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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1. OMTL 1 - 길 위에 서서(눅 24:14-17) na kim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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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31.

* 본 문 : 누가복음 24장 14-17절 말씀

* 제 목 : OMTL1 - 길 위에 서서


몇 달 전 뉴욕 뉴저지 아버지 학교 강의를 위해서 북부 뉴저지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와 모든 순서를 마치니까 거의 11시가 되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11시, 참 부담이 되는 시간이 아닐 수 없지요. 내일이 주일인데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눌렀습니다. 약 80마일 정도가 되더군요.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달렸습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직전에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남은 것이 약 65마일, 95번 고속도로 입구가 보였습니다. 빨리 가자... 빨리 가자.....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한참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네비게이션에 마일리지가 75마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잠이 오다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좀 있다가 보니 고속도로의 EXIT의 숫자도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게 어찌된 일이지....하고 네비게이션을 자세히 살펴보니 제가 95번 SOUTH를 타야 할 것을 NORTH 방향을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이 자꾸 EXIT으로 나가서 U TURN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방향을 잘못 선택했더니 달린 만큼 오히려 손해를 보는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은 그런 운전을 해 보셨습니까? 달린 만큼 손해인 운전, 달린 만큼 더 달려 돌아와야 하는 운전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바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습니까? 아니 여러분은 방향 감각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열심히, 정신없이, 바쁘게, 성실하게, 매일 반복되는 삶을 참으로 뜨거운 땀 흘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여러분이 살아야 하는 바른 방향으로가고 계십니까?


1. 엠마오로 가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두 사람은 지금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예, 엠마오였습니다. 엠마오가 잘못된 곳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엠마오는 온천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으로 지금은 어느 곳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이 기록한대로 예루살렘에서 약 11km정도 떨어진 온천이 나는 지역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그들이 엠마오로 갔다는 것, 그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왜 그곳으로 가고 있었던가 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한 제자들의 반응은 각각 다릅니다. 그들은 때로는 놀라며, 때로는 부끄러워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들 중에서 이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이 두 사람은 십자가 이후에 예수님이 무덤에서 사라진 사건까지를 예루살렘에서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제자들인 자신들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로마 관원들이나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숨기고 부활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면 제자였던 이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신을 숨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 그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엠마오로 갑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이미 경험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갈릴리로 낙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갈릴리냐, 엠마오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낙향했던 이유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예수님의 두 제자는 왜 엠마오로 갔을까요? 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도 갈릴리로 갔을까요?


2. “나는 열심히 했어요!”


삶의 방향이나 비전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 대부분 자신의 직업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때로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엠마오냐? 예루살렘이냐? 로마냐? 혹은 안디옥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직업의 종류는 성도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왜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보다 왜 그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을 통해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여기에 우리가 잘 속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95번 south를 타지 않고 north로 가던 순간에도 저는 단 한 번도 달리는 것을 쉰 적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런 제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고 합시다. “아니 왜 그렇게 운전을 하십니까? 지금 제대로 운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때 저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지도 모릅니다. “왜 그러십니까? 저는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는 제게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왜 비난을 하십니까?” 제 대답은 지혜롭고 바른 대답일까요? 어리석은 대답일까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각자 가진 직업이나 가정의 환경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직업이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문제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직업은 중립적입니다. 엠마오도, 예루살렘도, 안디옥이나 로마도 지역 자체로는 중립적입니다. 미국이냐? 한국이냐? 하는 것도 중립적입니다. 교회와 성도로서의 우리는 그 중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어떤 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직업과 그 지역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다보니 어느새 이민 생활 5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 3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한 눈 판 적이 없습니다. 부도덕한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날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순간도 인생의, 시간의 운전대를 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보람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입니까? 이렇게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도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너는 왜 이렇게 살았는가?”를 물으실 때 “저는 열심히 했어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면, 그 대답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3. 시계보다 나침반


요즘 제가 만나는 제 또래의 목회자들이 늘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40대 중반, 이제 더 이상 젊은 목회자는 아니라는 말에 다들 공감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앞으로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미국에 온지 이제 13년째인데요, 길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그 정도의 시간을 두 번 더 보내고 나면 저는 목회자로서 은퇴를 해야 합니다. 목회자로 더 섬기고 싶고 더 일하고 싶어도 법으로 정한 기한이 있어서 더 섬기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슬슬 조급해집니다. 뭔가 제대로 목회를 해야할텐데...라는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 중에 어떤 분들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목회지를 찾기도 합니다. 허겁지겁 다른 길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우리의 남은 인생과 일들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인생의 시계를 들여다보시는 분은 없습니까? 여러분!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남은 날을 세어보는 것, 그래서 다시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 마음을 다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아무리 시계를 보고 조급하게 달려도 사는 만큼, 달리는 만큼 손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시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나침반’, 즉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제자들은 우리에게 시게가 아닌 나침반이 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지금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왜 엠마오로 가는지를 묻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눅 24:17) 비로소 그들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점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모든 기억과 실망과 낙심과 불신앙을 털어놓습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눅 24:18-24)


4. 성도의 길, 믿음의 길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 ‘지식’이 없어서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있었던 모든 일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다른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들이 낙향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소원과 삶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을 이 땅위에 새롭게 세우고 왕으로 군림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음이 그들의 소원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 것, 그것이 그들이 잘못된 방향의 인생길을 걷고 있었던 이유입니다. 설교의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주신 가장 큰 복음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십자가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그들의 인생길을 바꾸는지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예수님의 책망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이 그들의 삶의 잘못된 방향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다시 설명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소원을 따라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에 있고, 부활에 있었습니다.


아직 그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떡을 나누십니다. 그들이 비로소 예수님을 깨닫습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눅 24:30-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신 일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 때까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떡을 나눌 때 비로소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자 예수님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성찬, 즉 떡과 잔을 나누는 일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는 믿음과 결단이 성찬을 통해 경험되고 고백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짧은 순간 이것을 경험합니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두려움과 염려가 지배했던 땅으로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그들 밖에 있을 때 그 땅은 두려움의 땅, 낙심의 땅이었지만 이제 주님이 그들 안에 내주하심으로, 그들이 믿음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소원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인도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갈수록 손해보는 길을 돌이켜 이제 주님의 마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번 주일부터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이 캠페인을 ‘시계’를 들여다보는 한 달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정확한 오해입니다. 이 기간은 ‘우리의 인생의 나침반을 확인하는 기간’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열심히 사는 만큼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간 만큼 다시 돌이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복해야 합니다. 믿음 없는 성도와 교회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의 삶과 가정에 역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떡을 나누었던 것처럼 우리 주님과 동행하며 함께 하는 놀라운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소원이나 결정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과 뜻이 인도하는 삶을 사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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