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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교회 성장 세미나 강의안 - 1. 복음적 중립지대 이응도 목사 201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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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에 있었던 이민 교회 성장 세미나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제게 맡겨진 주제가 교회와 사회였고,
우리 교회가 개발하고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선교 개념으로서의 '복음적 중립지대'와
지역 사회를 돕는 프로그램인 '요셉 프로젝트'을 소개했습니다. 



1회 이민교회 성장 세미나 강의안

 

주제 : 교회와 사회

강사 :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담임 목사

 

1 : 복음적 중립지대론 - 끌려갈 것인가? 끌고 갈 것인가?

저희 교회 성도 가운데 필라델피아 지역 한인회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인지 교회 일에는 그리 열심이지 않습니다. 가끔 사업체에 심방을 할 때면 저는 그분에게서 필라델피아와 주변의 한인 단체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몇 년 전에 그 분이 제게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습니다. 그날도 한동안 교회 출석을 하지 못한 그 분의 가게에 들렀습니다. 마침 그때 한인회에 좋지 못한 일이 있었고, 그 성도는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워낙 말씀을 거칠게 하는 분이어서 대놓고 여러 사람들의 잘못을 설명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알고 있는 몇 분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말로 목사님들의 실수와 잘못들을 비판하다보니 좀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 그래도 그분들은 필라델피아 사람들이니까...라는 말을 했습니다. 갑자기 필라델피아 사람이기 때문에 대충 용서가 된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제게는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필라델피아 사람이니까....라는 말의 의미가 뭐냐고 말입니다. 그 분은 꽤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오랜 이민 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필라델피아와 주변 지역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들은 딱 두 가지로 갈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목사들입니다. 그런 목사들은 이 지역에서 이민 목회를 해도 늘 마음은 한국에 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큰 교회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이 지역의 이민 교회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필라델피아 사람으로 살아가는 목사들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불러주지 않아서 못가기도 하고, 정말 이민 목회에 사명을 가지고 삶을 바쳐서 교회를 섬기는 목사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목사들은 분명히 이 지역에 깊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고, 따라서 필라델피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인회와 관련해서 실수를 했던 그 목사님은 이 지역에 30년 이상 살아온 분이고 필라델피아 한인회를 조직할 때부터 오랫동안 관여해 왔다고 했습니다. 많은 잘못이 있고 원망도 듣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이곳을 떠나지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물론 목회도 어려운 상황이고 사람들의 인심도 많이 잃었지만 한인회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은 큰 교회, 잘난 목사님들보다는 필라델피아에 뼈를 묻을 바로 그런 목사님들과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 제가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가요? 필라델피아 사람인가요? 아니면 한국으로 갈 사람인가요?” 그분, 저희 교회 교인으로 등록한 그 성도가 담임 목사인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필라 사람 아니예요. 필라 사람이 되려면 필라를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해요. 그런데 목사님,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여기서 목회 성공하시면 한국으로 가실 거 아닌가요?”

 

물론 그 분의 생각이 옳은 것도 아니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닙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민 교회와 목회자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교회와 목회자의 지역성, 즉 복음의 현장성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 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다양성혹은 다원화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조류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관계 중심의 다양한 형태의 교회가 실험되고 있습니다. 가정 교회, 셀교회 등이 대안으로 나오는가 하면 온라인에서 형성된 관계를 중심으로 교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리고 우리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교회는 지역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과 깊은 관계 속에 있어야 하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지역의 문제가 교회의 문제가 되며 지역의 아픔이 교회의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천국을 말하고 신앙을 말하고 구원을 말하지만 지역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역의 문제와 상황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역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성도로 모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아픔과 고통, 상처와 눈물에 무관심한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교회와 성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와 교회는 그 지역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섬겨야 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한 지역성을 다양한 관계를 통해 획득하게 될 때 바로 그곳에 선교의 현장이 되고 복음이 뿌리는 내리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그 성도의 가게에 들러서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제가 필라 사람이 덜 되었나요?” 그 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하하... 이제 절반 넘었습니다. 거의 다되어가는 것 같네요.”

 

필라 사람 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좋은 이웃되는 일도 참 쉽지가 않습니다.

 

복음적 중립지대의 개념

 

저희 교회의 2013년 표어는 예수 우리의 이웃, 교회 세상의 이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이웃이 되신 것처럼 그 사랑과 은혜로 우리도 세상의 이웃이 되어 섬기고 나누고 헌신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교회적인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서 몇 년 전부터 가르치고 나누고 강조해온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적 중립지대라는 말입니다.

