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6.2014 하나님의 사람들- 7. 기억하고 기억하라! | na kim | 2014-0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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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6. 본 문 : 출애굽기 24장 8=11절 말씀 제 목 : 하나님의 사람들 – 7. 기억하며 삽시다. 지난 주에 저는 시애틀에 있는 훼더럴웨이 중앙 장로교회의 설립 23주년 부흥집회를 인도했었습니다. 저희 교회를 같이 개척했던 장홍석 목사가 의욕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장목사는 제게 집회를 부탁하면서 요셉 프로젝트를 하되 전교인을 대상으로 설교를 통해서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요셉 프로젝트를 설교를 통해서 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서로 의논하는 중에 결국 세가지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부흥 집회를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집회입니다. 찬양을 하고 요셉의 삶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집회를 마치면 9시 40분부터 11시가 넘도록 세미나를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요셉 프로젝트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남는 시간은 신청자에 한 해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 교회 장로님들이 그러더군요. 친한 친구 목사님을 강사로 모셔온다더니 자기들이 생각해도 너무 부려먹는다고 말입니다. 제가 제일 신뢰하는 친구 목사의 목회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거의 녹초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첫날, 금요일 저녁 말씀을 마치고 장목사가 저를 소개하더군요. “얼마 전에 제가 설교 중에 운전을 자기 마음대로 해서 경찰로부터 설교를 들은 목사님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성도들이 박수를 치면서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실은 몇 달 전에 장목사가 제게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의 변화에 대해 뭔가 좀 좋은 예화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도대체 진도가 안나간다는 겁니다.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어서 그냥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와서 목회 칼럼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몇 일 있다가 카톡에 “고맙다...” 뭐 이런 메시지가 왔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한 5년 전에 과속을 하다가 경찰을 만났던 사건을 성도들에게 예화로 들려줬더군요. 1. “경고를 기억하십시오.” 혹시 여러분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교회가 Blue Bell 지역에 있을 때였습니다. 주일 저녁이었는데 속지 좋지 않아서 늦은 밤에 Rite Aid에 갔습니다. 몸도 아프고 짜증도 나서 정말 급하게 운전을 했습니다. 저희 Townhouse Complex로 막 들어서는데 뭔가 뒤에서 저를 쫓아오는 차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 앞에 주차를 하는데, 경찰의 경광등이 온 동네를 밝혔습니다. 저보고 차에서 내리지 말라고 경고를 줬습니다.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고, 경찰은 뭔가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12시가 다 된 시점에.... 잡으려면 동네 입구에서 잡지 왜 집 앞까지 와서.... 몸도 아픈데...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났습니다.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What’s wrong with me?” 그랬더니 하는 말이 신호를 어겼고, stop sign을 두 번 무시했고, 엄청난 과속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최근 3년 안에 교통 티켓을 받은 적이 있느냐 물었습니다. 저는 매년 한 두 차례 받는다고 했습니다. 왜 받느냐고 묻더군요. 대부분 과속이라고 했습니다. 그 경찰은 뜬금없이 제 직업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아.... 이거 곤란한데...’ 생각을 했습니다. “나 목산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Well, you delivered a sermon today, right?” 하고 물었습니다. 더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 당연하지, 그런데 왜?”하고 물었습니다. “무슨 설교 했는데?”라고 묻더군요. 저는 화가 나서 “왜 자꾸 그런 걸 묻지?”하고 되물었습니다. 경찰은 자기도 크리스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자기도 예배를 드리고 왔다더군요. 그러면서 자기는 담임 목사님께 불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항상 변화에 대해 설교를 한답니다. 그 경찰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우리들에게 변화하라고 가르치는 목사님이 왜 자기는 변화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우리 목사님도 운전 습관이 엉망이거든.” 경찰이 다시 물었습니다. “What do you think about the meaning of the violation ticket?” 저는 “asking money?”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웃으면서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icket is a warning. if you keep doing this, you will be in a big trouble. I give you a warning sign today, you’d better to keep in your mind. Remember this warning, and change your driving.” 그리고 그는 갔습니다. 그 일이 있고 잠시 운전을 조심해서 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옛 운전습관이 돌아오더군요. 2010년 9월, 어느 늦은 밤에 북부 뉴저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과속을 했습니다. 480불짜리 티켓과 벌점 5점, 그리고 운전 면허 정지 30일을 받았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아... 그 경고를 계속 기억했어야 했는데.....’ 그 이후 저는 지금까지 3년 6개월째 티켓 없는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20년 넘는 운전 생활 중에 처음입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 와서도 늘 급하고 빠른 운전 습관 때문에 국가 경제에 특별한 기여(?)를 하면서 살았는데, 지난 3년 6개월은 티켓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제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경찰의 경고와 500불 가까이 되는 벌금, 그리고 한 달 면허 정지.... 부끄럽고 아까웠습니다. 2. 나를 기억하라. 우리 교회는 매월 3째 주에 성찬예식을 합니다. 다른 교회보다 많은 것에 대해서 물으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매일, 혹은 매주 하면 좋은 것이 성찬입니다. 다만 교회의 형편과 상황을 고려해서 우리 교회는 매달 하고 있습니다. 성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예수님께서 벌써 성찬을 가르치시면서 제자들에게 일러주셨습니다. “나를 기념하라!”입니다. ‘remember me’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성찬을 계속 행하면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후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찬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삶 속에 각인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매번 성찬을 할 때마가 왜 같은 성경을 계속 읽는지 아십니까? 반복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예수님의 음성이 각인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성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삶, 과연 어떤 것일까요? 제자들은 성찬을 기념하는 삶을 살아갔을까요? 교회는 성찬의 전통을 그들의 삶 속에서 실현하면서 살았을까요?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성찬을 기억하고 삶을 통해서 기념하며 성찬의 의미가 실천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당장 대답하기 어려우십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찬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 본문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본문 중에서 24:8-11을 다시 봅시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출 24:8-11) 이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모세와 아론,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70인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산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는데, 그날 하나님은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과의 만찬을 즐겼습니다.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인생이 이 땅에서 사는 중에 이것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요? 