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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5 기쁨의,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롬 12:1) 김나래 202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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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24. 6. 5.

 

기쁨의,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롬 12:1)

 

찬송가 288.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구)204장] /  325. 예수가 함께 계시니 [(구)359장]

 

  제가 오래 전에 집회를 했던 한 교회에서 독특한 경험을 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성도들과 인사를 할 때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서로 허그를 하고, 등을 두들기면서 “사랑합니다.”하고 했습니다.  제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어서 참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인사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힘이 들었던 것은 그 교회의 상황이었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심각한 관계의 위기 속에 있었고, 성도들 또한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자리를 같이 하면 장로님들에 대한 비난을 들어야 했고, 장로님들과 같은 자리를 하면 목사님에 대한 많은 비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그 목사님은 참 힘들게 교회를 사임하고 말았습니다. 그 교회의 청빙을 받고 온지 1년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젊은 성도들을 부를 때 형제, 자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딱히 직분에 대한 호칭이 없을 때 ‘____ 성도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____형제’ 혹은 ‘____자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친근하고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문제는 과연 제가 그 성도들을 정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 여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저 친근하게 느끼니까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고 나누고 있는 교회적 관계가 정말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되고 한 형제, 자매가 되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때 그 호칭과 우리의 관계가 영적인 일치 안에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일입니다.  사랑 없이 사랑을 말하는 것은 허구이거나 거짓이고, 섬김과 나눔 없이 형제요 자매라고 고백하는 것 또한 스스로를 속이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교회를 섬기는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서로에 대해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 권면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에서 교회가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교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바울은 12장부터 믿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그것을 ‘윤리’라고 말합니다. 성도와 교회가 신앙 위에 세워야 할 윤리,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울은 성도와 교회의 윤리의 첫걸음이 무엇인지 롬 12:1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가 성도의 윤리의 첫 걸음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도와 교회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첫걸음을 시작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이렇게 일반적이면서도 당연한 권면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한다’고 말할까요? 성도와 교회는 이렇게 늘 예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잘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권면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2000년 전에도, 지금도 이 일이 그리 쉽지가 않고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자비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마음과 삶을 다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릴 때까지 말입니다.

 

2. 기뻐하시고 거룩한 (pleasing and holy)

 

어떤 예배가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예배일까요? 바울은 그 답을 1절에서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성도와 교회가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제물이 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제물 됨에는 세가지 기준이 제시됩니다.  바울은 제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pleasing God)고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거룩해야 합니다.(holy) 그리고 세 번째는 살아있어야 합니다.(living) 이 세 가지가 잘 구비되어 있는 제물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사람에게는 기쁨이 되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도 있을까요? 성경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합니다. 예배의 중심이 사람이 되는 현상은 가인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분명하게 우리의 믿음과 교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홍수 후에 노아도,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던 아브람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제물과 예배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사울왕과 사울왕이 드리는 제사를 함께 받지 않으신 것과도 같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않을 때, 제물을 드리는 동기와 목적이 거룩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예배하고 헌금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기억해봅시다. 그들은 많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지만 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상실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셨습니다.

 

3. 살아있는 제물

 

마지막으로 바울이 권면하는 마지막 제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living) 제물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우리의 몸으로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몸이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제물이란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에 의하면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따라서 계속적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살아있는 제물’을 말합니다. 이러한 제사는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죽음의 짐을 예수님께서 다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되 죽음의 책임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로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롬 6:14에서 우리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고, 고전 6:19-20에서는 우리의 몸이 성전과 같으므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몸은 우리의 삶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인격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이전의 삶과 인격을 포괄하는 것이며, 예배의 정신에 대한 일치를 강조하는 말로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살아있는 제사는 성도의 마음과 생각과 삶이 일치하여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몸’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의 가능성은 몸을 우리 주님의 몸되신 교회로 보는 견해입니다. 12:5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적이 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몸’이 복수형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바울은 ‘너희 몸들을’이라는 말을 통해서 로마에 존재했던 많은 가정교회들이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만한 제물로서의 교회가 되라는 권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적 관계와 모임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희생으로 드리는 교회,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교회의 모델입니다.

 

‘몸’을 개인의 삶으로 보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로 보든 우리가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영적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는 제물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성도도 죽어야 하고 교회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죽었으되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죽고 무엇에 대해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에 대해 죽어야 합니까? 무엇이 살아 있어야 성도요 교회입니까?

 

4. 나의 형제들이여, 나의 자매들이여....

 

바울은 12장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라고 로마 교회를 부릅니다. 이 말은 꼭 남자 성도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새번역에서는 “형제 자매들아!”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로마 교회를 자신의 형제로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간절한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을 그 형제들, 그 자매들, 그들의 가정과 교회를 위해 바쳤습니다. 지금 그가 부르고 있는 그 성도들은 바로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 결과들입니다. 따라서 그는 그들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형제요 자매라 부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모자라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끌어옵니다. 내 사랑, 내 마음으로는 부족하니 하나님의 너희들을 향한 자비와 긍휼하심에 뿌리를 내리고 너희를 권면하는데, 너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거룩하고 살아있는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너희들을 위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처럼 너희도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부르며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함께 힘을 모아 세상을 섬기며 세상을 하나님의 기쁨의 땅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살아 있는 거룩한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 12:1에서 중요한 한 개념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서로 형제 되었고 그 관계를 지켜나가는 일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서로에 대해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만한 거룩하고 살아 있는 제물이 되는 것을 동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삶을 사셨고, 바울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누린 로마교회와 오늘날 우리 교회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영적인 의무가 부여됩니다. 함께 형제됨을 지켜나가는 교회, 서로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제물이 되는 교회, 자신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 살아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가 참된 교회요, 우리 초대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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