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먼저 들어주십시오."
이응도 목사
미국으로 유학을 온 후 제게 일어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말을 잘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문득문득 ‘내가 왜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할 만큼 때로는 많은 말을, 때로는 공격적인 말을, 때로는 확실하지 않은 지식들을 내 것인 양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자신도 잘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첫 학기 상담을 공부하는 동안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상담을 받으면서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발견했던 문제의 근본적인 동기는 소위 ‘자존심’ 혹은 ‘자존감’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미국인인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위축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 부지런히 영어를 준비한다고 했건만 막상 미국으로 와서 수업을 시작해보니 매 수업을 마칠 때마다 깊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토론이라도 할라치면 바늘방석이었습니다. 동료 학생들이 대부분이 미국인인데다가 혹 한국인이 있다고 해도 저보다 먼저 유학을 왔거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할 수도, 가끔 던져지는 질문에 대답할 수도 없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느낀 적이 없었던 열등감에서 허우적거리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혹시 한국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생기거나 교회에서 성도들과 자리를 같이 할 때 저는 자신도 놀랄 만큼 많은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 자리에 언급되는 모든 주제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고, 누가 조금이라도 저와 다른 의견을 피력하기라도 하면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결국은 자존심이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것은 더 많고 더 똑똑한데 다만 영어를 못해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말을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의해서 받았던 모든 상처와 느꼈던 열등감을 ‘말’을 통해서 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절망과 갈등을 느끼고 있을 아내에 대해서도 늘 공격적인 언사를 일 삼았고, 아직 어렸던 제 아들에게도 무조건 가르치고 교훈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상처와 자존심이라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저의 삶을 콘트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사람이 좀 변한 것 같다는 말을 듣기까지 저는 자신의 그러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저를 돌아보게 하는 기억들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이민 사회의 가정이 공통적으로 겪는 과정이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민 사회는 말이 없는 사회이면서 말이 많은 사회입니다. 이민 사회는 자기 방어적인 사회이면서 공격적인 사회입니다. 이민 사회는 고학력 중심의 교양이 풍성한 사회이면서 지극히 감정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민 사회는 미국에 존재하고 있지만 더 한국적인 사회입니다. 이민 사회는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열심히 서로가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사회입니다. 이민 사회는 목적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처와 자존심이 이끌어가는 사회입니다. 결국 이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들어주는 사람은 부족하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여러분의 직장과 교회에서의 생활에서 찾아 보십시오.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직장과 교회가 ‘너무 말이 많다!’고 불평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가정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와의 대화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간단한 필요와 정보를 나누는 대화 외에 자녀들의 고민이나 생각,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정, 하고 싶은 것이나 피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있습니까? 혹시 자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마음에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유익한지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자녀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이 받았던 상처와 열등감을 자녀를 교훈하는 가운데 부정적인 언어로 쏟아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설득과 대화의 기술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잘 듣는 것’입니다. 성의 있게 들어주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신뢰와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와 여러분의 대화의 가장 큰 장벽은 언어가 아니라 바로 ‘들어주지 않고 말하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하기’의 동기가 상처와 자존심에 근거한 것일 때 그 말은 오히려 자녀들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안겨주기 쉽습니다.
자녀와의 대화를 원하십니까? 먼저 들어주셔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 문을 열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들어주셔야 합니다. 자녀를 변화시키고 싶으십니까? 먼저 들어주는 사람으로 부모가 변화되셔야 합니다. 먼저 들어준 후에 비로소 마음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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