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21. 십자가 위에 서다. - 6. 다 이루었다. | 이응도 목사 | 2012-1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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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11. 21. 십자가 위에 서다. - 6. “다 이루었다.”(요 19:30)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들 중에서 예수님의 심리적인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일 것입니다. 죽음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적인 고통과 갈증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내가 목 마르다.” 일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되 완전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고통에 대해 신적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의 목마름과 돌아오지 않는 인류에 대한 애타는 갈증을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오늘 본문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승리의 선언입니다. 그런데 그 승리가 십자가 위에서 이제 곧 죽기 전에 선언되었습니다. 그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승리 선언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고통 속에 있는 예수님 파스칼은 “예수님은 세상의 끝 날까지 고통 속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사역의 성취를 선언하신 예수님에 대해 왜 파스칼은 여전한 고통을 말하고 있을까요? 세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말은 우리가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끝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이 두 시대 사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왕이 이 세상에 도래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왕국의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왕국의 왕은 고통 속에 있습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우리의 현재에 계속 역사하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의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계속적인 고통을 묵상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여전히 죄와 세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신앙이 주님의 십자가를 필요로 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계속적 고통이 현실적인 고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고통 받는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할 때 우리는 시작된 나라와 완성될 나라의 중간 지점에 머물면서 영적 긴장을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 변화를 위해 주님께서 고통당하셨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가 완성된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할 때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고통의 이유가 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십자가의 소원, 하나님의 영광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와 더불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모든 복음서에서 함께 주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패배가 아닌 완전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다음의 두 말씀을 봅시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요 12:27-28)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2-33) 예수님은 요 12:27의 기도 가운데 십자가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말씀합니다. 먼저 그것은 지극한 고통입니다, 예수님조차도 피하고 싶은 깊은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십자가의 때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일이며 그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요 12:32-33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땅에서 들린다’는 것은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요, 십자가를 지는 목적은 ‘교회와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고백에 대해 하나님은 하늘에서 응답하십니다. 요 12:28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십니까? 순종하는 아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온 아들을 기뻐하셨던 하나님은 그 아들이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제물이 될 때 무한한 영광으로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완전한 승리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하늘의 무한한 영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현장이 십자가이므로 십자가는 곧 승리인 것입니다. 3. 새로운 길이 열리다. 한편 예수님께서 ‘다 이루심’을 선언하신 것은 예수님의 왕권이 십자가 처형으로 중단되거나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왕되신 예수님의 통치의 한 방식입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기대하며 기다렸던 종말론적 왕권이 도래한 것입니다. ‘종말론적 왕권’ - 이 말은 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을 종말론적이라 표현한 것은 먼저 예수님이 우리의 참되고 완전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나라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그 나라의 왕입니다. 모든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고, 모든 왕권이 부정됩니다. 또한 이 왕권이 종말론적인 것은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통치 방식, 즉 세상 나라의 삶의 원칙이 종말을 고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력이 부정됩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즉 예수의 십자가는 세상의 패배입니다. 정작 못박혀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세상입니다. 왕이신 예수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그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섬김의 나라요 희생의 나라요 사랑의 나라입니다. 신이 사람이 되어 사람에게 죽임당함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고백하며 그 나라의 백성의 삶을 결단하는 성도와 교회를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창조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창조되었다.”는 말은 참 중요합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죄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해도 죄인으로서의 삶의 본질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죄인으로서의 삶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으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서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십자가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의 창조 -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된 사람이라면 이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삶이요, 먼저 희생하고 먼저 헌신하며 먼저 제물이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먼저 그 삶을 실천하셨기 때문이요, 먼저 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4.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가다. 사도 바울은 골 1:24-27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4-27)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고난을 자신의 삶에 채운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성취’를 이루셨기 때문에 자신 또한 자신의 삶에 남겨진 고난을 담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도 직분에 허락된 것이요, 성도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그의 삶에는 이제 뚜렷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라는 영광의 소망을 바라보며 세상 가운데 그 영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방을 위한 사도로 세우심을 받아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 이름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던 예수님과 같은 길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는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승리의 길입니다. 그 길 위에 역사 속에 존재했던 교회가 있고, 함께 걷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십자가로 죽음의 세상 가운데 생명의 길을 열고 평강과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완성이자 시작입니다. 다 이루었지만 끝난 것은 아닌 상태 - 바로 교회와 성도들의 현재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난 존재’로 살아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새로운 길을 걸으며, 이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왕되신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오직 자신을 위해 살지만 세상 속에서 증인의 삶을 사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한 삶을 결단하고 기뻐하며 헌신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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