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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단체 훈련 - 3) 예배의 훈련 1 (요 4:23-24) 이응도 목사 201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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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훈련과 성장(2011. 6. 8)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11-14

4. 단체 훈련 - 3) 예배의 훈련 1 (요 4:23-24)



어쩌면 사람이 하는 행위들 가운데 가장 공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고, 가장 교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을 가장 어리석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어리석게 취급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고 합시다. 성경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떠도는 잡신들이 있고, 그것의 해악을 두려워하여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배는 영적인 것이고, 우리가 섬기고 믿는 신과 우리들의 영적 교통함이 있는 것인데, 어리석게도 알지도 못하고 교감할 수도 없는 신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뚜렷한 자각이 없이 예배하고 있다면 본질적으로 이런 사람들의 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의 대상인 신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없다고 합시다. 예배를 받는 신에 대한 지식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 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바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신이 원하는 삶이 없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살되 그 신이 주는 복과 은혜에만 관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신에 대한 예배는 드리되 서로가 어떤 교통함이 없이, 그저 예배의 행위만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공허합니다. 받을 수 없는 예배, 받지 않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영적 지식과 분별력이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변화와 성장없이 그저 주일에 모여 예배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 이런 예배와 우리들의 예배는 별 다른 점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쉐키나(shekinah)의 관점에서 예배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혹은 광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추상적이거나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임재하시며 영광으로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 계시며 함께 하시며 교제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쉐키나를 잊거나 버릴 때, 그들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하기도 했고,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이용하기도 했고,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삶을 살면서 예배를 하나의 삶의 부분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배는 우리 삶의 중심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배의 중심과 가치를 잃을 때 예배는 공허한 것이 됩니다. 잘못된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의 슬픔과 분노가 될 수 있습니다.


1. 예배의 정의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한 여인을 만나시고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잘못된 예배를 드리던 곳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3-24)


예배를 찾으시고 이끄시고 권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속에서 나온 사랑의 제의에 응답하는 우리의 영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핵심은 ‘신령과 진정’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이 만나는 현장입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식을 사용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은 예배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러 형식과 과정을 통해 아름답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지만, 우선 성령의 임재와 만나주심과 어루만지심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예배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역사적인 발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예배의 형식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형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예배의 핵심 정신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예배를 위한 특별한 형식과 순서를 요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회당 중심의 예배 제도에 오랫동안 길들여졌던 유대인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드리는 예배는 ‘자유’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 회중이 성령 하나님을 경험할 때 장소와 형식과 시간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과 교통함의 현장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물론 형식은 중요합니다. 인간이 가진 연약함과 부족함을 생각해보면 이것을 쉽게 인정할 수있습니다. 우리의 예배 체험을 구체화할 수 있는 ‘포도주 부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할 것은 형식이 예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무리 좋은 포도주를 담았다 한들 부대가 포도주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예배의 형식은 예배를 돕는 것이지 예배 자체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며 영광을 돌리는데 합당한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포도주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부대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됩니다.


2. 예배의 대상


예수님은 우리들이 누구를 예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마 그를 섬기라”(마 4:10)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가 두지 말라”(충 20:3)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셨고, 예배의 현장에 임재하시며 참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삶과 인격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십니다.


다만 사람은 어리석어서 오랫동안 우상을 숭배해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 앞에 절하는 것만이 우상 숭배는 아닙니다. A.W. Toz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상 숭배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가치한 것을 즐겨 생각하는데 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우리의 인생을 소비하고 헌신하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우상 숭배와 같은 것으로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예배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먼저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면 우리는 예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빛나고 거룩한 본성 앞에 우리가 서고 그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며 우리의 악을 발견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모두 교회와 성도를 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 자비와 긍휼에 감사하며 그에 합당한 응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 우선 순위!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참되게 섬기기 위해서 예배가 우리 생활의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예배와 봉사에서 우선순위를 혼동합니다. 분명한 것은 예배가 우선이며 봉사는 참된 예배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봉사로 예배를 배체할 때 그것은 곧 우상숭배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교회를 통해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만나는 가장 큰 유혹 가운데 하나는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봉사의 요청에 응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마음이 분주해지고 삶이 바빠집니다. 결과와 평가에 집착하게 되고,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중심에서 떠나게 되고, 내 마음의 중심에도 다른 곳이 자리잡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고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교회에 대하여 예배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마음을 돌이키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우리의 삶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4. 거룩한 기대를 품고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특징은 모든 예배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거룩한 기대에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이 자신들의 예배에 임재하신다는 것을 믿었고, 거룩한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품었습니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 속에 어떤 사람은 거짓된 예배로 징계를 받아 죽음을 당하고(행 5:1-11), 어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행 9:36-43), 어떤 사람은 예배를 소홀히 여기다가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행 20:7-10) 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배로 모여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했고,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거룩한 기대가 발전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에 들어갈 때 가능합니다. 로렌스 형제는 그가 일하던 부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기 때문에 예배의 시간에도 하나님을 만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로 체험하는 일 없이 신자가 만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p.32)


하나님을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고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에 대한 거룩한 기대로 모이는 교회 위에 하나님은 거룩한 영광으로 함께 하시고 능력과 은혜로 예배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잘 예배하는 교회와 성도, 우리의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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