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2013 하나님의 기쁨-2.기쁨의 샘, 더 낮은 곳에서 | na kim | 2013-12-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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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5. 본 문 : 마태복음 3장 13-17절 말씀 제 목 : 하나님의 기쁨 – 2. 기쁨의 샘, 더 낮은 곳에서 요즘 한국에 ‘진짜 사나이’라는 병영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습니다. 이미 군복무를 마친 연예인들과 외국인, 그리고 앞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 아이돌 가수가 한 팀이 되어 전국에 퍼져 있는 병영을 방문하고 현역 군인들과 같은 조건의 훈련과 생활을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남자들에게는 힘들었던 군대 생활에 대한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여자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했던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일으켜서 인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진짜 사나이가 서해안의 해군 병영 체험을 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서해안은 중국 어선들과의 분쟁도 많고, 특히 북한과의 교전이 발생하기 때문에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좁은 함정, 그 속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과 규칙들을 지키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함정에서는 가끔 소위 오락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휴가를 걸고 퀴즈대회도 하고, 보물 찾기도 하더군요. 보물의 내용도 다양해서 휴가도 있고, 평소에는 어려워보이는 지휘관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함장님이 타주는 커피’라는 보물이 있었는데, 한 사병이 그 보물을 찾았습니다. 파도가 몰아치는 함장실에 찾아가서 경례를 하고 보물의 내용이 적힌 종이를 펼쳐보이자 함장은 껄껄 웃으면서 “그래... 내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러 왔단 말이지...”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평소에 앉던 자리로 사병을 데려가서 앉혔습니다. 그리고 직접 커피를 두잔 타서 사병과 마주 앉았습나다. 아마도 그 사병은 평생 그 커피를 잊지 않을 겁니다. 하늘처럼 보이던 함장이 자신과 마주 앉아서, 그것도 자신을 위해 직접 커피를 타서 마시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데 여러분,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병과 함장이 함께 커피를 마십니다. 그것도 함장이 탄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눕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더 큰 영광이 될까요? 사병일까요? 우선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함장에게 큰 영광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들마다, 함께 커피를 마신 그 사병까지도 함장의 겸손한 태도에 감동을 받고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청하시다. 여러분! 우리는 조금 전에 성찬에 참여했습니다. 이 사건은 함장의 커피와는 도대체 비교도 안되는 대단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잔치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음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예식에 동참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대단한 영적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은혜만큼이나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실까요? 물론 우리가 성찬의 의미를 살리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가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됩니다. 하지만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아버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의 헌신과 사랑을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또 하나 우리들에게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사람의 죄를 씻는 의식, 세례식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자신에게 베풀어주기를 요청하여 받으신 장면입니다. 함장이 사병에게 커피를 타줘도 화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세례를 받는 예식에, 그것도 세례를 받는 사람으로 참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빌립보서 2:5-8까지의 말씀이 직접 인간의 역사 속에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2. 참된 겸손, “이제 허락하라!” 하지만 그것으로 예수님의 위대한 낮추심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는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한 마디 말씀을 남기십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세례에 대한 요청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감히 내가 어떻게 예수님께 세례를 주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분문 중에서 1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5) 여러분! 여러분은 겸손하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교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까? 여러분은 누가 칭찬을 하면, “예... 저는 정말 그렇게 잘합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아닙니다. 부족합니다.”라고 말합니까? 대부분 우리는 교만하다는 말보다는 겸손하다는 말을 듣고 싶고, 소위 ‘겸양의 미덕’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삽니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격렬하게 분노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허락하라!”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미 오셨습니다. 사람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세례를 받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낮아질 만큼 낮아졌고, 더 이상의 겸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요한에게 세례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허락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에 대한 세례를 허락합니다.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여러분! 허락하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습니다. 당연히 높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허락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요한의 허락을 구합니다. 요한이 허락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단순히 스스로를 낮추는 것처럼 예의를 표하는 ‘겸양의 미덕’이 아닙니다. 완전한 낮아짐입니다. 아름다운 겸손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저는 이번 성탄에 예수님의 이 ‘허락하라’는 말씀에 가장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3. 낮은 곳에 임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장면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함께 등장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워서 가장 낮은 모습,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 하나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또 어디에 이렇게 영광스러운 장면이 있을까요? 삼위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나타나는 이 놀라운 장면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삼위 하나님의 임재가 언제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예, 예수님의 절대 겸손, 완전한 낮아지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지난 주일 같은 본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길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변화’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성도와 교회의 변화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초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까요? 예수님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극한의 사랑과 기쁨을 표현하신 시점을 봅시다.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 계실 때였습니다. 가장 큰 기쁨이 되었고, 가장 높은 영광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으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기쁨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저런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그저 진심으로 완전히 겸손하셨던 것뿐입니다. 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람의 죄를 씻는 세례의식에 참여하고 싶었고, 사람의 변화를 함께 결단하고 싶었고, 세례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허락을 구하여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진심이며 낮아짐에 대해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4. 깊은 샘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길어 올리다. 저는 이번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 중요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너무 쉬운 것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거제도 거제면 읍내에는 시장통이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 댁이 한 모퉁이에 있고, 대문을 나서면 마을 우물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게 위험하다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두레박을 빠뜨려서 물을 깃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온 마을이 함께 사용하는 우물이어서 관리도 깨끗하게 잘 되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정말 우물이 깊었습니다. 물맛도 좋았습니다. 수정 같이 맑은 물이 겨울에도 얼지 않고 깊은 곳에서 찰랑대고 있었습니다. 물은 깊은 곳에서 나는 물일수록 맑은 법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깊어지심입니다. 더 깊은 겸손, 더 깊은 은혜, 더 간절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십니다.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구원의 맑은 샘물을 길으시고, 세상의 죄악 깊은 곳에서 허우적대는 우리를 건지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찰랑찰랑 고이는 깊은 샘으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좀 더 낮은 곳에서 나와 만나자...내가 너희들을 위해 낮아졌던 것처럼 너희도 서로에 대해 낮아지고, 내가 너희들에 대해 은혜의 샘물 더 깊이 파는 것처럼 너희도 인생을 좀 더 깊이 있게 살자. 좀 더 깊은 곳에서 서로 만나서 참된 기쁨을 나누자.” 2014년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초대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예, 낮아지시면 됩니다. 진심으로 낮아지시면 됩니다. 그래서 더 깊은 곳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깊은 곳에서 맑고 시원한 하나님의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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