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김나래 | 2020-05-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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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많이 뵙고 싶고 함께 예배하고 싶습니다. 한분 한분 찾아 뵙고 함께 식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그런 날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식탁에 대해 한번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주기도문을 암속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까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성도들 중에서 오늘 ‘일용할 양식’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오늘 먹을 양식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내일이 혹은 그 이후가 불안한 것 말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지금 식사를 못하시거나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는 분이 있으신가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얼마나 더 풍족하고 좋은 식탁을 준비하느냐의 문제일 수는 있지만 일용할 양식으로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어쩌면 이미 응답된 기도, 무의미한 기도, 습관적으로 드리는 기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기도가 앞에 있는 말들과 만나면, 즉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를 생각하면 고민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오늘의 일용할 양식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라는 말입니다. 누구를 우리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함께 예배하는 교회와 성도들만 우리의 범주에 넣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이 기도는 이미 충분히 응답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라는 개념의 담장을 허물고 좀 넓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 기도는 아직 응답되지 않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계속 기도하면서 또한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할 문제입니다.
지난 달부터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교회에서 매달 셋째주에 하던 성찬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성찬까지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애찬식으로 변경해서 함께 점심 식사가 되는 빵과 쥬스를 나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식사를 한 것입니다. 애찬식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성도들이 비슷하게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배와 식사를 함께 하는 것 - 이미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날은 우리의 식사가 예배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먹고 마시고 식탁에서 가족과 함께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내가 먹고 마시는 일, 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노동으로 가족들의 양식을 공급하고 함께 식탁을 나누는 일,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먹고 마시는 일이면서 그 사랑으로 내가 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의 매일의 식탁은 충분히 거룩하고 의미 있습니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식사가 아니라 예배와 식사를 함께 하는 경험을 하시면서,... 이제 우리의 모든 식사가 예배의 의미를 품을 수 있게.... 즉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식사가 될 수 있게.... 우리 주님의사랑이 나눠지는 식탁, 복음이 풍성하게 공급되는 식탁,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나에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벽이 없고 경계가 없는 이웃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의 넓고 큰 식탁, 우리의 식탁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나라와 뜻이 함께 하는 식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식탁은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식탁이 예배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주기도문에 있는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삶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 식탁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오늘을 책임지시고 내일을 준비하신다는 믿음이 있고, 우리의 경계에 대한 결정 또한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누가 ‘우리’의 범주에 포함되는 이웃일까요? 그 이웃의 경계를 누가 결정할까요?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이웃으로 품으셨고, 그리고 우리의 이웃의 경계는 예수님이 결정합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고 순종할 때.... 우리가 나누는 모든 식탁은 예배가 되고, 오병이어가 되고, 성찬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달에 한번 더 식사로 함께 하는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 예배를 준비하면서 우리의 일용할 식탁에 대한 신앙의 고백과 고민이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고백되고 응답되는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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