 

복음적 중립지대는 대단한 신학적 개념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교회가 실천하고 있기도 합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복음을 말로 전하지 않는, 삶으로 실천하는 나눔터라고 하겠습니다. 이 복음적 중립지대는 성령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좋은 무대와 같습니다. 지역 사회와 시대의 필요를 바라보며 교회와 성도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섬기고 헌신하며 나누는 현장이 됩니다.

 

이미 많은 교회가 실천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예를 들어 이민 교회가 가장 많이 시도하고 있는 한국 학교는 복음적 중립지대에 속합니다. 노인 대학도 그렇습니다. Day Care CenterAfter School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다양한 사역을 이민 교회는 오랫동안 잘 감당해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한인 이민 교회가 이러한 사역에 동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선교적 개념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역들이 복음적 중립지대로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전제가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이러한 사역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사역이 교회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섬김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고, 나눔 자체가 비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안에 있는 은혜와 사랑을 지역 사회에 대한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감사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사역의 결과는 마치 강물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결국 하나님 나라와 보편적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교회의 성장과 이익에 초점을 맞출 때 그것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지역을 사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미 우리가 목회하는 이민 사회는 그동안 교회가 얼마나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지역을 사용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할수록 교회 자체가 가지 프로그램과 인적 관리에 역량을 소비하게 되고, 지역의 필요와 아픔에 거리를 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익과 성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삶의 나눔터, 그것이 바로 복음적 중립지대입니다.

 

2. 의미

 

복음적 중립 지대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교회의 사회에 대한 리더십의 공간입니다.

 

1972년에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은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예측가능성-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라고 하는 제목의 강연을 합니다. 그때 그가 처음 사용했던 말이 바로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입니다. 과학적으로 이 말은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에 따른 미래결과의 예측불가능성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커다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같은 제목으로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제 한국 쇼 프로그램을 보는 중에 재미있으면서도 약간은 고민이 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홍석천이라는 연예인이 나와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때문입니다.

 

홍석천은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한국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커밍 아웃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가 커밍 아웃이라는 말 자체를 잘 알지 못할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커밍 아웃이라는 것이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이후 출연 정지 등의 다소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요식업계의 CEO가 되었고, 연예계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말하기를 '용산 구청장'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영향력 있는 삶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구청장이 되어 정치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는 21세기에 적합한 리더십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카리스마나 권력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어떤 삶을 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인지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영향력을 세상에 발휘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다 말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참 많이 바쁩니다. 한국 교회의 감소추세에 대해 걱정하랴, 정치에 간섭하랴,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 변호하고 변명하랴, 교단 내부의 문제로 서로 다투고 비난하랴.... 그렇게 바쁜 중에 한국 교회에 쏟아지는 수많은 비판과 손가락질에 대해서 교회는 참으로 무력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한국 사회의 양심도 아니고 거울도 아니며 발전의 동력도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최초의 연예인 커밍 아웃을 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꿈을 말하면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그의 이러한 말을 그저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교회가 인정할 수 없는 생각과 삶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오늘 한국의 한 쇼프로그램에서 영향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한 동성애자의 꿈이 다음 세대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큰 돌풍으로 나타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사회에 대해 만들어내는 복음적 중립지대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공간입니다. 홍석천이라는 연예인이 만나는 사람마다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하지만 그가 열심히 살았던 결과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을 받을 때 더 중요한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그의 성적인 정체성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의 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도 함께 수용되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예배하고 선교하는 일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입니다. 하지만 그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에 지역과 시대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강도 만난 나그네를 외면하고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예배와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는 좀 더 지역에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의 삶이 건강해야 하고, 교회가 나누는 영적인 문화가 건강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빛과 소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삶의 영역들이 건강해야 합니다. 동성애자 홍석천이 자신의 삶의 결과로 우리 사회에 리더십을 발휘하려 할 때, 교회와 성도는 삶을 열고 이웃과 소통하며 우리들의 건강한 삶을 통해 영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교회가 가진 은사와 비전으로 지역 사회를 섬기는 공간입니다.

 

한 꼬마 아이가 꽃봉오리를 자기 손으로 펴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꽃잎은 조각조각 떨어져 버릴 뿐이었다. 마침내 화가 난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내가 펴려고 하면 꽃잎이 떨어져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펴시면 아름답게 펴지는데...?”

 

질문의 심오함에 깜짝 놀란 아이의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아이는 곧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외쳤다.

 

~ 알았다. 하나님은 꽃을 안쪽에서부터 펴시니까 그런 거구나!.”

