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4.
* 본 문 :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
* 제 목 : OMTL - 3. 끝까지 사랑하시다.
'If Only'(사진 1)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성공을 위해 달리는 젊은 비즈니스맨 ‘이안’과 영국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온 바이올리니스트 ‘사만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그들의 삶의 마지막 이틀을 보여줍니다. 첫째 날, 사만다는 3년간 공부를 마치고 졸업 연주회가 있습니다. 이안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투자 설명회가 있습니다. 늘 일에 집중하는 이안은 자신의 일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모든 것을 잘 잊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표현대로 ‘탄탄대로의 성공’을 위해서 허겁지겁 살다보니 사만다의 고향도 기억하지 못하고, 사만다의 졸업 연주회도 잊고 있었고, 이전에 사만다가 입어서 그렇게 예쁘다고 칭찬했던 스웨터의 색깔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투자 설명회가 뜻대로 잘 되지 않았던 이안은 마음이 상한 채로 사만다의 졸업 연주회에 갑니다. 가는 중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로부터 뜻밖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기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그녀를 더 사랑해 줄 것이라 말하지 말고, 지금 당신에게 그녀가 있다는 것을 감사하면서 그녀를 계산 없이 사랑하십시오.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졸업 연주회를 마친 후 둘은 다투게 되고 택시를 탄 사만다는 이안의 눈 앞에서 사고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두 번째 날, 이안이 잠에서 깨었을 때 사만다는 여전히 그의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입니다. 놀란 그가 상황을 살펴보니 비극적이었던 어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둥절했던 그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삽니다. 어제와는 달리 성공적인 투자 설명회를 마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탔을 때 이안은 어제 만났던 기사를 다시 만납니다. (CD1 49:18~CD2 00:09)이안은 기사에게 질문을 쏟아냅니다. “만일 그녀가 사고가 나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면...” “만일 그녀가 런던을 빨리 떠나버린다면...” “만일 그녀가 아파트에서 나오지 않고 버틴다면....” 그리고 기사를 향해 절규합니다. “Tell me what can I do! There must be something I can do!"(제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분명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있을 거예요.”) 기사는 어제와 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녀를 가진 것을 감사하세요. 그리고 그저 사랑하세요.”
비로소 이안은 깨닫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그는 택시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으로 어떻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그녀를 조건 없이, 계산하지 않고 그녀의 존재를 감사하며 그저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그녀를 향해 달립니다.
영화가 어떻게 끝나는지는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DVD를 빌릴 수 있는 분들은 그렇게 보시고, 영어로 영화보기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서 자막이 있는 CD를 준비해놨습니다. 이번 내 생애 마지막 30일에 이 영화는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보시되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의 범위를 꼭 남녀간의 사랑에 한정 짓지는 마시고, 우리가 성도로서 해야 할 보편적 사랑의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보시면 보다 큰 은혜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1.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vs. 사랑한다.
성도 여러분!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 사랑을 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른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사랑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분명 시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이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시간 속에 두셨고, 우리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져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늘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이란 과거의 어떤 행위나 미래를 향한 결심이 아닌 오늘 지금의 선택과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지나온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은 미래에 다가올 일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살아있는 이 시간, 이 순간 어떤 삶을 살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수 있는 삶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이렇게 바뀌면 정확합니다. “내가 여기 있는 제자들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고백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이 말씀은 또 이렇게 바뀌면 정확합니다. “베드로야,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세 번씩이나 깨닫게 될 것이다.”
