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10 중심잡기-7. 두려움, 내면의 적 | na kim | 2013-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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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10. 본 문 : 출애굽기 4장 10-17절 말씀 제 목 : 중심 잡기 ? 7.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저희 반에는 ‘지성호’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키가 꽤 컸었는데도 지성호는 저보다 한 뼘이나 더 컸고, 나이도 한 살 많았습니다. 얼굴도 시커먼 것이 아무도 감히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선생님들이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항상 그 친구의 이미지를 떠올렸었습니다. 당시에 1학년들이 쓰던 교실은 30-40년 된 목조에 마루로 된 건물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남자 아이들이 복도에 다 쏟아져 나와서 전쟁놀이를 했습니다. 빗자루나 마대 걸레 자루를 들고 와~~~~ 하고 몰려갔다가 또 와~~ 하고 도망쳐 오는 놀이였습니다. 특별히 진짜 싸움이나 사고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각 반별로 기싸움을 하는 나름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복도 끝에 있던 우리 반이 밀릴 때면 ‘지성호’가 나타납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중간에 떡 버티고 서면.... 아무도 덤비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반은 기세가 높아져서 와~~~하고 쳐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지성호는 2학년 때 가까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5학년 때 지성호가 우리 반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다시 전학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성호는 분명 지성호인데, 뭐가 좀 이상했습니다. 애가 자라지를 않은 것입니다. 저는 꾸준히게 자라서 여전히 반에서 1,2 등을 다투는 덩치였는데, 지성호는 중간 정도의 키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성호는 지성호 아니겠습니까? 1학년 때 가졌던 ‘존경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지내던 어느 날, 친구들과 다 같이 축구를 하다가 다툼이 생겼습니다. 주먹 싸움을 할 수도 있는 험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지성호가 있었습니다. 상황이 지성호에게 좀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던 순간, 지성호가 갑자기 잉잉잉~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너무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천하의 지성호가.... 울어....? 오호... 이것봐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지성호를 이겨먹었습니다. 제가 당당하게 나가자 지성호는 당연히 제 앞에 꼬리를 내렸습니다. 우리 둘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는데, 1학년 때는 지성호가 저를 무조건 이겼고, 5학년 때는 제가 지성호를 무조건 이겼습니다. 남자 아이들끼리 힘의 서열이 중요하던 시기에 지성호와 저의 서열을 결정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알기는 아는데 잘 안된다.”는 말로 자주 우리의 연약한 삶을 변명합니다. 좀 더 심각하게는 “예수님도 내 입장이 되면 어쩔 수 없을거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믿음이 있고, 말씀을 알고,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는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말로 자신의 변호하는 수많은 연약한 믿음의 선조들을 소개합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항복 선언을 해버린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중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 출애굽의 영웅 모세입니다. 모세를 부르시다. 모세는 한 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로 스스로 결심했던 사람입니다. 열정도 있고 용기도 있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러한 열정을 가장 먼저 거절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눈을 피해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는 애굽의 왕자로 40년을 살았고, 광야에서 목자로 40년을 살았습니다. 민족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애굽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과정과 모세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출 3:4) 그는 아직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정확하게 소개합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모세에게 밝히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의 부르짖음을 듣고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실까요?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하나님이 분명한 사명을 그에게 주십니다.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11절에서 그는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12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다”라는 답을 주십니다. 13절에서 모세는 두 번째 묻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5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다소 장황하게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해주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모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4:1에서 모세는 세 번째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 4:1)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 이적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네 번째로 말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 결국 모세는 자신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사람들에 대해 말했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는 말을 잘하는 능력이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13절에서 그는 하나님께 절규합니다.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2. 모세의 적 여러분, 모세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아무리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명을 주셔도 나는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지 못할 이유들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자신은 압니다. 이전에 얼마나 자신이 처절하게 거절당했는지 말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무엇인가 일해보고자 했을 때, 아직 능력도 있고 지혜도 있고 패기도 있을 때 그들은 자신을 거절했습니다. 아니 사실 그들이 거절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이 모세 자신을 거절하여 광야로 보낸 것일 수 있습니다. 다시 거절당할까 두렵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도 안되는 일인데, 이렇게 40년을 광야에서 목자로 살았는데 될까요? 뿐만 아니라 애굽의 바로에게 쫓김을 당해서 광야에서 살고 있습니다. 