본문이 표현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보았는데, 발 아래만 겨우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청옥을 편 것 같고, 하늘같이 푸르렀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는 감히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큰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얼마나 신비하고 영광스럽고 놀라운 경험입니까?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나도 이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뵙고 함께 먹고 마시는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던 사람들.... 그들은 과연 그 영광과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았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후, 모세는 산으로 더 올라가고 다른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와 백성들과 함께 모세를 기다립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갑니다, 산으로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정말 어리석은 결정을 합니다. 32장 1절을 봅시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 32:1) 백성들은 두려움에 빠졌고 의심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직접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그들입니다. 하나님을 봤습니다. 눈에 보이는 신의 모습을 요구하는 그들에 대한 70일의 장로들과 아론, 그리고 나답과 아비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걱정과 염려, 불안과 의심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옳을까요? 당연히 그들이 만난 하나님을 기억하고 백성들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그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고 있고, 곧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아론은 그들의 요청을 듣습니다. ‘그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둘러싸고 축제를 벌입니다. 아론과 70인의 장로들, 그리고 차세대 지도자인 나답과 아비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던 사람들, 불과 한 달 전에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났고, 아직 그 마음의 떨림과 감격이 사라지지도 않았을 때인데, 그들이 우상을 만듭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그들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염려와 두려움이 그들을 결정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만났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아서 약 3000명이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징계의 책임은 한편 그들의 어리석음과 악함에 있지만, 다른 한편 하나님을 만나고 만찬을 경험했던 그들이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백성들을 인도했어야 합니다. 4. 나답과 아비후, 그들을 주목하는 이유 자,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났을까요? 성경은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 민수기에서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나답과 아비후라는 청년 제사장입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아론의 두 아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세의 뒤를 잇는 정치적인 지도라라고 할 때,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뒤를 잇는 종교 지도자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젊지만 70인의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의 산에 올라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1차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만찬을 나누었던 기억으로 백성들을 이끄는 일에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젊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은 이후에 제사장의 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레위기 10:1-2에는 아주 당혹스럽고 슬픈 기록이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민수기 3장4절, 26장 61절, 레위기 10장 1절, 역대상 24장 2절에서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차세대의 영적 지도자로 인정받아서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큰 영광과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영광과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망각했습니다.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치신 규례와 법도를 기억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과 뜻대로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그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 아론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해야 할 직무를 담당하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 뜻대로 하다기 죽은 것이고, 받은 은혜와 명령을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성경이 이 사건에 주목하고 반복해서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억하지 못하고 그 기억대로 살지 않았던 어리석은 청년 지도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기억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했고, 그 경험이 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직접 받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거룩한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자신들의 편리와 생각을 따라 일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는 일로 판단하여 그들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우리는 구속하신 은혜 가운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제자들과 교회에게 참으로 거룩하고 귀한 영적 경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삶을 경험하게 하셨고, 교회에게는 성찬의 예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예식을 실습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28장은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먹고 마셨던 잔치였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성찬은 삼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살과 피를 언약 가운데 먹고 마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우리들의 일상 가운데, 관계 가운데, 삶의 목적과 비전 가운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성도와 교회로서의 삶을 살아가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십니까?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때로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증오하십니까? 기억합시다.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사랑과 은혜로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때로 욕심과 교만에 마음을 빼앗기십니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보다 낮아지셨습니다. 때로 이기심과 질투에 마음을 빼앗기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그 살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때로 세상이 커보이고, 우리는 너무 작아보입니까? 때로 질병과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힙니까? 때로 절망할 수 밖에 없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까? 기억합시다. 기억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죽으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성찬을 행하게 하시고,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랑과 은혜를 받았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허락하신 대로 가치 있게, 의미 있게, 보람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에 늘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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