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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하나님의 기쁨- 1. 변화- ing na kim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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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2.

 

본 문 : 마태복음 313-17절 말씀

제 목 : 하나님의 기쁨 1. 변화-ING

 

오스카 와일드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가 있습니다.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을 썼고 19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단편집으로 행복한 왕자가 있습니다. 여러 단편 중에 한 편인 행복한 왕자는 아마도 제 기억에는 교과서에도 실렸던 것 같습니다. 자기 몸에 붙어 있는 모든 보석을 떼어서 가난한 백성들을 도와주려는 왕자의 동상(銅像)과 그 왕자 동상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추운 겨울이 와도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돕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제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대 민중들의 척박한 삶의 상황과 그들에 대한 연민이 짧은 소설 가운데 잘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시대의식이 있었고, 재미있고 풍자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지옥의 단편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예수님이 한 때 은혜를 베풀어주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는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어떻게 변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았을까요?

소설에서 예수님은 먼저 한 술주정뱅이 청년을 만납니다. 그는 한 때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반갑게, 또한 안타깝게 물으셨습니다. “당신,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그가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찾아와 걷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괜찮은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고, 도무지 먹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술이나 마시며 삽니다.” 차라리 절름발이였을 때는 동정이라도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제 사지 멀쩡하여 아무런 배운 것도, 가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이렇게 신세한탄이나 하며 폐인이 되어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었는데도 말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한 창녀를 만납니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소?”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창녀의 삶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주셨지요. 그런데 내가 손을 씻은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세상은 여전히 나를 외면하고 조롱했고, 나는 도저히 이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 수가 없었어요. 나는 결국 다시 이 생활로 돌아오고 말았어요.” 세상이 자신의 변화를 인정해주지 않았고, 결국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는데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이웃과 싸우고 있는 한 깡패를 만납니다. 역시 이전에 예수님이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청년, 저를 아시지 않소.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싸우며 살고 있소?” 그가 대답합니다. “,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도대체 무엇을 보라는 겁니까? 보이는 것 모두가 나를 신경질 나게 하고 화나게 만드는데 말입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날마다 세상과 싸우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예수를 만났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셨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오스카 와일드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1. 세례, 변화의 상징

 

창조 이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은 심히 좋았더라입니다. 이 표현은 지극한 아름다움과 만족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 느끼는 만족감과는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본질적인 만족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죄가 그 사이에 들어오고 난 다음 관계는 변질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거짓과 두려움과 수치심의 벽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 이것이 인류가 맞이한 가장 큰 형벌이었습니다.

 

우리는 매년 12월이 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인류 사상 가장 큰 사건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사건, 높으신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의미화하고 계십니까? 많은 말들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오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지혜와 방법으로 하나님은 인류가 하나님 앞에 놓아두었던 거짓과 두려움과 수치심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본격적인 사역, 즉 회복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하신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일은 앞으로 주님께서 하실 사역을 요약하고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이면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변화입니다. 또 한 가지 사건은 세례를 받으신 일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 4장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의 의미를 요약해보시겠습니까? 나중에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요한과 같은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3:2)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의 의미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바로 회개입니다. 세례는 이전의 삶을 씻는 것이고 흘려보내는 것이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2. 변화되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에 동의하여 요단 강변으로 몰려들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갑자기 세례 베풀기를 거절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기위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을 꾸짖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3:8) 회개하고 죄 씻음을 상징하는 세례를 받았으면 이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주는 메시지는 다시 물로 포도주를 만다는 사건에 연결됩니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 변화입니다. 결국 세례에서의 핵심도 변화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예수 믿는다는 성도와 교회가 빠지기 쉬운 영적인 함정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지, 믿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변화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1:21) 또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현장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우리가 주의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디모데에 대한 이러한 경고가 불신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목회 현장에 대한 것입니다. 또하 오늘날 우리들의 영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과 삶에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현장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들판에서 울려퍼진 복음이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기 위해 나오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어떤 음성이 울려퍼집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변화된 삶을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3. 변화되고 있습니까?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어느 장로님 댁에 초대를 받아서 갔습니다. 그 장로님 댁에는 딸들만 셋 있었습니다. 거실에서 장로님 부부와 한참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위에서 둘째 언니가 막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What are you doing? Don’t you hear me!” 막내가 입에 무엇을 우물거리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I am 먹어ing~~”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가 한참 웃었습니다. ‘아하... 지금 먹고 있다는 말이구나....’