왕자로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들의 적이 되고 나니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는 광야 40년간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 의욕도, 능력도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환경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다시 서기 위해서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모세의 음성을 들어보시겠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의 해방에 있는 것 잘 알겠습니다. 출애굽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내가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되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거절당하고 쫓김을 당하고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저를 거절하고 조롱하면 어떻게 합니까? 애굽의 바로가 저의 요구를 듣고 코웃음을 치면서 저를 죽이면 어떻게 합니까? 저는 능력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노인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저를 보고 비웃으면 어떻게 합니까? 무엇보다도 저 같은 사람에게 이 큰 일을 맡기셔서 실패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과연 그가 가장 먼저 이기고 극복해야 할 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탄의 시험입니까? 세상의 유혹입니까? 애굽의 칼과 창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함입니까? 시내 광야의 뜨거운 태양입니까? 아니면 지금 모세가 먹이고 있는 양들을 이겨먹을까요? 도대체 모세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3. 사실보다 태도! 적극적인 사고 방식의 능력(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저술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생각의 힘’이라는 또 다른 책에서 자신이 만났던 카우보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카우보이는 평생을 거친 들판에서 소와 함께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안타깝게도 소들이 죽는 일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독특합니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압사(壓死)한다는 것입니다. 왜 소들은 깔려서 죽게 될까요? 추운 바람이 들판에 휘몰아치면 일반적으로 소들은 찬바람이 불어오는 반대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합니다. 엉덩이를 바람 쪽에 두고 머리는 땅만 바라보고 조금씩 천천히 울타리 한 쪽으로 몰려듭니다. 어느새 모든 소들이 울타리 쪽에 몰려서 꼼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바람은 여전히 차고 머리는 땅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들은 조금씩 바람 반대방향으로 계속 움직입니다. 결국 찬바람을 조금이라고 피하려고 하다가 약한 소들은 눌려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허러퍼드(Hereford)라는 종류의 소가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소들이 찬바람을 피해서 울타리로 몰려갈 때, 그 소는 찬바람에 자신의 등을 내주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오는 방향으로 어깨를 맞대고 추위를 묵묵히 견뎠습니다. 찬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 카우보이가 노먼 빈센트 필 목사에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헤러퍼드 종 가운데서는 죽는 놈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야말로 내 평생에 카우보이 생활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에요. 인생의 폭풍우는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거예요.”
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생각의 힘’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무실에는 현판 하나가 걸려 있다... 거기에는 “태도가 사실보다 훨씬 중요하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 글귀는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사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아무래도 난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거야. 사실은 사실을 뿐이라고. 그게 다야”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그러나 해결하는 방법이 있어. 문제를 다각도로 면밀히 분석하고 정면으로 돌파하는거야. 문제는 해결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나는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부정적인 사람은 문제에 짓눌린다. 반면 긍정적인 사람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문제 자체가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결과를 결정한다. 4. 힘찬 첫 발걸음! 여러분은 지성호와 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성호와 제가 정말 싸움을 해봤다면 누가 이겼을까요? 왜 우리는 싸워보지도 않고 이기고 지는 일을 반복했을까요? 대답은 아주 단순합니다.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싸우기 전에 졌기 때문입니다. 해보지 않고 먼저 패배의 태도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진 것이요, 지성호에게 진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있는 두려움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등학생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골리앗 앞에 패배를 선택한 사울왕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되기 전의 모세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로 변하기 전의 제자들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알기는 아는데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연약한 성도들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대로, 말씀대로, 사명을 주시는 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살 수 없다고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우리들의 수준입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때로 초등학생 수준의 신앙에 우리를 머물러두고 다들 그렇다며, 예수님도 그럴 것이라며 만족하며 자위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삶에 대해 관대하십니다. 용서하시고 용납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움과 염려로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는 오늘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분노하십니다. 우리를 믿음 없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어리석다 책망하십니다. 때로 매를 드셔서 우리를 분발하게 하시고, 때로 어리석음 가운데 버려두셔서 결과를 책임지게 하십니다. 출애굽의 엄청난 역사도 모세가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을 이길 때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과 용기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딛고 일어서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용사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실패와 거절과 포기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허락하시는 용기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무장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 나라의 용사는 먼저 자기 안에 있는 어두움과 염려와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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