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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03 두 얼굴-솔로몬의 들꽃(3) na kim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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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3.

 

본 문 : 마태복음 1331-32절 말씀

제 목 ; 두 얼굴 5. 솔로몬의 들꽃(3)

 

몇 년 전, 한국 강남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한 친구 목사님이 저희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너무 지쳐서 쉬기 위해 휴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희 교단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교회의 담임 목사였고, 교단 내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지쳤냐고 물었더니, 뜻 밖에도 사랑의 교회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당시 사랑의 교회는 고 옥한음 목사님이 조기 은퇴를 하고 현재 담임 목사인 오정현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한 지 4-5년 되던 시기였습니다. 밖으로는 역사적인 세대교체를 이루고 많은 존경과 칭찬을 받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옥한음 목사와 오정현 목사의 목회 철학의 차이로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교회당 건축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오정현 목사는 옥한음 목사의 그늘을 벗고 자신만의 목회를 하기를 원했고, 당시 강남에 있던 교회당이 아닌 교통의 요지에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교회가 교회당을 건축한다는 것에 대해 다른 교회와 목회자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전 한국 교회에 제자 훈련이라는 목회 건셉을 도입했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교회를 표방해왔던 사랑의 교회가 오직 자기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초대형 호화 교회당 건축을 강행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교회와 같은 이미 초대형으로 성장한 교회가 더 팽창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 교회당을 신축하게 될 때 주변 지역교회들의 약세는 불을 보듯 뻔 한 것이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들이 함께 보여서 소위 대책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저희 집을 방문했던 목사님은 자기 말로는 떠밀려서 대책위원회 총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 표현대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랑의 교회당 건축에 대해서 도로 교통법과 건축법에 위배되는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었고, 서울특별시의 특혜가 의심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친구 목사님은 대책 위원회 총무로서 공무원을 만나고 법정에 출석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랑의 교회 관계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명서도 발표하고 언론에 편법 및 불법 건축 과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교회의 힘이 정말 너무 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랑의 교회당 신축 건물이 불법 및 편법 의혹이 있다고 제기해도 담당 공무원들과 관청에서는 문제 제기를 받아주지 않았고, 날마다 욕설과 비난이 섞인 전화가 빗발쳤고,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교계에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니 그만하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대책 위원회 총무 일을 한 2년 하다 보니 사랑의 교회 건축은 막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버틸 힘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도망치듯 휴가를 받아서 미국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앞으로 목회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솔로몬 교회와 들꽃 교회

 

제가 5-6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에 읽은 글 한편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의 교회는 결국 지난 해 소위 성전 건축을 끝냈고, 표절 및 재정 비리 논란이 있었던 오정현 목사는 6개월 자숙의 기간을 가진 후 목회 일선에 복귀했습니다. 이후 교회는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건축에 반대했던 성도들, 그리고 오정현 담임 목사의 표절 및 재정 비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성도들이 사랑의 교회의 영적 회복을 위해서 계속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그 성도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최용우라는 성도가 실명으로 쓴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읽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은 '솔로몬교회와 들꽃교회'입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에는 솔로몬교회와 들꽃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 교회가 솔로몬의 영성을 추구하면 솔로몬교회요 들꽃의 영성을 추구하면 들꽃교회입니다.

 

만약 우리교회가 화려하고 눈부신 위용을 자랑하는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대형 성전을 짓는 것이 교회의 목표라면, 좋은 대학 나오고 유학 다녀와서 어느 정도 리더쉽과 스펙(specification)이 되는 박사 학위는 기본인 목사님 정도는 되어야 우리교회의 담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교회는 솔로몬 교회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면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대박 나서 부자가 된다고 믿는다면,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한다면, 삼박자 축복 받고 싶고 소원 성취하고 싶고 이다음에 천국에서 황금이 깔린 길을 걷고 싶어서 교회 다닌다면 그 사람은 솔로몬교회 교인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며 찰랑거리는 물결을 보고, 작은 동산에서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산상수훈을 전하셨던 것처럼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곳이 교회라고 믿는 다면, 조용하고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라면, 누구든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고 나갈 수 있다면 그 교회는 들꽃교회입니다.

 

앞서 달려가는 잘 나가는 사람들 보다 뒤쳐진 사람에게 관심이 더 많고, 세상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할까에 더 신경을 쓰고, 오늘 이 자리가 천국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한다면 그 사람은 들꽃교회 성도입니다.

