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 홈 >
  • 예배와 말씀 >
  • 주일 예배
주일 예배
13.10.20 중심잡기-4.압살롬의 일생 na kim 2013-10-21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01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82/545047




2013. 10. 20.

본 문 : 사무엘하 189절 말씀

제 목 : 중심 잡기 4. 압살롬의 일생 (1)

요즘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내놓은 재미있는 결과가 있습니다. 맹수의 왕인 호랑이의 사망 원인에 관한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랑이의 대부분의 사망원인은 위암이라고 합니다. 왜 호랑이가 위암에 걸릴까요? 그것은 호랑이가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 때문입니다. 호랑이는 이 송곳니로 사냥감을 죽이고 제대로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버립니다. 소화 기관에 무리가 생기고, 그것이 호랑이의 평생 동안 반복되면서 드디어 호랑이는 위암에 걸려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송곳니는 호랑이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입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송곳니 때문에 죽습니다. 하나님이 호랑이를 만드시고 그에게 허락하신 가장 큰 장점인 송곳니, 호랑이가 그 장점의 기능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면을 보지 못한다면 호랑이는 계속 같은 질병으로 죽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8장은 성경이 기록하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에 하나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압살롬이 비참한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윗은 아들의 죽음에 뼈를 끊는 고통으로 통곡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길지 않았던, 하지만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생각합시다.

압살롬의 송곳니

미국 속담에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압살롬이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다윗 왕가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고, 자신의 야망을 실행할 수 있는 지략과 결단력을 겸비했습니다. 내가 노력하거나 원하지 않아도 특별한 능력과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 모든 것은 압살롬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의 송곳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압살롬은 자신에게 허락된 이러한 은혜들을 가지고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아마도 그는 어려서부터 권력에 대한 야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다윗왕에게는 많은 왕비들에게서 난 많은 왕자들이 있었고 압살롬은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위를 잇기에는 다소 불리한 조건일 수 있습니다. 여러 왕비와 여러 왕자를 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싹트고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한 특별한 사건에 연루됩니다. 배다른 형이었던 암논이 자신의 친동생인 다말을 강제로 욕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관련한 도덕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암논이 저지른 일을 알고는 있었지만 바르게 책망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압살롬은 이 모든 일에 대해 크게 분노합니다. 누이 다말에게는 일단의 자기 집으로 들어와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는 2년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사람들은 암논이 저지른 일을 잊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암논 또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바로 그 때 일을 시작합니다. 양털을 깎는 날은 친족들이 모여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압살롬은 심지어 아버지 다윗까지 초청합니다. 암논은 의심하지 않고 잔치에 참석합니다. 압살롬은 암논을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그는 그술왕 달매에게 망명을 합니다. 3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이 압살롬을 만나주지 않습니다. 다시 2년이 흘렀습니다. 삼하 14:33에는 다윗과 압살롬의 아주 어색한 표면적인 화해가 소개됩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성문에 서서 오고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합니다. 민원을 해결해주고 왕에 대한 불만 여론을 조성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다윗과 화해하지 않고 이 일을 했다면 크게 주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아버지와 화해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은 모른 채 그저 참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4년이 지납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 아닙니까?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2년을 기다렸고, 아버지 다윗의 진노가 풀리기를 3년을 기다렸으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를 만나지 않고 2년을 기다렸고,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다음, 표면적인 화해의 자리를 만들고 또 4년간 기다립니다. 그는 그동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철저하게 계획을 실현해갑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자가 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드디어 때를 얻습니다. 헤브론에서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빼어난 용모와 뛰어난 지략을 허락하셨습니다. 왕자의 신분을 허락하셨습니다. 은혜입니까? 징계입니까? 큰 은혜입니다. 마치 다른 어느 동물도 갖지 못한 날카로운 송곳니로 사냥하는 호랑이처럼 그는 큰 장점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행복할까요? 그는 그 장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2. , 자신을 겨냥하다.

