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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난 소중하니까~~” 이응도 목사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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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난 소중하니까~~”

몇 년 전쯤에 인기 있던 한국의 코메디 프로그램 중에 ‘노 브레인 서바이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코너를 통해서 큰 인기를 얻었던 ‘정준하’라는 개그맨이 있었지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연기를 했던 그가 유행시킨 몇 마디가 있습니다. “날 두~번 죽이는 거예요.” “~~에 관한 안좋은 추억이 있어요.” 등의 말들입니다. 한 번 쯤은 생각하게 만드는 유행어였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 또 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참을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사회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소중하니까요~”


얼마 전 제가 자꾸 아들 가일이에게 “아빠는 가일이를 사랑해~ 가일이가 제일 좋아~ 자랑스러워~~” 라고 간지러운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는 왜 내가 좋아?” 라고 묻더군요.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제 대답은 아주 심플했습니다. “응, 가일이는 아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니까” 너무 당연하고 옳은 대답 아닙니까?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요, 다른 그 누구보다 잘나서도 아닌 ‘하나 밖에 없는 내 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일이가 또 묻더군요. “그럼 만일 아빠한테 아들이 많이 있으면…? 아빠는 나 말고 아들이 많이 있어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 줄거야?” 어떻습니까? 혹시 아들 많이 있는 부모님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아들들을 대할 때 얼만큼의 사랑을 주십니까? 각각 1/4 씩, 혹은 1/3씩, 혹은 1/2씩 부모의 사랑을 분배하십니까? 저는 잠시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다가 가일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이 많이 있어도 아빠는 가일이를 지금하고 똑같이 사랑해! 너는 아빠의 소중한 아들이잖아”

개인적으로 제가 자녀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크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존감’에 대해서입니다. 이것은 자존심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자존감이란 ‘가치’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과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든든한 자부심은 긍정적이고 당당한 자아상을 만들어냅니다. 그 건강한 자아상에 근거하여 살아갈 날들에 대한 밝은 전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들은 자존심에 집중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우월을 느끼기를 좋아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음의 다섯 가지에 근거해서 자존심을 세우려 합니다. 첫째는 ‘소유’입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판단의 근거입니다. 둘째는 ‘성취’입니다. 개인의 삶에 대한 업적 중심의 평가는 유혹적입니다. 셋째는 ‘직책’입니다. 업적과 직책은 사람의 명예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높아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업적과 명예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넷째는 ‘외모’입니다. 외모는 현대 문화를 이해하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보다 아름답고 섹시한 외모는 다른 사람에 대한 자존심의 근거가 됩니다. 다섯째는 ‘인간 관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속감을 가지기를 원하고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려 합니다. 그 속에서 동질감을 느끼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상대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변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자존심에 근거한 자기 평가는 늘 불안할 수 밖에 없고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 가치가 필요합니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든 피상담자들은 바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잘못된 삶을 살아도, 자신 때문에 가정에 상처와 아픔이 남아도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 받을까 잠시 자존심이 상해서 분노하고 책임을 돌리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무책임하고 질서 없는 삶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가치가 낮기 때문에 다시 그런 삶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한 사람, 한 사람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 존재가 충분히 존중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방식으로 살기도 합니다. 한 개그맨이 만들어 낸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신앙의 고백을 해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서 바울은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불하고 살만큼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대로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가치를 더욱 빛내며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과 이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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