관의 미국인 스탭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관은 신학교와 함께 195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백인으로서 인디언 선교를 하는데 한계를 느낀 선교사들이 원주민 지도자를 양성해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선교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는데 동의하여 신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지금 약 20명 정도가 동역하며 인디언 원주민 사역자를 양성하고 원주민 교회를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기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성육신 선교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인디언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삶이 되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단체에서 일하는 Staff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들 안에 깊이 뿌리내린 우월의식을 발견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지난 50년 간 수많은 미국 교회들이 그 기관을 후원하고 원주민 사역자를 양성하는 일을 도왔지만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애써 외면합니다. 이미 그들 속에 존재하는 보다 나은 문화와 삶을 가졌다는 자부심과 미개한 인디언들에 대한 멸시와 비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 속에 있는 미국 교회가 인디언의 역사에 대해 지고 있는 역사적인 부채를 부정합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생활 습관, 문화적인 후진성, 생활에 젖어 있는 무속신앙 등을 지적하며 원주민 지도자들을 인디언의 얼굴을 한 백인으로 만들어내려 합니다.

 

그 결과, 믿음과 사명감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실망과 분노로 포기하는 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 선교 기관과 연결하여 사역을 시작했던 많은 원주민 교회와 지도자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그들이 원주민들의 무속 신앙과 기독교 신앙이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된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과거의 무질서한 생활로 돌아가기도 하고, 몰몬, 여호와의 증인, 심지어 이슬람까지 그들 속에 들어와 함께 생활하며 뿌리를 내렸습니다.

 

기도를 부탁한 그 선교사님은 아무리 말하고 또 말해도 자신들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동료 선교사들에 대해 점점 지쳐간다고 말합니다. 인디언 원주민들과 그들의 교회가 비성경적이며 건강한 신학 위에 있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원주민 교회가 왜 자기 선교 기관과 거리를 두는지, 신학교를 세우고 오랫동안 헌신하고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원주민 선교지도자가 양성되지 않는지, 왜 많은 원주민 교회 지도자들이 실망과 분노를 가지고 학업을 포기하는지, 결과적으로 왜 선교가 안되는 지에 대한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없는 현실을 아파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 그 선교 단체에서 미주 한인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아메리칸 인디언 선교 비전 컨퍼런스"를 엽니다. 컨퍼런스의 목적은 많은 미주 한인 교회들이 인디언 선교를 이미 시작했거나 시작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백인 교회들이 걸어온 잘못된 길을 벗어나서 바르고 건강한 인디언 선교의 모델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성육신 선교를 주장하지만 원주민 교회와 동화되지 못했고, 원주민을 노란 얼굴을 한 백인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잘못된 길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처럼 되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처럼 되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음을 함께 나누자는 것입니다. 신학이 없어서, 말씀이 없어서가 아입니다. 성육신 선교를 주장했지만 말씀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인격과 관점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육신 선교백인우월주의를 함께 가진 그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과 모순되는 삶은 늘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좋은 거울을 주셨다고 생각해야겠습니다. 혹시 내게는 이런 모순된 원칙이 함께 자리잡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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