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 홈 >
  • 예배와 말씀 >
  • 주일 예배
주일 예배
부활주일예배 -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na kim 2017-04-17
  • 추천 0
  • 댓글 0
  • 조회 519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82/5258832

 

 

2017. 4. 16.

 

* 본 문 : 골로새서 31-4절 말씀

* 제 목 :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라비 자캐라이어스(Ravi Zacharias)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 사람이면서 드물게 기독교 변증가의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개 토론에서 독특하면서도 대단한 설득력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책도 많이 썼지요. 그가 ‘Cries of the Heart’라는 책에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아담의 창조’(Creation of Adam)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전에 한번 여러분께 보여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보실까요? (그림1)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세계 최대의 벽화인 천지창조의 일부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서 성당의 천장에 남겼습니다. 그림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 속에 많은 비밀과 이야기들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자캐라이어스는 그 중에 아담의 탄생에 관한 그림에 주목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이 그림에서 아담은 비스듬히 누워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과 함께 좀 위태롭고 불편하게 아담을 향해 손을 뻗고 있습니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의 모습과 하나님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편안한 자리에 한 팔을 대고 누워 있는 아담의 모습을 보라, 하나님의 간절한 손가락 마디와는 달리 아담의 손목은 귀찮은 듯 아래로 축 쳐져 있다.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애절한 그리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은 아담의 마음이 그림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십니까? 예술가아면서 과학자였고 또 철학자였던 미켈란젤로는 그의 모든 그림에서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합니다. 그는 이 그림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요?

 

어쩌면 사람은 창조된 직후부터 하나님에 대한 관계적 강자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와 부모 가운데 관계의 강자는 누구이던가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부모가 자녀를 더 사랑하게 되고 자녀는 관계의 강자가 됩니다. 아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 대해 초점을 맞추시지만 그는 자신의 마음에 유혹이 생기면 유혹을 따라 움직입니다. 창조되자마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강자가 되어버린 아담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과 교회, 누가 강자일까?

 

미켈란젤로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만,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한번 표현되면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 작품을 즐기는 사람의 해석이 중요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의 아담에 대한 창조의 벽화를 보면서 창조되자마자 하나님에 대해 강자가 되어버리는 아담을 모습을 본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에 강자는 누구일까요?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하고, 누가 누구를 위해 더 많이 헌신하고, 누가 누구를 위해 더 많이 희생하는 것일까요? 여러분과 하나님 중에 관계적 강자는 누구일까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고, 더 무관심한 쪽이 강자가 되는 치명적인 사랑의 게임...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늘 약자가 되고 패배자가 되지 않습니까?

 

저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가장 그들이 어리석어 보일 때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고 그들은 광야에서 모세를 기다립니다. 각 지파의 대표들은 이미 모세와 함께 호렙산으로 올라가서 장암하고도 엄청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내려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이 될 율법을 모세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두려워합니다. 염려합니다. 모세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것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잠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서 금방 우상을 만들어서 숭배한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그날 아침에도 만나를 먹었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도 관계적인 강자와 약자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더 많이, 비교할 수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2. 두 단계, ()애굽과 탈()애굽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담의 창조의 과정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을 수 있습니다. 첫단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은혜와 복을 허락하시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것으로 복되고 영광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정복하고 다스리며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야 합니다. 아담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형상은 이 모든 일들을 창조적으로 감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만 아담이 실패했을 뿐입니다.

 

출애굽의 과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애굽에게 내려졌고, 홍해가 갈라집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하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허락됩니다.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고, 전쟁을 하면 해와 달이 멈추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첫 번째 출애굽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애굽이라고 붙여봤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것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으로,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상징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아도 그들의 마음과 삶이 과거의 죄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애굽을 동경하고 돌아가려 합니다. 예를 들어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살펴본 후 10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14:2-4) 그들은 몸은 출애굽하였지만 마음과 심령은 애굽에 갇혀 있습니다. 오직 그들 중에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영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애굽을 벗어났습니다. 출애굽 뿐만 아니라 탈애굽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들 두 사람이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을 관계적 강자의 자리에 돌려드리고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의 자리를 회복했다고 보겠습니다.

 

3.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여러분, 오늘 우리는 2017년의 부활주일을 기념하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우리가 확실하게 믿는 것은 또 있습니다. 그 죽음과 부활이 우리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신 편지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이것 역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다소 부정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조건문을 사용하셨을까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뭔가 좀 걸리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아담 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으심을 받았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였으면,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얻었으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면.... 그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까요?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신 은혜와 사랑에 적절하고 상응하는 삶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부활절이 될 때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선언하고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만 강조하고 그쳐서는 안되겠습니다. 그것은 창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출애굽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한 단계, 즉 하나님이 하신 일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사역에, 부활과 새생명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민합시다. 기도하면서 답을 구합시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과 은혜 가운데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부활은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4. 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골로새 교회에 권면하십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저는 이 한글 번역보다 영어 번역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절에서는 “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라고 했고, 2절에서는 “Set your minds on things above”라고 했습니다. 마음과 생각을 다해서 이 땅에 속한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뜻에 합당한 가치를 추구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왜 이 땅에 속한 것에 마음과 생각을 두지 않고 위에 있는 것,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속한 가치에 마음과 생각과 삶을 헌신해야 합니까? 3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3:3) 사도 바울은 여러 성경에 반복해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와 악에 대하여, 이 세상의 가치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하여 새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내가 일정한 기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에 육체 가운데 살게 됩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동안 나는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을 해석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 이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추구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위의 것을 추구하며 새생명의 삶을 사는 성도와 교회에 대한 약속을 잊지 않습니다. 3:4을 보십시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When Christ, who is your life, appears, then you als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3:4/Col 3:4) 이 약속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고 온 마음과 생각과 삶을 다하여 위의 것을 찾으며 헌신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또 한번의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영광과 은혜가 우리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면, 새생명을 얻었으면.... “Let's set our hearts/mind/life on things above!"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제 하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우상과 은혜(4)- 부요한 사람 na kim 2017.04.23 0 572
다음글 2017. 4. 14 정사예배: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na kim 2017.04.16 0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