 

학교 다닐 때 베웠던 영문법을 기억하십니까? be 동사에 ~ing를 붙이면 무엇이 됩니까? ,, 현재 진행형이 됩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장로님의 딸이 “I am 먹어ing.”이라고 했다는 것은 지금 먹는 일이 진행 중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변화(Change)라고 하는 단어는 늘 진행형입니다. 변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것을 과거형으로 쓰거나 명사로 쓴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단어는 본질상 동사로 사용되어야 하고 현재 진행의 의미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변하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퇴보되기 시작하는 것이며 변화가 과거형으로 사용되는 순간 우리는 옛사람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2013년의 성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되셨던 우리 주님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길이 되십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이요 걸어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 하나의 의미에서 길이 되십니다. 어떻게 살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될 수 있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무엇입니까? 한 단어로 요약하면 뭘까요? 변화?(Change?) 아닙니다. ‘~ING’가 붙어야 합니다. 변화+Ing’, ‘change+ing’가 되어야 합니다. 죄 씻음의 회개를 위해 세례를 받았다면, 이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날마다 맺으며 사는 삶이 오늘날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 당신은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마지막으로 제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해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지금부터 그러니까 약 20년 전이었습니다. 공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김해에 있는 샛별교회라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없는, 6-7분 정도의 성도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를 섬긴 지 1년 반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옆에 그야말로 시골 촌집에 작은 사택이 마련되었습니다. 아직 장교 생활을 할 때라 주말에만 하루 이틀 잠을 자고 오면 되는 집이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을 손질한 것이라 흙냄새도 나고, 집 밖에는 축사가 있어서 가축 냄새도 나는 집이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군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늦게 교회당에 도착했습니다. 아내는 일찍 잠이 들고 저는 주일 준비를 좀 더 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겁니다. 내가 괜히 교회를 맡는다고 해가지고 이게 무슨 고생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갓 신혼인데, 무슨 흙냄새에 닭똥 냄새 나는 집에 신부를 데려다 놓고 도대체 뭐하는거냐....라는 생각도들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한다고 해서 뭐 대단히 나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보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내일 설교를 하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때가 20대 후반, 정말 혈기왕성할 때였습니다. 투덜투덜 불평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했고, 누군가가 제게 걸어왔습니다. 그분 뒤로 안개 속에 빛이 비췄습니다.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땅에 딱 엎드렸습니다. 그분의 발만 쳐다봤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샌달이었습니다. 그분의 그림자가 저를 덮었습니다.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제게 말씀했습니다. “응도야, 이제 가자.....” ... 순간... 이분이 바로 예수님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너는 이제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이제 나와 함께 가자.” 너무 놀라서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할 일을 다했다니요? 아직 목사 안수도 안받았고... 교회도 이제 막 시작했고...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자 그분이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다... 내가 네게 너무 많은 일을 맡겼나보다... 그렇게 힘이 들고 어려운데 너는 이제 그만 일해도 되겠다. 그만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 저의 얼굴 앞으로 손이 쑥 내려왔습니다. 으헉... 하고 놀랐습니다. 손과 발을 사용해서 뒤로 믈러났습니다. 다시 그분이 말씀했습니다. “이제 그만 가자! 네가 할 일은 이제 없다.” 저는 황급하게 뒤로 물러나면서 외쳤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 아닙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아아아아아~~~”하다가 벌떡 깼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가슴 두근거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마라톤을 한들 그렇게 가슴이 뛸까요? 눈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를 두고 교회당으로 갔습니다. 새벽 3... 5시가 되어야 주일 새벽기도를 시작할텐데.... 2시간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다시는 사역으로 불평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게으름을 피지 않겠다고... 다시는 허락하신 일에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예수님, 한번만 봐주세요... 안그럴께요.... 울면서 가슴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는데 자꾸만 제 머리 위로 예수님의 손이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꿈이었지만 저는 그것을 제가 주님을 만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게 주시는 메시지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지금 이렇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지옥의 단편이라는 소설에서 만났던 세 사람과 제가 무엇이 다르다는 말입니까? 예수를 만났는데, 한 때 내가 깨닫고 변화를 결심했는데, 한 때 나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고 변화된 삶을 살았는데, 한 때 주신 은혜가 커서 눈물로 회개했고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쳤는데....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모든 변화를 과거형으로 만들어버렸다면 말입니다. 변화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이미 다 수확해버렸고, 지금은 예수를 기억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복음을 습관 속에서 반복하고 있다면, 목회를 하나의 직업으로 이래하고 섬기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위한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만난 일을 과거의 추억거리로 삼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를 만나고 회개하고 변화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날마다 말씀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며 회개와 믿음의 합당한 열매를 매일의 삶 속에서 수확하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이 받는 세례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지 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를 만났다면, 믿음으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기로 결단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날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복음으로 살겠노라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에 결코 만족하셔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신앙을 포기하셔도 안됩니다. 예수를 만났다면, 회개하고 자복하고 복음으로 살기로 결단하였었다면 이제 우리는 날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변화된 마음과 삶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와 교회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세례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 왜 우리가 새로워지는 세례의 의식에 동참해야 하는지를 보이신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저와 교회 위에 늘 함께, 다가오는 새해에 더욱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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