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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014 하나님의 사람들-4.그때, 그 사람 na kim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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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16.

 

본 문 : 히브리서 131-2절 말씀

제 목 : 하나님의 사람들 4. 그 때, 그 사람

 

아마도 저는 여러분들에 비해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 같습니다.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은 집회나 강의 혹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도 많습니다만, 저는 여행을 하면서 제 사진을 찍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저를 굳이 카메라에 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있고, 저 때문에 중요한 그림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디를 가든지 관심 있게 보면서 찍어오는 두 종류의 사진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고, 또 하나는 벤치입니다. 잠시 제가 찍은 사진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요? 먼저 길 사진을 몇 개 보여드리지요.(사진 1,2,3,4,5)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벤치 사진입니다.(사진 6,7,8,9,10) 이 사진들이 뭐 대단히 잘 찍은 사진이거나 좋은 사진들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경험했던 시간과 장소들을 기억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제가 경험한 소중한 기억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서 누군가가 제게 왜 하필이면 길과 벤치냐고 굳이 물으신다면....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딱히 왜 길과 벤치를 좋아하는지 저 자신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행을 할 때마다 길과 벤치 사진이 많아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두 장면에 의미를 좀 부여하려고 합니다. 길과 벤치, 마치 우리가 사는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길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있는 걸까요? 사람의 발걸음이 닫는 모든 곳은 길이 됩니다. 들판에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되고, 산에 사람이 오르면 길이 되고, 하늘에도 사람이 다니면 길이 만들어집니다. 바다에도 사람이 다녀서 바닷길이 됩니다. 보여도 길이요 보이지 않아도 사람은 길을 만들어 냅니다. 인생은 마치 길과 같아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시간을 사람이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걸어가서 인생이요, 인생길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길 가는 사람들은 피곤하고 지치면 잠시 앉아서 쉽니다. 서로 기대기도 하고 서로 돕기도 합니다. 제가 1인용 의자가 아닌 벤치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발길이 닫는 어느 곳에나 놓인 벤치는 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두세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길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때로 다른 사람의 무릎을 베고 누워도 됩니다. 쉬고 힘을 얻습니다. 열심히 정신없이 달리며 살다가 해지는 언덕에 놓인 벤치에 앉아 서로를 기대며 위로하며 격려하는 모습, 이런 것이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는,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생각이 들어서 저는 앞으로도 길과 벤치에 대한 그림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1. 교차로 그리고 벤치

 

혹시 이 그림을 아십니까?(사진 11) 이 사진은 박지성 선수가 몇 년 전 호주와의 친선 경기에서 전반전을 뛰었던 흔적을 선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참 열심히, 그리고 많이도 뛰었습니다. 한 경기 평균 약 12킬로 정도를 뛴다고 하니 대단한 것이지요. 선들이 많이 겹친 것처럼 보입니까? 같은 곳을 여러 번 간 것처럼 보입니까? 아니지요. 시간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만나서 공을 겨룬 선수들이 다릅니다. 박지성 선수는 각각의 자리에서 각각의 시간에 각각 다른 모습으로 뛰었고, 다른 선수들과 돕기도 하고 상대편 선수들과 맞서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저런 그림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의 인생을 선으로 표시한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요?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한국의 어느 동네에서 태어나 어디서 자라고 어디서 공부를 하고 미국으로 언제 건너와서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선으로 표시할 때 지금 이 자리에 백 개가 넘는 선들이 각각의 삶을 살다가 하나의 점으로 모여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는 우리들의 인생이 교차되는 자리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삶의 여정이 초대교회라는 자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교차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 벌써 세 번째 요셉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게 의미 있는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첫째 날, 인생 여정표를 그리는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강의 준비를 하면서 혼자서 여정포를 한번 그려봤습니다. 조용하게 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것이지요. 그리고 발견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 인생의 여정표에 셀 수 없는 수많은 인생의 길들이 교차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때로는 좋은 시간을, 때로는 아픈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그 중 어떤 사람에게는 참 좋은 경험을, 어떤 사람에게는 하지 않아도 될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 그렇구나.... 어쩌면 나의 인생의 여정표는 내가 어떤 사람과 교차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여정에 교차하는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역사하셨고, 또한 그들을 통해 제가 일하고 섬기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인생의 여정에서 참 힘들고 어려울 때, 쓰러질 것 같고 넘어질 것 같았을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들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벤치일까요? 역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자신이 알았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이 예비하신 벤치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과연 제가 저를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벤치의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돌아보니 제게 쉼을 주고 기쁨을 주고 쉬어갈 수 있는 여유와 안정을 주었던 많은 만남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만날 때에는 고통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돌아보니 그 역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벤치였음을 깨닫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2. 바울의 사람들

 

성경이 소개하는 사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그가 많은 사람들을 만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신들을 마칠 때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셨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는 항상 팀으로 일했었고 함께 일하고 섬겼던 사람들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의 인생을 선으로 표현한다면 가장 굵은 선으로 교차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큰 아픔, 가장 미안한 마음이요 잊을 수 없는 기억, 아마도 그것은 스데반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돌로 쳐 죽인 사람, 예수를 믿는다고, 복음을 전한다고 때려죽인 사람, 그와 스데반의 교차로에서 서로는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요? 그들은 과연 서로에게 쉬어가는 벤치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만나지 말았어야 할, 교차되지 말았어야 할 인생들이 아니었을까요?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큰 섭리 가운데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큰 의미 있는 만남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바울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가장 근접한 죽음, 예수의 이름을 걸고 죽임당한 최초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의 사역을 이어받았습니다. 복음 전도자의 사명으로 남은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인생의 교차로에서 만나 서로에게 그렇게 가장 큰 의미 있는 삶과 만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특별히 바울의 일생을 통해서 생각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면 아나니아라는 사람입니다. 신약에는 세 사람의 아니니아가 등장합니다. 삽비라의 남편 아나니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대제사장 아나니아, 그리고 사도 바울을 만났던 아나니아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해러 가던 중에 큰 빛을 보게 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는 너무 놀랐고, 그리고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달려서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그가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초라한 모습으로 다메섹에 들어갑니다. 사흘간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가 만나야 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어 봅시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10-20)

