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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 자기’ 김나래 20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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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 자기

 

가끔씩 군대에서 훈련을 받는 꿈을 꿉니다. 공군사관후보생 4개월 훈련 과정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은 전술학이라는 시간입니다. 그저 차이고 구르고 박고 뜁니다. 첫시간을 잊지 못합니다. 후보생 600명이 전술학 연병장에 섰습니다. ‘곰발바닥이라는 악명 높은 교관이 이노무 쉐리들....”이라는 말로 훈련을 시작합니다. 정신없이 연병장을 온 몸으로 청소합니다. 훈련을 시작한 지 2시간 쯤 지났습니다. 이제 진짜 조금만 더 구르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좌우로 정열을 시킵니다. 대충 줄을 맞추면...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부터 10개의 구대가 정열을 해서 연병장을 빠져 나간다.... 그런데 늦게 나가는 5개의 구대는 다시 훈련을 받는다. 실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두려움에 사로잡힌 600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서로 앞을 다퉈서 연병장을 빠져나갑니다. 줄이고 뭐고 없습니다. 저는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두려움에 빠진 짐승들이 일제히 모래 사막에 머리를 쳐박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다시 다 불려와서 열 개의 구대가 우리는 하나다!”와 같은 말도 안되는 구호를 외치면서 다시 2시간을 뺑뺑이를 돌았습니다. 사실 원래 훈련이 4시간이었고, 매년마다 매 기수마다 치르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공군사관후보생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군대를 가지 않은 청년들이 좀 나은 환경에서 군복무를 하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지원을 했었습니다. 다들 학벌이 좋습니다. 600명의 후보생 중에 300명 이상이 서울대, 연대, 고대 혹은 해외 유학파입니다. 저처럼 대학원을 마치고 온 후보생이 100명이 넘습니다. 외무고시와 행정고시 출신자들도 많습니다. 입대하기 얼마 전에 당시에 노태우 대통령의 미국 순방과 중국순방에 비서관으로 참석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 얼마나 똑똑하다고 인정받고 존중받았을까요? 그런데 뺑뺑이 두 시간을 돌리면.... 다들 멍청해집니다. 똑같아집니다. 물 한모금에 싸우고, 건빵을 놓고 다툽니다. 초코파이 하나면 장자의 명분을 팔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부인해야 하는 자기지켜야 하는 자기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9:25)

 

같은 단어를 사용했지만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부인해야 할 자기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뿌리 내린 우리의 욕망이며 야심이며 근심이며 걱정이며 두려움이며 염려입니다 오랫동안 세상에 길들여진 자아입니다. 버리지 못하는 익숙한 습관입니다. 세상이 나를 교육한 가치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베드로가 버리지 못했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이 오호라오호라 하면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잃지 말아야 하는 자기는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새로운 마음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하심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입니다. 받은 복음이요 그 복음으로 만들어낸 변화된 선한 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담이 감히 대답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자아이며, 사울왕이 울며불며 무당 앞에 엎드려 살 길을 찾을 때 그가 회복했어야 했던 잃어버린 자아입니다.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다고 탄식했던 상실한 자아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얻고 자아를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부여한 하나님의 형상이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형상입니다. 자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라는 연병장에서 요즘 우리는 좀 바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나는 과연 안전할 것인지, 이 다음에는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원받은 성도로서 결코 잃지 말아야 하는 자기를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이 천하를 얻어도 자기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잃지 말아야 하는 자기는 세상을 닮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때 비로소 발견하는 자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기를 부인하고 어떤 자기를 붙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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