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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14 두 얼굴-3.솔로몬의 들꽃(1) na kim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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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0.

 

본 문 : 마태복음 625-30절 말씀

제 목 : 두 얼굴 3. 솔로몬의 들꽃(1)

 

얼마 전에 김문성 집사님의 안내로 자전거를 타고 202번 자전거 도로를 완주한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63번과 202번이 만나는 지점에서 Doylestown까지 약 8마일 남짓, 왕복 16-7마일 정도 되는 길이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서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쉬기도 하고 구경도 하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에 왕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차로 그 길을 여러 번 지나쳤지만 자전거로 달려보니 전혀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얼굴에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너무 신선했고, 신선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드는 느낌도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도로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이었습니다. ... 꽃 이름을 좀 공부해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로로 많은 종류의 꽃들이 다양한 색깔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 참 맛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주일에는 제가 자전거를 타면서 들판에 피었던 꽃을 보고 느꼈던 은혜를 솔로몬의 들꽃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이번 주일은 우리의 삶의 가치에 대해서. 다음 주일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교회의 가치에 대해서 묵상하겠습니다.

 

저는 꽃... 하면 늘 김춘수 시인의 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교과서에 실렸던 적이 있는 시로 기억합니다. 여러분, 기억나십니까? 잠시 읊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10대 시절에 이 시를 읽고 암송하면서.... ...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절제된 언어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멋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오늘은 이 시에 대해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잠시 생각을 해 볼까 합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꽃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시는 기본적으로 존재와 관계를 말하는 시입니다. 어설프게 사랑고백 정도로 생각하면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서로의 이름을 알고 불러준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합니다. 나와 관계가 없을 때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사람이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와 그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됩니다.

 

이 시에서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관계를 이라 부릅니다. 꽃은 사람이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가치를 상징합니다. 내가 그를 인정하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하나의 단순한 몸짓이었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서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귀하고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그가 나에게 꽃이 된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에게 꽃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서로에게 꽃이 되고, 서로에게 참된 아름다움이 되는 관계가 시인이 노래하고 소망하는 관계입니다.

 

이 시를 근거로 해서 사람의 삶의 참된 성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꽃이 되는 삶입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고나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가 되고 가치가 되고, 그리하여 꽃처럼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2. 솔로몬, 영광의 사람

 

저는 이라는 시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얻을 수 있는, 또 얻고 싶어 하는 각자 인생의 영광이 있습니다.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끝이 있다면,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존경과 위엄의 끝이 있다면,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권력의 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솔로몬이 왕으로서 누렸던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여러 가지 마음의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채웠던 사람입니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에 얼마나 큰 허무감을 느끼고 후회했는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후회와 마지막 권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가 누렸던 영광과 쾌락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의 유언의 직접적인 대상인 아들 르호보암도 솔로몬처럼 영광을 누리기를 원했고, 예수님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랬으며,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들도 인생의 목표와 기도의 제목이, 자녀 교육의 이유와 목표가 바로 솔로몬이 누렸던 영광을 누리는데 있지 않습니까?

 

바로 여기에 오늘 예수님께서 본문을 통해 제기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21절에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물은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참된 가치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주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재물이 되기도 하고, 명예나 권력이기도 하고, 사랑이나 관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로 생각하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마음에 있는 또 하나의 주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믿는 왕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에 찾아온 또 하나의 주인을 따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주인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영광을 솔로몬에게 허락했습니다. 그 영광은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의 주인이자 목표가 됩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소원하는 인생의 목표, 솔로몬의 영광을 성취시켜주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주인입니까? 백성의 지도자들은 지도자들대로, 율법학자들은 율법학자들대로, 제사장들은 제사장들대로 , 그리고 무지렁이 가난한 민중들은 그들대로 각자 욕심과 염려와 걱정을 따라 세상의 종이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꽃이 되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천국-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말씀을 가장 긴급하게 선포하신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세상을 섬기며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야망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염려와 근심이 그들을 움직입니다. 권력에 대한 지향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배척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세상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들판에 피어 있는 백합화가 보이느냐? 여기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꽃들이 보이느냐? 이 모든 꽃들은 하나님이 가꾸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아름답게 하신다. 하나님이 꽃마다 이름을 주시고 바람에 꽃씨를 날리게 하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셔서 이 들판을 꽃으로 채우신다. 이 꽃들은 하나님을 노래하는 꽃들이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꽃들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영광으로 옷을 입은 솔로몬보다 여기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들이 더 아름답다 말씀하신다. 꽃들로부터 더 크게 영광을 받으신다. 그런데 너희는 이 꽃들보다 더 중요하지 않으냐? 너희의 삶은 이 꽃들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냐? 들풀 한포기도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그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데, 너희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면서 세상의 종으로 살려고 하느냐! 사랑하는 자들아! 먼지와 같이 사라질 솔로몬의 영광을 부러워하지 말고 날마다 너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꽃으로 살지 않겠느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꽃이 되어 세상에 그 나라의 향기를 전파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씨를 뿌리시고 나의 거룩한 피로 피어나게 한 하나님 나라의 꽃이니까!

4. 가치 결정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얼마 전에 애들을 저의 뒷 좌석에 태우고 오면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봤습니다. 손님이 와서 애들에게 돈을 줬던 모양입니다. 아직 돈의 크기를 잘 모르는 승하가 20불 지폐를 손에 들고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두 오빠의 눈에 빛이 반짝했습니다. “숭하야, 오빠가 돈 두 개 줄테니까 바꿀래...?” 승하는 기꺼이 그 오빠 참 좋은 오빠인줄로 알고 돈을 바꿔줬습니다. 물론 장난이 포함되어 있어서 제가 혼을 내고 돌려주기는 했습니다만, 20불 짜리 지폐 하나를 1불짜리 지폐 둘과 바꾼 다음 행복해하던 승하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왜 승하는 그런 일을 했을까요? 왜 더 좋아하고 행복해했을까요? , 아직 돈의 가치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불이 아니라 200불을 준다한들 승하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돈의 가치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이지요. 저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귀한 것을 내려놓고 세상의 값싼 가치를 삽니다. 세상의 무용한 영광과 쾌락을 얻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외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을 아십니다. 그 마음이 빨리 자라서 하나님 나라의 귀한 가치를 깨닫고 알아서 그 가치를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같이 대답해 볼까요? 하나님 앞에서 더 사랑스럽고 가치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솔로몬의 자기 영광일까요? 들에 핀 꽃일까요?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들에 핀 꽃일까요? 성도, 우리들일까요? , 하나님은 성도를 귀하게 보시고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마음을 빼앗아간 또 다른 주인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대답해 봅시다. 우리들에게 더 아름답고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영광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우리가 먼저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염려와 걱정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우리의 마음의 주인은 무엇입니까? 돈과 권력과 명예와 자존심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우리는 지금 아직 진리에 대한 가치 기준이 없는 영적인 아기가 되어 썩어질 세상의 것을 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묻습니다. 너희 마음의 주인은 무엇이냐? 너희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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