 

여러분! 사도 바울과 아나니아는 만났어야 할 사람들인가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인가요? 아나니아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의 인생의 여정을 교차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그 여정에서 서로에게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서로의 삶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벤치가 됩니다. 아나니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설교자요 선교사를 고치고 그에게 설교하는 영광을 얻었고, 바울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만남의 결과는 행 9:20에서 바울의 삶에 나타납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9:20)

 

3. 그 때 그 사람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 때 그 사람입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때가 아닌 하나님이 예비하신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교차로 속에 있는 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스데반과 같은 사람은 없었을까요? 여러분에게는 아나니아와 같은 사람은 없었을까요? 아니, 여러분에게는 바울과 같은 사람을 만나야 했던 적이 없을까요? 스데반과 아나니아의 역할을 해야 했던 적이 없었을까요?

 

저는 최근에 들었던 설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설교가 있다면 지난 가을에 저희 교회를 방문했던 한경숙 전도사님의 설교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본인의 몸에 장애가 있으면서 장애우 사역을 하고 있는 전도사님입니다. 당신은 천사입니다.”라는 설교였는데, 성경적으로 혹은 설교학적으로 탁월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전도사님의 삶과 말씀이 잘 어우러졌고, 말씀의 내용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오늘 제 설교와 같은 본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장애우들을 동정하고 사랑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장애우들이 우리의 삶에 다가온,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천사와도 같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관점,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힘들고 어려운 만남들이 많습니다. 내게 고통과 상처가 되는 것 같고, 만나지 말았어야 할 것 같고,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나니아처럼 하나님께 항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까? 그가 얼마나 나쁜지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아나니아에게 주셨던 바로 그 말씀을 우리들에게도 주십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네가 필요하단다. 너의 생각과 너의 때가 아니라, 너의 방법과 너의 계획이 아니라, 나의 때에 나의 방법으로 섬길 나의 사람이 필요하단다. ‘그 때, 그 사람, 즉 나의 때에 일할 나의 사람이 필요하단다. 너를 통해 그의 인생의 여정이 변화될 것이고, 그를 통해 너의 인생의 여정이 깊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여정의 모든 고비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하셨고, 우리를 도우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돕게 하셨고,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을 만들어오셨습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그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했다고 해서 그냥 지나간 만남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면, 즉 형제와 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접대하는 거룩한 마음으로 살면 나의 삶의 곳곳에서 나도 모르게 천사를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섬기게 되고, 나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면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그들에게, 모든 그들은 나에게 서로가 천사가 되는 은혜의 삶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4. 천사가 되다.

 

어제 저는 한아름 마켓에 잠시 들렀다가 아주 귀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부터 약 12년 전, 아직 30대 중반이던 때.... 미국에 유학을 온지 3.... 공부를 해내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저를 찾아왔고, 제게 교회를 개척하자고 했습니다. 저를 어떻게 아시느냐 물었더니 소개를 받았고 저에 대해 많이 이미 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분들과 가족들, 그리고 그분들이 소개한 분들을 6개월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부족하고 연약한 목회자인 제가 시작할 수 있는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한 지 2년 만에 한분이 교회를 떠나셨고, 3년이 채 되지 않아서 다른 한 분이 떠나셨습니다.

 

지난 가을, 저는 충격적인 소식을 하나 접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2년 만에 떠나셨던 한 집사님이 암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왜 그런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제게 연락한번 안주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참 못난 목회자라를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분과 가족들의 마음의 한 조각도 얻지 못한 목회자라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혼자 남은 여집사님께 찾아갔습니다. 가게를 먼저 가신 집사님의 사진과 함께 지키고 계셨습니다. 참 죄송하다, 부끄럽다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목회자로서 가장 큰 영광인 교회를 세우는 기회를 주시려고 집사님들을 허락하셨는데, 저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으로 마음 한 켠도 주지 못하고 떠났나 생각하니 정말 죄송하고 힘들었습니다.

 

어제 한아름 마켓에서 만난 집사님은 3년 만에 교회를 떠나셨던 또 다른 한분이었습니다. 다행히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쾌활하시더군요. 꼭 교회를 방문해 달라고, 제가 정말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허락하신 그 집사님에게 제가 하나님의 사람, 천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 집사님을 천사로 모셨어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이 이 자리에 와서 함께 예배하고 서로를 그 때, 그 사람으로.... 하나님의 때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이 시간한 지점에서 만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교회라는 벤치에 함께 앉은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비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형제를 대할 때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웃을 대할 때 친절로 대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에 허락하신 천사요, 우리는 그들에 대해 허락하신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불순종과 잘못된 판단으로 천사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일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천사의 눈에 아픔의 눈물을 흘리도록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등 돌린 천사를 만나서는 안되겠습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고개 가로 저으며 뒷걸음질 쳐서도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때 그 사람으로 살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천사가 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여 그 때를 외면하고 그 사람을 외면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세상이 되고 벽이 되고 높은 담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에 대해 천사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 바로 이 사역에 대한 작은 결단을 하면 좋겠습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때 그 사람입니다.” 서로 마주 봅시다. 서로의 손을 잡읍시다. “나는 당신의 그 때 그 사람, 당신은 나의 그 때 그 사람!”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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