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 사람이니까!" | 이응도 목사 | 2013-03-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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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사람이니까....” 저희 교회 성도 가운데 필라델피아 지역 한인회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인지 교회 일에는 그리 열심이지 않습니다. 가끔 사업체에 심방을 할 때면 저는 그분에게서 필라델피아와 주변의 한인 단체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몇 년 전에 그 분이 제게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습니다. 그날도 한동안 교회 출석을 하지 못한 그 분의 가게에 들렀습니다. 마침 그때 한인회에 좋지 못한 일이 있었고, 그 성도는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워낙 말씀을 거칠게 하는 분이어서 대놓고 여러 사람들의 잘못을 설명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알고 있는 몇 분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말로 목사님들의 실수와 잘못들을 비판하다보니 좀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뭐... 그래도 그분들은 필라델피아 사람들이니까...”라는 말을 했습니다. 갑자기 ‘필라델피아 사람’이기 때문에 대충 용서가 된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제게는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필라델피아 사람이니까....라는 말의 의미가 뭐냐고 말입니다. 그 분은 꽤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오랜 이민 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필라델피아와 주변 지역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들은 딱 두 가지로 갈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목사들입니다. 그런 목사들은 이 지역에서 이민 목회를 해도 늘 마음은 한국에 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큰 교회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이 지역의 이민 교회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필라델피아 사람으로 살아가는 목사들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불러주지 않아서 못가기도 하고, 정말 이민 목회에 사명을 가지고 삶을 바쳐서 교회를 섬기는 목사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목사들은 분명히 이 지역에 깊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고, 따라서 필라델피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인회와 관련해서 실수를 했던 그 목사님은 이 지역에 30년 이상 살아온 분이고 필라델피아 한인회를 조직할 때부터 오랫동안 관여해 왔다고 했습니다. 많은 잘못이 있고 원망도 듣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이곳을 떠나지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물론 목회도 어려운 상황이고 사람들의 인심도 많이 잃었지만 한인회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은 큰 교회, 잘난 목사님들보다는 필라델피아에 뼈를 묻을 바로 그런 목사님들과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 제가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가요? 필라델피아 사람인가요? 아니면 한국으로 갈 사람인가요?” 그분, 저희 교회 교인으로 등록한 그 성도가 담임 목사인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필라 사람 아니예요. 필라 사람이 되려면 필라를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해요. 그런데 목사님,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여기서 목회 성공하시면 한국으로 가실 거 아닌가요?” 물론 그 분의 생각이 옳은 것도 아니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닙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민 교회와 목회자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교회와 목회자의 지역성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 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다양성’ 혹은 ‘다원화’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조류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관계 중심의 다양한 형태의 교회가 실험되고 있습니다. 가정 교회, 셀교회 등이 대안으로 나오는가 하면 온라인에서 형성된 관계를 중심으로 교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리고 우리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교회는 지역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과 깊은 관계 속에 있어야 하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지역의 문제가 교회의 문제가 되며 지역의 아픔이 교회의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천국을 말하고 신앙을 말하고 구원을 말하지만 지역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역의 문제와 상황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역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성도로 모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아픔과 고통, 상처와 눈물에 무관심한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교회와 성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와 교회는 그 지역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섬겨야 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한 지역성을 다양한 관계를 통해 획득하게 될 때 바로 그곳에 선교의 현장이 되고 복음이 뿌리는 내리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그 성도의 가게에 들러서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제가 필라 사람이 덜 되었나요?” 그 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하하... 이제 절반 넘었습니다. 거의 다되어가는 것 같네요.” 필라 사람 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좋은 이웃되는 일도 참 쉽지가 않습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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