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03 중심잡기-6.전성기가 있습니까? | na kim | 2013-1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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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디모데후서 4장 6-8절 말씀 제 목 : 중심 잡기 ? 6. 전성기가 있습니까? 지난 주에 있었던 교단 총회는 정말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5일 동안 제가 참 좋아하는 친구 목사와 한 방을 쓰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시애틀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장홍석 목사입니다. 이 교회를 시작할 때 함께 했었고, 지금은 시애틀에서 좋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자주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마치 아줌마들처럼(?) 수다를 떨게 됩니다. 몇 년 전 장목사의 가정에 큰 어려움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아직 40대 초반의 이었던 장목사의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것입니다.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회복된다고 해도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퇴원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크게 호전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장목사는 집안 살림과 세 아들을 돌보는 일,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아내를 간호하는 일까지 함께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일부가 목사가 가정에만 너무 집중하고 성도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장목사는 교회를 사임했습니다. 친구인 제가 봐도 참 절망스러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 다시 필라로 와서 같이 교회를 섬기자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5-6년 지났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하심이 그 가정과 함께 있었습니다. 사모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아직도 완전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사를 보필하는 일, 자녀들들 돌보는 일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왼쪽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었기 때문에 언어 영역에 가끔 문제가 발견되는 것 같지만 매주 한인 마켓 앞에 나가서 노방 전도하고, 성도들과 수다도 잘 떱니다. 자녀들도 어려움 중에 부모를 이해하는 좋은 아들들로 잘 성장했습니다. 목회도 개척과 합병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아주 안정된 환경에서 교회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보다 훨씬 큰 목사가 되었습니다. 고난이, 시련이, 아픔과 눈물이, 그리고 그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사모하고 바라봤던 세월이 한 사람의 목회자를 어떻게 성장하게 하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휴스턴의 훤하게 뚫려 있는 도로를 들리면서 장목사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목사, 나는 말이야... 요즘이 최고인 것 같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 같아.... 내 인생에 내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이미 더 많은 것이 허락된 것 같고, 내 능력으로 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잘된 것 같아... 나는 가끔 교회를 생각하고 성도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어떻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지 참 모르겠어. 나는 지금 최고의 삶을 살고 있어...” 1. ‘관제(灌祭)’와 같이 부음이 되다. 저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구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고의 인생...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최고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살았던 적이 있습니까?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전성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소위 제일 잘나가는 시절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만난 사도 바울에게도 전성기가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요약하기를 ‘관제(灌祭)’와 같이 부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관제란 구약에서는 전제(奠祭)로 소개되는 제사의 한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시면 이 제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부음이 되고’라는 표현을 씁니다. 빌 2:17에서는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이 제사가 이렇게 등장합니다.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민 15:5)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레 23:13) 전제 혹은 관제를 어떻게 드리는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다른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서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빌 2:17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자신을 관제로 부어 드린다는 표현을 했고, 본문 딤후 4:6에서는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전제 혹은 관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위에 향기로운 포도주를 붓는 의식입니다. 제물 위에 흘러서 제물을 영광스럽게 하고, 제물이 가진 좋지 않은 냄새를 제거하고 포도주의 향기가 덮이도록 드리는 제사입니다. 제물로 드려지기는 했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냄새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었는데, 포도주를 부어서 더러운 것을 소독하고, 빛깔을 아름답게 내고, 더러운 냄새를 향기로 바꾸는 제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제사가 가지는 헌신의 의미입니다. 관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있을 때, 그 제물 위에 부어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되 그 제물이 아름답게 드려지도록 헌신하고 수고하는 제사입니다. 포도주는 향기만 남고 사라집니다. 해야 할 역할만 하고 없어집니다. 수고하고 헌신하였지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제사의 한 종류입니다. 다른 제물들을 가치 있고 향기 나는 제물로 바꾸는 제사, 제사를 돕는 제사인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의 전성기 사도 바울은 빌 2:17에서와 본문을 통해서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자신의 인생을 ‘관제’라는 그림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헌신했습니다. 다 부었습니다. 싸워야 할 선한 싸움과 가야할 모든 길을 믿음 가운데 마쳤습니다. 이제 이후로는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만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자, 바울은 과연 언제가 전성기일까요? 한참 관제로 부어질 때일까요? 달리고 또 싸울 때일까요? 장래에 주님 앞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아야 비로소 전성기가 오는 것일까요? 관제가 어떤 제사라고 했습니까? 자신은 사라지고 향기만 남는 것이 관제입니다. 바울은 초대교회를 위해서 스스로 관제의 역할을 하는 일을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빌립보 교회이며 디모데와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들의 마음과 삶과 변화와 헌신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질 때 바울은 그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 헌신합니다. 