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3.14 하나님의 사람들 - 8.이렇게 헌신합시다 | na kim | 2014-03-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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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 본 문 : 출애굽기 35장 20-29절 제 목 : 하나님의 사람들 – 8. 이렇게 헌신합시다. 저희 교회는 예배실 입구에 헌금함을 둡니다. 헌금 시간를 따로 두고 헌금대를 돌리지 않는 것을 목회적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물론 헌신 예배를 드릴 때나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때는 예외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우리의 신앙적 행위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거나 준비되지 않는 부담감으로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의 감사하는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동안 10여년 교회를 섬기는 중에 많은 분들이 좋은 마음으로 이 원칙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내셨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헌금함을 돌려야 부담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하는 교육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다 좋은 마음으로 주시는 의견들이고, 충분히 이해되는 말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룩한 부담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이 스스로 택하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데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헌금에 대한 교육은 헌금함으로 부담을 주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고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헌금이 조금 적게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저희 교회의 헌금 시스템이 좋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대한 영적 자유가 있어야하기 때문이고, 드리는 기쁨과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우리의 헌금함에 함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은 헌금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모든 헌신과 수고에 이 원칙이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흘리는 모든 땀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아무리 우리가 헌신한다 해도 받은 은혜에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적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도의 응답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들은 먼저 죄와 죽음으로부터 영적 자유를 얻었고, 감사와 헌신으로 그들이 받은 은혜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감사와 헌신은 그들에게 또 다른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그들은 재물의 노예로 살던 삶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그들은 능력에 따라 기쁨으로 노동하고 하나님 앞에 노동의 소득으로 얻은 것을 내어 놓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영적 자유와 감동을 전파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3:32-35의 말씀을 봅시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3:32-35) 특히 33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선포됩니다. 무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물질의 자유를 얻습니다. 그들이 얻은 물질로부터의 자유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있는 자는 물질을 나눔으로 자유를 얻고 궁핍한 자는 필요를 채움으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복음의 결과는 은혜와 영적 자유로, 영적인 자유는 감사와 헌신으로, 감사와 헌신은 또 다른 자유로 나타났습니다. 초대교회의 헌신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에 대한 성도들의 삶의 열매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이 구약에서 실현되고 있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비로소 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을 짓고 꾸미는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을 잊고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셔도 그들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마른 사막에서 샘을 허락하셔도 그들은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망했고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셨던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비로소 그들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 앞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요, 감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헌신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영적 반응입니다. 2. 감동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지난 해 상담을 하시고 왜 상담료를 받지 않느냐고 아주 대단하게 저를 가르치신 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목사님이고 교회라고 해도 세상만사가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아무리 우리가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오히려 고맙고, 또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은 도움을 얻어서 감사한 일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그 어르신은 지난 늦은 여름에 큰 에어컨 한 대를 선물하고 가셨습니다. 아마도 상담을 할 때 좀 더웠던 모양이지요. 그분의 마음과 함께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좋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성막은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만드신 이 땅 위에서의 자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조물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큰 영광이자 은혜입니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눈에 보이는 신상인 금송아지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다. 그들은 성막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감동이 있습니다. 이제 그들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이 바로 이 부분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출 35:20-29) 시켜서 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마음에 주저함이 있는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나눔과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자 중요한 내면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애굽의 노예였고, 그 은혜를 경험하기 전에는 죄와 죽음을보터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그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 나니 내 마음의 감격과 감동이 넘칩니다. 그 감동, 그 감격으로 내 마음이 움직이고 내 손이 움직이고 내 발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고, 교회와 성도의 필요를 바라보게 되고, 이웃의 아픔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섬김이요 나눔이요 헌신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감격을 회복시켜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받은 은혜와 사랑에 집중하십시오.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여러분에게 넘치는 감사와 감격을 뺏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기쁨이 있을 때까지, 감사가 내면의 동기가 될 때까지 섬기십시오. 힘이 드십니까? 불평과 불만이 생기십니까? 그러면 잠시 쉬셔도 됩니다. 잠시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그 마음에 감사가 회복되고, 감격이 생길 때까지 좀 쉬셔도 하나님께서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기다리셨던 것처럼 우리를 기다려주십니다. 감동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 이 헌신 위에 하나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비교와 경쟁은 가장 어리석은 헌신입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 섬김과 나눔, 봉사와 헌신은 성도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비교하거나 경쟁의 대상도 아닙니다. 성경이 설명하는 봉사와 헌신의 내면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넘치는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동입니다. 이것이 자랑이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시작한 일이라면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면, 그것도 그 은혜의 크기와 우리의 헌신의 크기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고백이며, 오히려 수고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에 대한 더 큰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다른 성도보다 더 많이 섬기고 있다면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할 제목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성도보다 더 많이 헌신했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더 많은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함께 아파하고 기도했지만 그 중 어떤 일꾼들은 오히려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더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내면의 동기를 기록하기를 “시기하고 다투면서 하는 사람들은 경쟁심으로 곧 불순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빌 1:17/새번역)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빌 1:18/새번역) 이 두 본문을 보시면 과연 누구에게 기쁨이 있고 자유가 있고 감격이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유혹을 받아보신 일이 있습니까? 다른 성도와의 비교와 경쟁, 혹은 칭찬과 인정이 여러분의 섬김의 내면의 동기가 된 적이 있습니까? 물론 그 역시 섬김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도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헌신에 우리의 내면의 동기를 점검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1-5) 이 말씀을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떤 섬김이나 봉사를 할 때에 오직 한 가지 마음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이 허락하신 마음, 예수님에게서 배운 마음....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찌들어 허덕이던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평안을 소유하게 된 바로 그 마음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경쟁도 없고 비교도 없습니다. 그 마음에는 다툼이나 불만이 없습니다. 그 마음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며, 은혜에 감동한 마음이며, 더 많이 섬기기 위해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4. 자기 성취와 만족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성도들이 이겨야 할 유혹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섬김을 통한 자기 성취와 만족을 얻고자하는 유혹입니다. 출애굽기 30장에는 아주 독특한 규례가 하나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소에서 사용할 향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과한 규례입니다.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출 30:37-38) 성경에서 향은 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향이 계속 타고 있다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성도들이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향을 만드는 재료와 방법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향이 드려지면 되니까..... 보이는 것은 똑같으니까....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자기가 원하는 향을 드릴 가능성에 대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신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헌신을 통해서 자신이 높아지려고 하고, 인정받으려고 하고,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성소에서 태워질 향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헌신의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의 시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징계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자신의 만족을 구하려 했던, 헌신의 잘못된 동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보석과도 같은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이 교훈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5, 26절을 봅시다.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마음에 감동으로 자원하여 헌신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또 다른 말로 설명합니다. 어떤 여인이라고 했습니까? 예, 슬기로운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헌신에 대한 내면의 동기가 감동과 자원에 있는 여인들을 ‘슬기롭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지혜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지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장 지혜로운 성도는 어떤 성도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계산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염려와 걱정으로 주저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오히려 주신 은혜를 아는 성도입니다. 받은 사랑을 깨닫는 성도입니다. 허락된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할 줄 아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성도입니다. 말씀을 받되 감사함으로 받고 최선을 다해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성도입니다. 감동과 자원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허락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드릴 줄 아는 성도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된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초대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 받은 은혜와 사랑에 감동하는 마음, 감사와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납시다. 그 마음으로 가장 지혜로운 인생을 삽시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삽시다. 하나님의 더욱 크신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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