2.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늘 장벽을 만납니다. 시련이나 유혹이나 심지어 자신의 감정의 상태에 따라 부정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사랑은 생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흔히 가지는 세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어야 사랑한다는 생각입니다. 소위 조건이 따릅니다. 당신이 사랑 받을 만하고, 이렇게 변화되고, 이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내가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용서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실은 말이 안됩니다. 용서하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지요. 미래에 잘못이 없어야 과거의 잘못을 용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고, 변화되어야 사랑한다는 말은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둘째 사랑을 받는 만큼 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받은 만큼 주는 것은 거래이지 사랑은 아닙니다. 받지 않아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인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이 없어도 헌신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에게 보답하지 않아도 희생하기 때문에 사랑입니다. 받을 것을 계산하고 준 것을 세는 순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셋째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은 못해!;라고 한정을 짓는 사랑은 참으로 연약한 사랑입니다. 아니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한계를 넘지 못하는 사랑, 그런 사랑은 세상에 너무 흔합니다. 너무도 세속적인 사랑입니다. 만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가진 사랑의 한계를 넘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그 한계를 넘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에서 우리의 용서와 구원의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끝까지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우리들을 향한 사랑은 늘 현재적이라는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2000년 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사랑하는가?” 과거가 아닌 미래도 아닌 바로 이 순간 사랑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과거 한 때 했던 사랑으로 지금의 나태함을 설명하지 않고, 나중에 여건이 허락하면 할 사랑으로 지금의 연약함을 변명하지 않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이웃을... 그리고 가정과 교회를 사랑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는 그 사랑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한계를 넘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시간적으로도 중단되지 않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의 모든 사랑은 중단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우리들에 대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끝까지’라는 말에는 승리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그 어떤 장벽도 예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유혹이나 시험이나 시련이나 고통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것, 우리를 한번 사랑하기로 결정하시면 그 어떤 장벽을 만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만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지 않는 사랑이면 어떻게 될까요? 만일 사랑이 유혹과 시험에 흔들리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예, 배신입니다. 장벽에 가로막혀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별이지요.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사귀어 보고 살아보니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어떻게 될까요?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여러분과 저를, 교회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 사랑, 좌절하지 않는 사랑, 흔들리지 않는 굳건하고 영원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살립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사랑하게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살아야 할 참된 의미를 줍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되고 이웃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됩니다.
4. If Only.... - 사랑을 위해 달리다.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영화 제목이 기억나십니까? ‘If only....’입니다. 이 영화는 아주 자극적인 질문 하나를 우리들에게 던집니다. 만일 우리에게 단 하루가 남았다면, 아니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사실 이 질문을 조금만 더 생각해보십시오. 실은 우리는 이미 정해진 시간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많이, 길게 남았나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의 끝이 오지 않을 것처럼 용감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우리는 이미 정해진 시간을 마치 정해지지 않은 듯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며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눈 앞에 그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안다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서 사랑을 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최선을 다하는 사랑, 가증 뜨겁고 진실된 사랑을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 신문을 통해서 감동적인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 관련된 영상이 있어서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왜 사랑은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인지, 왜 사랑은 ‘현재 진행형’인지, 그리고 왜 사랑은 중단하면 안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함께 보실까요? (당신이 국가대표입니다. 2011/8/8일자, 11:10~22:50)
이 영상에서 우리는 몇 가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사랑은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헌신을 해야 사랑입니다.
사랑은 왜 현재 진행형일까요? 과거에 했다고 해서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할 것이라고 지금하지 않으면 온유라는 한 아름다운 자매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의 의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랑의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죽어가고 우리 중에 어떤 부분은 썩어가고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쓰러져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사랑은 왜 중단하면 안되는 것일까요? 예, 사랑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의무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공급되지 않아서 죽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삶이 곧 죽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으로 섬기지 못한 그들이 죽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우리들이 이미 죽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 공동체로 모이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은 혼자서 우리에 대한 사랑의 모든 짐을 지셨지만, 우리는 그 사랑의 의무를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온유라는 한 자매를 살리기 위해 16500명의 자원봉사자가 필요했다면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협력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에서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사랑하고 함께 섬기면서 하나님의 온전하실 사랑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예수님의 사람들, 곧 우리들 모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서로 그 사랑으로 만나고 섬기는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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