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 | 이응도 목사 | 2014-1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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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 지난 수요일 오전, 간단한 아침 식사와 함께 조용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저희 동네 Ambler 시내에 있는 한 카페로 갔습니다. 커피 맛이 좋아서 가끔 가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게 창을 마주보며 앉았습니다. 큰 통유리를 통해 보는 거리는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거리에 차들이 미끄러지듯 지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빠른 걸음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미 잎을 다 떨군 가로수들이 앙상한 가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유리창에 앉은 먼지들이 햇볕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건너편에 있는 예쁜 벤치였습니다. 저는 여행을 할 때마다 곳곳에 놓여 있는 벤치를 사진 찍어 옵니다. 세상 어느 곳을 가든지 반드시 있습니다. 제대로 모양을 갖춘 것도 있고, 그저 통나무나 바위를 놓아둔 것도 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그네들의 지친 다리와 거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배려했던 그 누군가의 선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벤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마 늦은 40대 쯤 되어야 기억하는 노래일 겁니다. 장재남이라는 가수의 ‘빈 의자’라는 노래입니다.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 당신의 자리가 돼 드리리다 제가 어려서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고 기억했던 이유는 아마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세상을 향한 메시지와 이 노래가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어린 마음에 노래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익명의 수많은 타자들에 대해 ‘비어 있는 자리’가 되겠다는 결단은 단순한 낭만적인 결단을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때로는 생명을 내려놓는 결단이며 때로는 고통을 감수하는 결단이며 때로는 인생에 약속된 모든 즐거움과 영광을 포기하는 결단입니다. 창 밖, 험한 인생의 길을 걷는 익명의 이웃들을 위해 놓인 벤치를 보면서 저는 다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분 좋은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할머니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보조기구에 의지해서 걸어가던 그 할머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더니 곧 바로 일어섰습니다. 아.... 왜 그랬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쇠로 된 벤치가 너무 차가웠을 것입니다. 추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걷다가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겠다고 앉았는데 앉은 자리가 너무 차가웠던 것입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다시 피곤한 길을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인생의 길을 걷다가 지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벤치가 쉴 만 하지가 못한 것입니다. 겨울 칼바람에 너무 차가워진 것입니다. 쉬고 싶은 사람이 그 찬 기운을 이기지 못해 쉼을 포기하고 다시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거리에 놓인 그 벤치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 누군가 그 벤치를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준비된 벤치도 때로는 다른 사람의 온기로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 대한 목회자의 역할은 마치 벤치와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역할도 마치 벤치와 같을 수 있습니다. 성도와 성도가 서로에 대해서 감당해야 할 역할도 이와 비슷합니다. 서로의 인생길에 지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로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하나님이 허락한 은혜와 복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겨울 차가운 칼바람에 벤치가 너무 차가워져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랜 풍상에 벤치의 표면이 거칠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친 발걸음 쉬고 싶어서 앉았다가 오히려 다른 아픔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벤치도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셨던 주님은 끊임없이 배반하고 돌아서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겨울 벤치보다 더 차갑고 날카로운 십자가에 오르시면서 제자들의 온기가 필요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로마의 차가운 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아시아의 각 교회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따듯한 영적인 지지가 바울에게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많이 춥습니다. 이민 교회의 현실은 더욱 차갑습니다. 아무리 사명감 하나로 성도들을 위한 벤치로 누웠다 해도 때로 혹독한 세월에 견디지 못해서 차갑게 변해버린 목회자 혹은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비판과 외면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피곤하여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이 옥에서 각 교회들의 따뜻한 마음을 부탁했던 것처럼 날로 추워지는 이민 교회의 현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를 보호하고 세워주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서로를 섬길 때 목회자는 더욱 좋은 벤치가 되어 성도들을 섬기고, 교회는 더욱 아름다운 벤치가 되어 세상을 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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