 

- 미르바 던 ‘Truly the Community’

 

어제 잘 아는 목사님 한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있는데 우리 지역에 신학교가 있으니 혹시 미국에서 목회를 시작하고 싶은 분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형편과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원래 그 지역의 큰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분립 개척된 교회였고, 성인이 40명 정도 모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목회자 한분을 청빙해서 2년 정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흥하고 성장하면 좋겠는데, 상황이 어렵고 성도들이 조금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도 갑자기 사임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장로님 한 분을 포함하여 성인 15명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좋은 목회자를 만나서 교회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과연 그 교회는 그들이 원하는 좋은 목회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 교회가 목회자를 청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 지역에 바로 그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만일 아직 준비된 대답이 없다면 함께 모이고 기도하고 연구해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좋은 교회를 찾아서 연합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느 한 교회의 잘못된 행정이나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는 것, 그들에 대한 반대와 미움이 새로운 교회 개척의 이유가 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시대를 본받지 않는다는 것,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교회가 존재해야 할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지역의 다른 교회들과 차별되는, 우리만의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다듬어야 하고, 확실하지 않다면 찾아야 합니다. 이 지역과 우리가 사는 시대에 하나님이 이런 교회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과 변화는 바로 그 비전과 목표로부터 한걸음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로빈 스크로지스라는 신학자는 자신을 가장 번거롭게 하고 수고하게 하는 잘못된 삶의 원칙은 바로 성취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취 원칙’(performance principle)이란 성공 혹은 성취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을 최대의 선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성취의 원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숫자입니다. 사회적인 성공도, 경제적인 성취도 모두 숫자로 평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러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성취의 원칙에 교회가 순응하게 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잘되는 교회, 번성하는 목회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성취와 성공에 집착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소수의 성취를 즐기는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다수의 실패한 교회와 목회자가 한 지역에서 함께 경쟁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울도, 빛도 소금도 되지도 못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취와 성공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장()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성취 원칙의 함정은 개인의 삶에 대한 평가와 가정의 행복에 대한 기준도 바꾸어 놓습니다. 적어도 이정도의 부는 갖춰야 하고, 적어도 이정도의 명성은 얻어야 하고, 적어도 이정도의 지위는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삶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기쁨과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늘 부족하고 갈급하게 삽니다. 성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삶의 현실을 바라보며 보다 많은 성취와 성공에 허덕이게 됩니다. 가정의 행복은 어떻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성취의 일정한 기준을 들이대고 그것을 이루어야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고 요구한다면 과연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성경 어디에서 우리가 성공하고 성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은 없습니다. 다만 주신 삶에 감사하며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삶에 대해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입니다.

 

교회와 사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목회와 대형교회가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역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목회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숫자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우심을 성도와 교회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날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민 교회들이 다양한 사역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성공담을 교회를 통해 실현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현대 문화가 가진 물질주의, 시간관, 부도덕과 유행, 성공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을 거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가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에서 자유를 누리는 분이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시고 십자가라는 참으로 신실한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께서 그런 길을 먼저 걸어가셨다면, 우리 또한 그 길 가운데 우리의 인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각각의 피조물을 지으시고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어주시는 것은 그 모든 개체에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각 성도의 삶이 그러하고 각 교회가 그러합니다. 각각 그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목표를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안으로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성도와 교회, 안에서부터 동력이 자라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자원들이 오직 그 성도와 교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조합이 되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특정한 기준으로 획일화되지 않은, 각각의 창조적인 은사와 개성이 성도의 삶과 공동체를 통해 표현될 때 하나님의 창조적 성품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성도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섬기듯이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교회들 또한 각각의 교회가 다른 은사를 가지고 지역 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예배, 보다 나은 교육 환경, 성도간의 친밀도 등으로 다른 교회보다 우리가 얼마나 더 나은가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오늘날 한 지역에 존재하는 많은 교회들이 다른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기보다 다른 교회와 차별화된 은사와 사역을 개발해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회자와 교회에 허락하신 은사와 비전을 개발하고 한 지역사회에서 각각의 교회가 각각의 은사를 따라 각각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 그것이 다양성이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는 시대에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성과 온전하심을 보여줄 수 있는 길입니다.

3) 사회와 교회의 상호 이해와 소통의 공간입니다.

