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3. 인생, 하나님의 집(엡 2:22) | na kim | 2011-0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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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3.
* 본 문 : 에베소서 2장 22절 말씀 * 제 목 : 인생, 하나님의 집
Max Lucado 목사님의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요지는 로마나 혹은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동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고, 끝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하루는 자기 집을 지어준 건축가가 찾아왔습니다. 아주 숙련되고 선한 기술자였습니다. 그는 목사님께 혹시 집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혹 잘못된 것들이 발견되지는 않는지 목록을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서 살다보니 문제가 많이 발생했었습니다. 방문 하나가 잘 맞지 않고, 다용도실에는 창문이 삐걱거리고, 아이들 방 화장실에는 수건걸이가 없고... 그냥 살면 문제가 없는데, 목록을 쓰려고 자세히 살피다보니 정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 목사님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이 하듯 목록을 쓰신다면 어떻게 될까... 알고 보면 나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인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함께 먹고 마신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전으로서의 나의 삶은 과연 온전할까...? 정말 많은 집을 지어본 기술 좋은 건축가가 지은 집이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이제 단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삶이라는 집을 지어서 하나님을 모신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신의 삶에 있는 문제의 목록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실의 문은 워낙 사용하지를 않아서 경첩이 녹슬었습니다. 질투라는 이름의 난방이 펄펄 끓고 있어서 집이 너무 덥습니다. 다락방에 겹겹이 쌓아둔 후회는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지하실에 꼭꼭 묻어둔 비밀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관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쌓인 책장은 곧 무너질 것 같습니다. 자존심의 담벼락이 너무 높아서 다른 사람과 진솔한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기록하다가 주저앉고 맙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여러분의 삶에는 하자가 없습니까? 든든하고 편하고 좋은 집으로 여러분의 삶을 꾸미고 계십니까?
1. 우리의 삶, 하나님의 집
성경은 분명 말하기를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육신을 말하는 것이지만, 나아가서 우리의 삶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전이요 집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잘 꾸미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활동하시고 쉬시는 영적 공간으로서의 나의 삶은 과연 주인되신 하나님께 적절한 모습으로 제공되고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서의 우리의 삶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2)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특이하게도 이 짧은 한 구절의 말씀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처소인 우리의 삶이 그만큼 중요하고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라는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성령 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함께 지어져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 말씀의 특징은 ‘함께’에 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다른 성도들과 교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 만들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에서 생각할 것은 “지어져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생각할 말씀은 이 마지막 특징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면서 또 수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로서의 우리의 인생은 한편 만들어지고 다른 한편 수리되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비록 좀 부족하고 좀 문제가 있어도 우리를 원래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2. 수리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의 집에 살기 시작한지도 벌써 7년째입니다. 가끔 집을 살 때의 여러 기억들이 되살아납니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집을 싸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한번은 경매 목록에 올라와 있는 집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제 눈에 보기에 정말 좋아 보이는 한 집이 있었습니다. Wissahickon School District 앞에 있는 뒤뜰이 넓고 거실이 좋은 2층 집이었습니다. 은행에서 요구하는 가격이 일반 시세의 70% 정도였습니다. 집에 들어가 본 후 “와, 이건 거의 하나님의 도우심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약을 하려고 하다가 너무 싼 것도 마음에 걸리고, 또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건축일을 하시는 한 집사님을 모시고 다시 가봤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자 마다 고개를 갸우뚱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이 집은요, 지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집이 많이 기울었는데요.” 그리고는 2층으로 올라가서 방 한쪽 구석에서 동정을 굴리시더군요. 동전이 빠른 속도로 방 다른 쪽으로 굴러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집이 많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원래 인터넷에 올라왔던 그 집의 asking price가 18만불이었습니다. 그 지역에 그만한 집이면 25만불 이상은 되었어야 했는데, 경매에 붙여진 집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 집을 보고 난 다음 은행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을 사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집이 기울었고 문제가 많아서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몇 일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면 그 집을 사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글쎄... 한 12만불이면 사겠다고 했습니다.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더군요. 그리고 몇 일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12만불에 해주면 정말 사겠냐고 하더군요. 아... 이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건축일을 하시던 분께 물었습니다. “12만불 해주겠다는데, 살까요?” 그랬더니 대뜸 반문하기를 “왜요, 목사님, 그 집 사서 다시 지으시게요?”라고 했습니다. “수리를 하면 안되나요?”했더니, “아마도 집값만큼 들걸요...”하더군요. 깨끗하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사 온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사택입니다. 물론 지금 저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과분하고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집입니다. 하지만 이 집이라고 해서 하자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저희 집은 대대적인 수리를 했었거든요. 지붕도 갈았고, deck도 만들었고, 제가 워낙 알러지가 심해서 카펫을 걷고 마루도 깔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욕실에 수돗물이 콸콸 새길래, 이정욱 집사님의 지도하에 제가 수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저는 12만불밖에 안하는 더 큰 집을 선택하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더 비싸고 작은 집을 선택했을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수리하고 살 수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수리가 불가능한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쳐서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라는 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성령 하나님과 교회의 도움으로 수리 가능하십니까? 변화 가능하십니까? 고치면 쓸만 합니까? 아니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도전해도, 아무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도, 아무리 땀 흘려 노력해도 내 이 연약한 본성은 변화되지도, 수리되지도 않는 것일까요?