성경은 특이하게 그의 머리털에 주목합니다. 삼하 14장에서 그의 빼어난 용모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년말마다 깎았으며 그 머리털을 깎을 때에 달아 본즉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삼하 14:25-26) 이백세겔이면 약 2.3kg에 해당하는 무게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숱이 많은 머리를 힘과 능력의 상징으로, 대머리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성경이 압살롬의 용모를 표현하면서 특히 머리털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그는 정말 흠 잡을 데 없이 빼어난 외모를 지녔고, 특히 풍성한 머리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머리털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이야 모발에 대한 많은 약품들이 있겠지만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는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합니다. 압살롬의 지략이나 결단력, 리더십 등은 한편 타고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학습되고 훈련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털은 그렇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성경은 그가 정말 큰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이 주신 자랑거리가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합니다. 자신의 급한 성품과 분노와 함께 사용합니다. 형의 잘못을 자신의 힘으로 정죄했고,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아버지의 여인들을 취했고 왕권과 나라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하신 모든 은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 있을 때 가장 가치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사용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자신의 영광을 취하고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모든 은혜는 칼이 되어 그 자신을 겨냥하게 됩니다.

3. 우리들의 무기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에게만 허락하신 은혜와 능력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저마다 각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능력들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 싸우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때로 어떤 능력은 크고 넘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고 마치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 어떤 능력은 있는 듯, 없는 듯... 비교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능력들이 더 커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허락하신 은혜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가 칼을 빼어 예수님을 잡으러왔던 제사장의 종의 귀를 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 속담을 인용하시면서 베드로를 말립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이후에 이 말은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라는 말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고대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에는 양유기(養由基)라는 활을 잘 쏘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백발백중이라는 말이 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용맹해서 적진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승리를 얻곤 했습니다. 초나라의 왕이었던 초공왕은 그에게 "활로 흥한 자, 활로 망하게 된다"는 충고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지 말고 늘 조심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양유기는 듣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의 용맹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는 승승장구합니다. 초나라는 진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고, 양유기는 다른 전쟁에서와 같이 적군 깊숙이 활을 쏘면서 돌진합니다. 진나라의 사수들이 매복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고슴도치처럼 활을 수없이 맞고 전사합니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독립 운동가였던 이상재 선생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조선 말기 신사유람단에 포함되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일본은 조선의 유람단에게 메이지 유신의 성과를 자랑하고 자국의 부강함을 과시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의 발달된 문물이 참으로 놀랍소. 헌데 성경에 보니 예수가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리라라고 했으니 성인인 예수가 틀리지 않았다면 일본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이오." 결국 일본은 이상재 선생의 예언대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다가 망하고 맙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과 고대 중국의 격언, 그리고 이상재 선생님의 교훈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4. 재능이 은사가 되다.

 

성경은 압살롬의 비참한 최후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삼상 18:9)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성경이 왜 그의 빼어난 외모와 풍성한 머리에 대해 강조했던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랑했던 아름답고 무성했던 머리털은 그를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의 장점, 그의 자랑, 그에게 허락된 능력과 은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 자신의 기질과 욕심을 따라 사용될 때 그 모든 것은 그를 찌르는 칼이 되고 창이 되고 무덤이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은혜와 재능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 인도하심과 섭리 가운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칼은 비로소 사람을 살리는 칼이 되고, 활은 비로소 자신을 지키는 활이 되며, 재능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교회와 성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돕는 은사가 됩니다.

다시 압살롬의 일생을 돌아보시겠습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청년입니까? 남자다운 성품이 있고, 지략이 있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고, 참 용감합니다. 더욱이 그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다윗 왕가의 왕자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참으로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풍성하게, 넘치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은혜와 능력이 그의 기질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의 야망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자기를 넘어서서 은혜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송곳니를 사용해서 사냥하지만 위암으로 죽고, 압살롬은 수많은 자랑거리를 가진 사람이지만 자랑에 매달려 죽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떤 남다른 자랑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것이 인생이라 했습니다. 뛰어난 재능보다 그 재능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목적이 없는 자랑과 재능은 결국 자신과 이웃을 해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함께 하는 자랑과 재능이 모두를 섬기고 살리는 은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돌무덤에 누워 있는, 한때는 왕자였고 왕이었던 한 청년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눈물이 되고 통곡이 되었던 야심만만 압살롬, 그에게 허락된 수많은 자랑거리들을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에 허락된 모든 자랑을 왜 배설물과 같이 여겼는지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자랑에 무너집니다. 우리의 재능에 쓰러집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과 자랑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비로소 교회와 이웃을 살리는 은사가 됩니다. 나를 위한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은사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13.10.27 중심잡기-5. 압살롬의 일생(2) na kim 2013.10.29 0 177
다음글 13.10.13 중심 잡기 3. ‘Dignity’ - “너 하나님의 사람아!” na kim 2013.10.13 0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