 

저희 교회가 현재 지역 사회에서 복음적 중립지대의 개념으로 하고 있는 사역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는 약 10년 전 개척 초기부터 인권 문제와 상담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인권이라고 말하면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여성 봉사회가정 상담 연구원이라는 기관을 세우고, 교회 내외의 자원 봉사자들을 모았습니다. 적절한 훈련을 거쳐서 영어 교육, 법률 자문, 의료 봉사, 통역 서비스, 자녀 교육, 가정문제 등의 분야를 나누어서 지역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구체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3년 전부터 5개 교회가 연합하여 다솜 한국 학교를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Afterschool 을 시작합니다. 2년 전부터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 합창단을 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올해부터는 지역 사회 노인들까지 확대해서 단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1-2회 정도의 공연을 통해서 지역 사회 노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 지역 School District에 있는 교사들과 전문가들을 모시고 학부모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매년 주제를 달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매년 1상담 학교를 열어서 가정문제, 청소년 문제, 약물 중독 등의 다양한 주제로 지역의 이웃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상담학교의 이름을 요셉 프로젝트로 바꾸었습니다. 요셉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자는 내용입니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필라 근교 지역에서 교회의 규모로 따지만 아직 내세울만한 교회는 아니지만 이웃을 섬기고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장 앞서나가는 특별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교회의 부흥을 목표로 하거나 개인의 목회적 성공을 위해 해왔다면 아마도 벌써 지치고 낙심했을 것입니다. 함께 섬기고 일하는 성도들이 그 사역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사역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성도들 모두에게 늘 강조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활동을 하는 중에 전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 출석하는 성도들이 이런 행사나 기관에 찾아왔을 때 우리 교회로 오라고 권면한다든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언가 도움을 받기 위해 이런 기관이나 행사에 참여했을 때 전도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복음적 중립지대의 사역은 지역 사회와 교회가 함께 만나 소통하고 친밀감을 가지는 장()입니다. 다른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지역 사회의 이웃들이 편하고 부담 없이 함께 자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 사회가 교회를 이해하고 친밀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회를 그저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또한 복음적 중립지대를 통해서 이웃의 삶을 배우고 알아가며 교회가 무엇으로 섬겨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부연하자면, 상담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 주변 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이 경계했었습니다. 다른 교회의 담임 목사가 섬기는 상담소에 자기 교회 성도들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좋지 못한 소문을 고의적으로 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년 정도 상담 사역을 해온 결과, 오늘날 그런 목회자들은 없습니다. 상담의 결과로 다른 교회 성도들이 우리 교회로 적을 옮기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신앙을 가지게 되고, 저희 교회 성도가 되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와 위기의 해결이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역들을 통해서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 섬기는 일들을 한 지역에 있는 다양한 교회들이 협력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로부터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을까요?

 

4) 교회가 사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교회의 지역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도시공동체 연구 소장인 성석환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도시를 새롭게 하는 지역 교회들이 필요하다. 파편화와 분열, 경쟁과 갈등의 현장인 도시를 화해와 조화, 나눔의 공동체라는 이미지로 변화시키기 위한 교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미 이러한 필요에 응답하는 사회적 움직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국가나 공공 기관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가시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정책 실행에는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긱기 마련이다. 시민 사회로 대변되는 제3영역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갖는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복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 교회도 이와 같이 국가나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대한 배려와 함께 지역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 뉴스미션 2013. 1. 28.

 

제안하자면, 도시에서는 협력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시민단체나 조직들이 많이 있으니 이들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개발하거나 혹은 교회가 기존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오늘과 같은 모바일 시대에 더 적합한 전략이다.

이러한 유연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듯한 배려와 지원, 그리고 함께 상생하는 공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이고 신선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지역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지역 내의 여러 단체들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전문적인 자원봉사훈련을 통해 교인들을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봉사와 섬김의 사역으로 초청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맨해튼의 리디머 교회는 뉴욕의 거의 모든 시민단체와 협력해 시간별로 작성한 각 단체의 사역표가 있어서, 교인들에게 자신의 지역에서 참여할 수 있는 각 단체의 사역들을 제공하고 있다. ‘Hope for New York’이라는 단체는 교회가 세운 NGO인데, 이 단체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돕는 이들을 돕는 것이다. 이미 다양한 사역을 하고 하는 시민단체들의 사역을 돕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교인들은 자기 지역에서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고 교회는 지역교회로서 그 면모를 갖추게 된다.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단체들과 지역교회를 연결하고 행정당국과 기업들을 설득해 지역을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담임목사인 팀 켈러는 이미 뉴욕의 도덕적 지도자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금이 적기이면서도 호기이다. 지금 만약 이러한 도시선교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도시의 교회는 이제 도시에서 도시의 자원과 가능성을 활용해 하나님나라의 원리가 작동하는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전개해야 한다.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지역통화, 주민역량 강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등 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들을 엮어내는 역할을 교회가 감당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날로 하락하는 가운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적 책임을 다하여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5:16)”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점점 더 소외되는 도시의 이웃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우리도 다문화 사회로 이미 진입하고 있는 지금, 복음의 진정한 정체성을 이웃과 지역에서 발견하려는 노력은 너무도 절실한 당면 과제이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의 도덕적 지도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뉴스 미션 2013.2.11.

