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 들어가 봤나?” | 이응도 목사 | 2014-1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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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들어가 봤나?” 저는 올해 시카고에서 열린 교단 총회에 직접 차를 몰고 갔습니다. 아시는 대로 필라델피아에서 시카고까지 약 800마일의 거리입니다. 가는 길은 오하이오에 있는 한 권사님을 방문하느라고 조금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운전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어서 그리 힘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동행했던 형님 목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80번 하이웨이를 타고 인디애나를 지나는 길에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숲들이 보였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기 숲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목사님은 심드렁하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야, 이 목사... 니 저 숲 속에 들어가 봤나?” “아니요... 제가 저 숲에 어떻게 들어가요?” 그랬더니 그 목사님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나는 말이야, 요즘 골프를 치다가 공이 숲으로 들어가면 공을 찾으러 들어가기가 싫어. 낙엽 때문에 찾기도 어렵고, 요즘은 또 그렇게 숲에 가시가 많아.... 나는 저런 숲이 딱 싫어.” 숲에 대한 대화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던 시절, 삼천포라는 바다가 있는 작은 도시에서 청년 대학부 사역을 했습니다. 청년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놀다가 새벽이 되면 ‘등대’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야간 조업을 하고 삼천포 항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위한 등대였습니다. 바다 저 멀리 먼동이 뿌옇게 틀 때면, 통통통... 소리를 내면서 크고 작은 배들이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자랐지만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제게는 마치 예쁜 그림 엽서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도 청년들을 데리고 새벽 동트는 모습을 보겠다고 등대로 갔습니다. 배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야... 정말 좋다.... 저기 저 배들 좀 봐.... 진짜 낭만적이네.... 정말 멋있네...” 등대 끝에 나란히 앉아서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감탄을 표현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낮고 시니컬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낭만은 무슨.... 밤새도록 고기 잡아봤나...?” 가끔 교회를 나오는 형제였습니다. 아버지가 근해에서 고깃배를 타신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가 제게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도사님.... 저 사람들.... 밤새도록 목숨 걸고 어두운 바다와 싸우면서 고기 잡고 들어오는 사람들이예요. 저 사람들한테 낭만.... 없어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갈매기도 날고 있었고, 통통배와 파도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이 한 맹인을 만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 입니까?” 제자들은 지금 그의 삶에 찾아온 문제를 통해서 그를 보고 있고, 자신들 안에 있는 신학적 입장을 통해서 그의 인생을 해석합니다. 그는 죄로 말미암아 맹인이 된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소경된 죄인으로만 보이느냐? 내 눈에는 그렇지 않다. 그는 비록 불행하게 나면서부터 맹인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실 것이다.”(요 9:3) 제자들은 맹인의 삶에 있는 문제를 보았지만, 예수님은 맹인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보셨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부모의 한숨이었을 것입니다. 부모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근원을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을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품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벗어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생각의 바퀴를 굴리면서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열렸습니다. 죄가 아닙니다. 벌이 아닙니다. 부모 때문도 아니요, 자신 때문도 아닙니다. 그의 연약함, 그의 수치, 그의 고통, 그의 눈물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어떤 고통스러운 인생도 하나님의 뜻이 임하면 수치와 눈물이 아닌 기쁨과 영광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하나님의 도구라고 부르십니다. 축복의 통로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가장 연약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을 통해서 증거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목적 있는 인생으로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아픈 과거, 우리의 눈물 나는 오늘,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빈 자리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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