그들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그들이 더욱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도록, 그들이 더욱 좋은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사라져가도, 달려갈 길과 싸워야 할 싸움을 마치고 이제 주님 만날 일만 남았어도 교회가 살고, 성도가 살고, 아들 디모데가 향기로운 삶을 사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묻습니다. 바울은 삶은 언제가 전성기일까요? 언제 그의 삶이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을까요? 그것은 교회를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부어드릴 때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더 좋은 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교회와 이웃과 성도를 위해서 자신을 부어드리는 삶, 그곳에서 바울은 영광과 기쁨을 찾았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는 감옥에 있을 때였습니다.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는 이미 늙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언제가 바울의 전성기일까요? 성도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단 한번도 전성기가 아닌 삶을 산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전성기의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구요? 그는 늘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 입어서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순종이 만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자신의 순전한 헌신이 만나는 삶이었습니다. 3.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여러분, 혹시 ‘Sweet Spot’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야구 배트나 테니스 라켓 등으로 공을 칠 때 특별한 힘을 가하지 않아도 가장 멀리, 가장 빠르게 날아가는 지점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을 맞히는 최적 지점을 말하는 겁니다. 이 용어는 요즘 다양하게 사용되는데요, 마케팅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에 대한 친밀감이 최고점에 달하는 소비자 심리 타점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건축학에서는 콘서트 홀과 같은 곳에서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지점을 이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을 우리의 신앙에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멀리, 가장 빠르게, 가장 효과적으로 살 수가 있을까요? 우리 인생의 Sweet Spot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가장 신나는 전성기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만들어야 할 Sweet Spot의 예를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교회와 성도 위에 부어진 관제라고 했습니다. 무엇과 무엇이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사도 바울의 헌신이 만났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에 바울이 관제로 부어집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람들과 바울의 헌신이 만난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Sweet Spot을 발견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바울의 헌신이 만나는 그 자리 - 바울의 Sweet Spot이었고, 그의 전성기였고, 영광의 면류관이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여러분께 소개한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라는 시가 있습니다. 연탄재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사도 바울은 회심한 이후에 단 한번도 전성기의 삶을 살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날마다 뜨거워지고 자신이 재로 변하는 삶을 선택하여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의 헌신이 만나는 삶,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과 나의 순종이 만나는 삶, 하나님의 사람들 위에 내가 남김없이 드려지는 삶 ? 바울의 삶이었고, 전성기의 삶이었고, 영광과 찬송의 삶이었습니다. 4. 날마다 최고입니다. 사실 설교의 서두에 말씀드린 장목사와 저는 생각이 많이 통합니다. 저 역시 요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혼자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아... 나는 참 행복한 목회자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주일 예배 전에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성가대 찬양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차장에 차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 자녀들이 뛰어다니며 노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마나 가슴이 벅찬지 모릅니다. 함께 예배하겠다고, 함께 교회가 되겠다고 각 처에서 달려오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은 감격스럽고 또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도 장목사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래... 참 고마워.... 성도들이 고맙고 하나님이 고맙고... 세상이 고마워.... 내가 알고 있는 나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받아주고 섬길 수 있도록 해줘서 참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의 전성기는 바로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배하는 이 시간, 성도 여러분과 교회와 같은 시대를 사는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오늘의 삶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전성기는 그의 성취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의 섬김과 헌신에서 왔습니다. 그의 삶을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의 기쁨을 위해 부어드릴 때 전성기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바울의 순종이 만났던 Sweet Spot 이었습니다. 연탄의 전성기 또한 일시적이지만 자신을 뜨겁게 태울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위해 지음을 받았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저의 전성기도 저의 성취나 성공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뜻과 나의 순종과 헌신이 만나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 시대와 이웃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 더욱 좋은 예배를 드리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 위해 나를 부어드리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저는 전성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내가 사용되고 있을 때 나는 전성기입니다. 저는 2014년을 준비하면서 여러분께 작은 도전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2014년에는 우리 모두가 다 적어도 한 가지 이상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이웃과 다른 성도들의 기쁨을 위한 사역에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날마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인생에 나만을 위해 살지 않고 성도와 교회를 위해, 이웃과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시는 이웃을 제물로 생각하고, 나의 시간과 노력과 헌신을 관제로 생각해서 하나님의 뜻에 나를 순종시키고 헌신하는 영적인 경험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다 함께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밀면서 구호를 한번 외쳐 봅시다. “2014년은 나의 전성기! 바울처럼, 연탄재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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