 

뉴욕의 리디머 교회와 같은 사역이 그리 멀리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하고 있는 사역이 그 교회의 사역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기사는 2010년 가을에 대부분의 미주 한인 신문들이 대서특필했던 조앤 정이라는 한 여의사의 이야기입니다. 103일 한국일보의 기사를 인용합니다.

 

미국의 대표적 우범지역인 캘리포니아주 이스트 오클랜드지역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며 활발한 지역 봉사활동을 해온 아이비리그 출신 한국계 여성 소아과의사가 미국 주류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조앤 정(39.한국이름 김지은) .

 

정씨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교수인 남편 러셀 정(47), 아들 매튜(6)와 함께 사는 지역은 미국에서 범죄율 수위를 다투는 이스트 오클랜드 내 빈민가로, 주민의 25%가 절대빈곤 상태에 있고, 해외 태생이 40%를 넘는다.

 

실제로 정씨는 이곳에 사는 동안 두 차례나 갱단 등이 쏜 총탄이 창문을 박살내고 집안으로 들어왔고, 바로 집 밖에서 10대 소년이 총에 맞아 숨졌으며,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한 블록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서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마약 매매와 매춘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밤 시간대에는 현지 주민들조차 바깥출입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것.

 

정씨는 1999년 이곳으로 들어와 '뉴 호프 커버넌트 교회(New Hope Covenant Church)'의 일원으로 의료봉사와 함께 이곳에서 자라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튜터링(방과후 과외학습), 멘토링, 선교활동 등을 병행하면서 지역사회 내 빈곤퇴치와 폭력추방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또 영어소통이 어려운 아시아 이민자들을 위한 병원인 아시안헬스서비스 산하 프랭크 캥 메디칼센터에서 소아과 의사로도 근무하고 있다. 집과 병원은 3정도 떨어져 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은 병원, 나머지 나흘은 가족과 지역활동을 위해 쓰고 있다고 정씨는 말했다.

 

정씨는 "이 지역은 학교를 포기하는 청소년이 많지만 튜터링과 멘토링, 안전한 곳 제공하기 등 활동으로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자신이 속한 교회가 주민들과 단결해 마약매매를 추방했으며, 지역 주민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낡고 비위생적으로 방치한 아파트 소유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00만 달러를 받아낸 뒤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역 주민들을 독려해 마약매매를 보면 경찰에 신고하도록 해 이 지역에서는 마약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정씨의 이 같은 활동은 지난 달 샌프란시스코 유력 일간지인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1면 톱 기사와 함께 두 개면에 걸쳐 자세히 소개됐다.

 

정씨는 어린 청소년들이 총격으로 제대로 꿈도 펴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을 볼 때마다 슬픔을 넘어 분노와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종교적인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으며 LA폭동 때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이 소외되고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빈민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의대를 가게 된 것도 봉사활동을 위한 것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생후 8개월 때인 1971년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온 정씨는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UC 샌프란시스코 의대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사회의학(Social medicine) 부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씨는 아시아 젊은 갱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 이곳에 먼저 들어와 있던 당시 사회학과 전공 대학원생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도 하버드와 스탠퍼드, UC버클리에서 수학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정씨가 그의 남편과 함께 아이비리그 교육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공식이라고 설정돼 있는 고정관념을 바꿔 놓았다고 찬사를 보냈다.

 

3. 마치면서

 

뉴욕의 리디머 교회나 샌프란시스코의 뉴 호프 커버넌트 교회가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와 전혀 다른 교회이거나 다른 것을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복음이 증거되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지도력, 지역사회와의 친밀감과 지역 사회에 주는 감동은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이민 한인 교회도 사회적 지도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믿음은 있지만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없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시 교회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대안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겠지만, 저는 이 강의를 통해서 지역 교회를 섬기는 한 목회자와 성도로서 저희 교회가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는 사역에 대한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신학적 개념도 아니요, 교회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한 목회자와 지역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비전을 품고 그 교회가 뿌리 내리고 있는 지역 사회를 복음으로 섬기고자 하는 깊은 고민과 기도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빛나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재미 고신 교단, 그 전통과 역사가 오늘 우리들의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사회 속에서 현장성을 획득할 때 하나님이 우리 교단과 교회에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가 사랑하는 우리 교단과 교회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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