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 홈 >
  • 예배와 말씀 >
  • 목회 칼럼
목회 칼럼
악의 평범성, 복음의 내면화 김나래 2020-06-01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18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14/5743734

악의 평범성, 복음의 내면화

여러분은 지난 주에 밀워키에서 있었던 George Floyd의 죽음을 잘 아실 겁니다. 쇼빈이라는 경찰관은 846초 동안 무릎으로 George Floyd의 목을 눌렀고, 그가 의식을 잃은 후에도 253초간 무릎을 떼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러 일은 늘, 어느 곳에서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 평등의 나라, 기회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을 가장하고 있는 나라에 불과합니다. 만일 자유와 평등과 기회가 특정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장되고, 또 다른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이라면 그것은 자유도, 평등도, 기회의 균등도 아닙니다. 엄연한 차별입니다. 미국이라는,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까요? 미국은 역사적으로 수탈과 차별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이미 그것이 정치와 경제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 속에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제 필라 시내에서 차량이 불타고 연기가 올라오고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라디오를 통해서 COVID19의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지키지 못하고 위험에 빠뜨린다고 외치는 리포터의 급박한 음성을 들으면서....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이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라면 우리는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남편이며 친구이며 아버지이며 아들인... 누군가에게는 참 좋은 사람이었을 쇼빈이라는 경찰은 또 다른 누군가의 친구이며 아들이며 아버지였을 한 사람의 목을 죽기까지 무릎으로 짓눌렀습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우리 안에 일상으로 존재하는 죄와 악의 가능성.... 우리 안에 내면화된 죄와 악이 홀로코스트를 만들고, 세계대전을 만들고, 다른 나라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고, 종군위안부를 만들고....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으로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노력합니다. 좋은 아버지로 자녀를 잘 교육하기를 원하고, 좋은 남편이 되어 아내의 행복한 웃음을 기대합니다.

 

이번 주간에 교단의 7개 교회가 연합하여 나바호 선교구제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나바호를 생각할 때마다 기억나는 여러 장면과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황성기 선교사와 Indian Bible Colleg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황선교사님은 나바호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Indian Bible College의 교수요원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역을 시작한 다음 해 우리 교회는 그 신학교에서 하루 숙식하면서 단기선교를 준비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황선교사님 역시 오랫동안 인디언 원주민 선교를 하고 있는 신학교와 함께 사역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의 미국인 staff,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인 staff들과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원주민 선교에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땀과 눈물과 삶을 그곳에 뿌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참 어려웠습니다. 그들 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이미 그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호흡이 되어 있는 우월의식을 그들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고, 극복하지 못했고, 황선교사님 또한 그들의 의식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생활인데 인디언들의 입장에서는 엄연한 차별이고, 그들에게는 상식인데 아시안의 입장에서 보면 우월의식인 수많은 경험들이 황선교사님의 마음에 처와 실망으로 쌓였습니다. 황선교사님은 학교에서 나와서 직접 인디언 원주민 교회로 뛰어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들의 옷을 입은 복음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들이 복음으로 포장된 그들의 우월의식과 당연한 차별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은 평범한 말과 삶 속에 깃듭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고 교양이 있기 때문에 나의 모든 판단과 행위는 정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속에 깃든 악이 믿음과 교양의 옷을 입고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평범한 악이 내면화되는 순간이며 더욱 교활해지는 순간입니다. 자신을 당대의 신학자요 철학자로 자부했던 사울이 같은 시대를 사는 또 다른 청년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는 이유, 이후에도 자신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복음을 만난 후에도 스스로 탄식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두 가지 법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을 곤고한 사람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소망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악의 평범성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 세상에 만연하고 우리의 삶에 일상화된 악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바로.... 복음의 내면화에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가 시대를 극복하는 능력이 내면화된 복음에 있습니다. 복음이 호흡처럼, 공기처럼 일상이 되어 이웃에게 증거되고 그 복음이 다시 이웃의 삶에도 호흡이 될 때.... 복음의 삶이 기초가 되고 상식이 될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바울이 변화되고 교회가 서고 복음이 증거됩니다. 오늘도 미국 전역에서는 시위가 불타오를 것이고,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더욱 퍼질 것입니다. 복음 외에는 이 분노와 공포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시작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나라와 권세와 영광’ 김나래 2020.06.21 0 292
다음글 ‘딸과 손자에게 들려줄 이야기’ 김나래 2020.05.24 0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