3. 목록을 만들어봅시다.
설교의 서두에 말씀드린 Max Lucado 목사님의 글을 읽고 저도 한번 시도를 해 봤습니다. 뭐부터 고쳐야 할까....? 음, 일단 경찰에 Ticket을 너무 많이 받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 좀 화를 많이 내고 짜증이 많아진 것 같은데... 게으른 것도 그렇고,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생각들이 대해서도 별 자신은 없고, 에 또.... 목사치고 공부도 너무 안하고, 기도도 부족하고, 에 또.... 어릴 때 목욕탕에 오랜만에 가면 무릎과 팔꿈치에서 벗겨도 벗겨도 때가 계속 나오곤 했었는데, 마치 그 때의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인가 하면 저기에도 문제가 있고, 저것인가 하면 여기에도 문제가 있더군요. 집에 하자가 있습니까? 우리들이 사는 집에는 어디에 문제가 있고, 어떻게 고치면 된다고 하는 목록을 작성할 수 있지만, 도대체 나라고 하는 사람은 목록 작성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저히 수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연약함, 이 부족함, 이 악함, 이 비겁함을 말입니다.
수리할 것이 많다는 말은 곧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이겠지요? 만일 그 집의 수리 비용이 그 집값보다 더 많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은 그런 집을 사시겠습니까? 거들떠 보지도 않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저를 보시면서 계산을 해 보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얼마를 들이면 저 집을 좀 깨끗하게 고쳐서 사용할 수 있을까? 내가 좀 편히 거하고 그 집을 통해 예배와 영광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답이 나왔습니다. 저 집은, 이응도라고 하는 인생은 그 수리 비용이 그 인생이 가진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 집을 살리기에는 도대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경제성이 없는 것입니다. 얼만큼 경제성이 없는지 아십니까? 우리를 그 가슴이 품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고쳐서 사용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지불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대가로 지불하고 우리를 고쳐서 쓰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 진 일일까요?
4. 손과 함께 못 박히다.
때로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 우리가 눈치 챌 수 없는 아주 비밀스러운 재미있는 장치를 해 놓으신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중 하나가 우리들을 ‘하나님이 거하실 집’으로 묘사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말씀 사이에는 하나님의 즐거운 농담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직업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예,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고, 또 목수셨습니다. 목수는 뭐하는 사람일까요? 그렇지요. 집을 짓는 사람, 집을 고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참 재미있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윙크가 이 대목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이전에는 직접 집을 만들고 수리하셨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성도들의 인생을 새롭게 지으시고 수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을까요?
여러분! 목수는 집을 짓고 고칠 때 신체 기관 중 무엇을 사용할까요? 예, 손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손을 사용하셔서 여러분과 저라는 집을 고치셨을까요? 성경을 먼저 보시지요. 골로새서 2장 13-14절입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 2:13-14)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대해 말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1)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사하시고 살리셨습니다. 3)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기록한 목록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2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악의 목록을 예수님의 거룩하신 손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 손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그 손을 십자가에 사람의 모든 죄와 함께 못박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고쳐 사용하시기 위해 주신의 몸을 대가로 지불하시되 자신의 창조와 구속의 거룩하신 손을 우리의 엄청나고 셀 수도 없는 죄의 목록과 함께 십자가의 형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었고, 십자가와 함께 승리한 것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2) 이 말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나 한 사람이 그러하고, 우리 가정이 그러하고, 우리 교회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실만한 아름다운 집으로 만드시기 위해 직접 망치를 들고 우리를 수리하십니다. 고치시고 치료하십니다. 변화시키시고 온전케 하십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예수님 자신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목록을 예수님의 손과 발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십자가와 더불어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거룩하신 손과 함께 못 박힌 우리들의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 죄와 악의 목록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피 묻은 손과 함께 못 박힌 것을 다시 내 삶으로 가져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고난과 부활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고치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 자신을 사용하신 주님, 그 주님께 감사하며 날마다 더욱 아름답고 거룩한 집으로 단장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성도, 가정,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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