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7-2014 다니엘 프로젝트-4.사자 (獅子)의 땅에서 드리는 기도 | na kim | 2014-04-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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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27. 본 문 : 다니엘 6장 10절 제 목 : 다니엘 프로젝트 – 4. 사자의 발톱, 하나님을 향한 기도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여러 기사 중에서 고2 딸은 잃은 한 어머니의 절규가 담긴 글이 있습니다. "다 정리하고 떠날 거예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이 어머니는 스스로 유능한 부모, 좋은 어머니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영문학을 전공했고, 입시학원 원장입니다. 독실한 성도에다가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편입니다. 큰 딸은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고, 작은 딸도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이 성품도, 믿음도 좋아서 주변 사람들이 늘 부러워했습니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작은 딸의 생사를 알지 못합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미 생명에 대해서는 절망했고, 시신이라도 찾아서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부모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자조합니다. "내가 참 못난 부모구나, 자식을 죽인 부모구나. 이 나라에서는 나정도 부모여서는 안 돼요. 대한민국에서 내 자식 지키려면 최소한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해요... 이제는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저주스러워요. 우리 딸 나오길 기다리는 한 시간 한 시간이 피를 말려요". 그리고 이 어머니는 제게 잊을 수 없는 중요한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를 하든 데모를 하든 뭐든 해야 돼요.” 무엇이 위기입니까? 그 어머니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자신이 30대 때 삼품 백화점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한 부실 신흥 재벌이 만든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면서 502명이 사망했고, 937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6명이 실종되어 총 1,445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한국 전쟁 다음으로 역사상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되었습니다. 백화점이 붕괴하기 직전, 간부들은 피해가 생길 것을 알고도 종업원과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았고, 자신들만 백화점을 빠져나왔습니다. 배와 승객을 버리고 탈출했던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처럼 말입니다. 그녀의 반성은 그때 자신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자신의 삶에 다가온 위기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다가온 안타까운 불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음 아프고 슬펐지만 자신의 위기, 혹은 자기 가족의 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건의 본질적인 해결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경험하고 보니, 10년마다 큰 재난이 계속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 살면서 이 두 사건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붕괴되고, 배가 가라앉고, 지하철이 폭발하고.... 그 모든 사건의 본질은 같습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오늘은 내 사랑하는 딸이 검은 바다에 잠겼지만, 이번 사건을 우리 모두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일은 당신의 아들이 바위 아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위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하고 우리들 모두가 무엇인가 일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난 한 달간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면서 다니엘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각자가 자신과 약속한 자기 절제와 헌신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난 3주간 다니엘서를 통해 나눈 말씀들에서 제가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참된 위기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무엇을 위기라고 보았습니까?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못하는 것이 위기였을까요? 그것을 거절해서 왕의 진노를 사는 것이 위기였을까요? 꿈을 해석하지 못해서 포악해진 왕을 만나는 것이 위기였을까요?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협을 당하는 것을 위기로 여겼을까요? 뜨거운 풀무 앞에서 협박당하는 것이 위기였을까요? 사람들이 나를 모함하고, 함정에 빠뜨리고, 심지어 사자의 발톱 앞에 던져 넣는 것이 위기일까요? 하나님께서 다니엘서를 포로기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후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참된 위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위기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정황과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다니엘서를 통해 인류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무엇이 복입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사람의 복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잃었고, 또 잃은 위기에 처한 다니엘과 세 친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편 73편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 아주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외침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미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악인의 형통함’ 때문입니다. 2-3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 73:2-3) 그리고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한 결론을 하나 얻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시 73:13-14) 그는 정말 위기에 빠졌습니다. 악인은 형통한데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신은 늘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 나도 악인처럼 사는 것이 옳은지도 모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피해자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가해자의 삶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 험한 세상,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세상...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간다는 세상... 법을 지키고 지시에 따랐더니 죽음에 이르는 세상 가운데서 그렇게 피해를 당하고 사느니 차라리 세상보다 더 영악하게 가해자의 자리에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세월호에 딸은 잃었던 어머니의 절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안전하게 자녀를 키우려면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 제도적인 가해자의 위치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망하던 시편 73편의 시인은 어느새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 앞에 섭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십니다. 그가 깨닫습니다. 아... 세상에서 잠시 잘사는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행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구나.... 의로운 삶을 향한 나의 노력과 땀과 눈물을 세상은 몰라줘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다 알고 계시는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참된 복이 무엇인지 고백합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6-28) 시인은 무엇을 인생의 참된 복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복이요, 하나님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삶,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하심이 우리의 참된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고 반석이 되시고 산성이 되십니다. 이사야 43:1-2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붙들어야 할 참된 소망과 복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1-2) 지금 유다는 바벨론에 짓밟히고 포로가 되어 이방의 땅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깊은 바다에 빠졌고, 거센 물결 휘몰아치는 강물을 지나고 있고, 풀무 한 가운데 던져져 있습니다. 복된 삶인가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절망인가요? 역시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고난 없는 삶이 복된 삶이 아니라, 그 어떤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것이 복입니다. 3. 사자의 굴에서 살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다음에는 과연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요? 당시 메데의 왕이었던 다리오는 3명의 총리대신을 두었습니다. 포로였던 다니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서 그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총리들과 신하들이 다니엘을 시기합니다. 그를 모함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 그가 기도하는 일에 함정을 파기로 모의합니다. 그를 인정하고 사랑하던 다리오왕도 신하들의 요구가 다니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서 다니엘이 보여주는 중면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다시 본문을 읽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성경은 그가 다른 신하들의 계략과 음모를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정한 시간에 기도하면서 오히려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무엇을 자신의 위기로 보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가 위기였을까요? 그들의 수군댐, 그들의 모함, 그들의 살기등등한 협박이 위기였을까요? 만일 다니엘이 그러한 것들을 위기로 여겼다면 그는 기도를 중단했어야 합니다. 감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이 위기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을 위기로 여겼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위기로 여겼습니다. 본문 다음 장면은 그들이 왕 앞에서 다니엘을 고소하는 것이고, 그 다음 장면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면.... 사자는 사자 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자가 사자이 굴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속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니엘이 살아가는 세상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번뜩이는 이빨로 으르릉거리는 사자들의 세상이었습니다. 그 사자들이 달려들어 유다를 짓밟았습니다. 그 사자들이 수많은 동족들을 죽이고 청년들을 포로로 잡아왔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는 실은 사자들의 미끼였습니다. 두라 평지에 왕이 만든 신상이 사자처럼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일곱배나 뜨거운 풀무불이 그들을 할퀴려 합니다. 동료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고 함정을 팝니다. 다니엘이 사는 세상은 참으로 사자가 날뛰는 세상입니다. 죽음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결국 다니엘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유다의 포로 사회,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삶의 현실은 무엇입니까? 바로 풀무불이요 사자의 굴이라는 것입니다. 4. 주님의 손을 붙잡다. 저는 어려서부터 시편 23편을 암송하면서 참 이해가 안되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입니다. 내가 만일 원수와 전쟁을 하는데, 하나님이 내 앞에 잔치상을 베푸시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나의 잔을 채우시면.... 아마 전쟁에 질텐데.... 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4절에서 시인이 사는 세상은 다니엘이 사는 세상과 같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요, 원수의 목전입니다. 사자의 발톱과 이빨 앞이요, 사자의 굴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이런 세상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아주 단호하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와 교회는 늘 패배하고 빼앗기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도와 교회에 어떻게 하면 사자굴과 같은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날 때 그의 장대함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광야에서 양들을 지킬 때 연약한 소년과 함께 하셔서 맹수로부터 양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 다윗은 그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그는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영광의 상을 받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습니다. 승리와 기쁨의 넘치는 잔을 받습니다. 그는 원수의 목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손을 붙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물맷돌을 들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세 친구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바벨론과 메대, 파사 왕국을 거치면서 격동의 역사적 시기를 이방의 땅에서 관료로 사자들과 함께 살았지만,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자굴에 던짐을 받아도 당당하게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마음으로 이방의 땅에 포로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능력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요, 그들이 주님의 손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사자굴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사자는 어떤 얼굴로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경제적인 위협입니까? 사람들의 모함입니까?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불행입니까? 육신의 질병입니까? 여러분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겸손하게 하나님의 손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사망이 지배하는 어두운 밤길과도 같은 우리 인생, 눈을 감고 무작정 걸어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시고 길에 빛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해야겠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대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일하고, 주님과 더불어 섬겨야겠습니다. 주님, 우리들이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마음 빼앗기지 않도록 하옵소서. 두려움과 염려가 아닌, 교만과 방종이 아닌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의 인도함을 받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마음에 순종하여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살게 하옵소서! 빛 되신 주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빛 되게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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