 

예수님은 거대한 대리석과 눈부신 황금으로 치장된 '솔로몬의 성전'과 이름없이 피었다 지는 '들꽃 한 송이'를 비교하시면서 솔로몬의 영화가 이 들꽃 한 송이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2. 우리가 원하는 공동체

 

저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원하시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어떤 교회로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함께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심각하면서도 진실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민 생활 힘들고 어려운데.... 좀 평안하게 예배 잘 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도 받고, 사람들도 좀 사귀고.... 자녀 교육 잘 시키고....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이민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든 교회는 그 교회가 그 시대, 그 지역 사회에 존재하고 성장해야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 다른 교회가 아닌 그 교회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깨가 아파서 잘 아는 분이 일하시는 카이로프랙틱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 분이 교회에 대해 마음이 좀 상해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분이 이 지역에서 아주 큰 교회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환자들이 병원으로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원장인 자신을 압박했습니다. 왜 자기 교회에 나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를 잘 하려면 그 교회로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자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다보니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교회를 출석하던 같이 일하던 분이 또 다른 카이로프랙틱 병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성도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필라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우리교회 나와야 해요....” 어쩌면 그 분에게 그런 말을 했었던 그 교회 성도들은 자기 교회에 출석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교회의 목회자나 모든 성도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3. 겨자씨의 나라 vs. 백향목의 나라

 

오늘 본문 말씀의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1318-19절을 보면 오늘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유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13:18) 예수님은 19절에서 답을 주시기까지 아마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셨을 겁니다. 청중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상상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상상하십니까? 초라하고 작습니까? 화려하고 큽니까? 낮고 어둡습니까? 밝고 영광스럽습니까? 아마도 모든 유대인 청중들은 화려하고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13:19) 예수님의 대답에 그들의 모든 상상과 기대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근동 지방에는 수목의 왕으로 불리던 나무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궁전이 이 나무로 지어졌습니다. 레바논 산맥 고도 2000m 지역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그 어원이 '튼튼하게 뿌리를 뻗는 강인한 수목'이라는 뜻입니다.(그림1 백향목) 높이가 40m에 지름이 3m에 달하며 2000~3000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면서 이 나무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17:22-23) 만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했다면 모든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아름답고 영광스럽도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나무에 비유하면서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백향목이 아닌 겨자씨 한 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에스겔서와 같은 구조로 말씀하십니다. 씨가 심기고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깃든다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림에 대해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겨자풀 혹은 겨자나무를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그림2,3 겨자씨, 겨자나무) 팔레스타인에서 자라는 겨자는 1년생 초본 식물입니다. 그 지역에 자생하기도 하고 재배하기도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한 식물입니다. 아주 잘 키우면 약 3m 정도까지 자랍니다. 나무라고하기에는 작고 풀이라고하기에는 큰 식물입니다. 하지만 1년생이고 매년 씨를 뿌리는 풀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 그리고 답하십니다. 너희들의 마음 속에는 백향목이 있겠지만, 내 마음 속에는 겨자씨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 들의 마음 속에는 솔로몬의 영광이 있겠지만 내 마음 속에는 들꽃들이 가득 피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백향목의 높음이 아닌 겨자씨의 낮음에 있다. 백향복의 위대함이 아닌 겨자씨의 겸손함에 있다. 백향목의 3000년이 아닌 겨자씨의 1년에 있다. 백향목의 단단하고 높고 굵은 나무 둥지가 아닌 겨자풀의 짧고 여린 가지에 있다. 해발 2000m의 높은 레바논 산맥에만 존재하는 백향목이 아닌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유대 광야의 곳곳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겨자풀에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강도의 굴혈로 변해버린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 광야를 누비며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 현장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이 전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처럼 또 하나의 화려한 제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간절한 눈빛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갈구하는 겨자씨와 같이 보잘 것 없는 너희들 속에 있다.”

 

4. 꽃 한 송이 마음에 품고.....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의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마음 속에 대답해보시겠습니까? 솔로몬의 영광입니까? 들꽃의 찬양입니까? 백향목의 영광입니까? 겨자씨의 섬김입니까?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은 들꽃과 겨자씨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고백하는 것과 생활하는 것이 다를까요? 왜 겨자씨와 같은 교회, 들꽃과 같은 교회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크고 영광스럽고 세상에 대해 군림하는 교회를 원하는 것일까요? 서울의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교만하다고 생각할까요? 우리 교회에 다녀야 비즈니스가 된다고 말하는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교만하다고 생각할까요? 그 교회 성도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모두가 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하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며, 겸손한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낮은 자를 사랑한다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삶의 지향은 고백과는 다릅니다. 고백은 낮은 곳을 향하지만, 삶은 높은 곳을 향하고, 고백은 광야를 향하지만, 삶은 도시로 달려가고, 고백은 들꽃이지만 삶은 솔로몬이며, 고백은 겨자씨 그것도 한 알인데, 삶은 백향목의 영광을 꿈꿉니다.

 

마태복음 5-7, 일반적으로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에서 예수님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유혹과 시험에 마음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는 천국 시민의 윤리의 핵심입니다.

 

마태복음 13,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과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아예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천국은 마치 ~~과 같으니...”라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천국은 ~~과는 다르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라는 무엇과 같고 무엇과 다를까요?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으로서의 지상이 교회는 무엇과 같아야 하고 무엇과 달라야 할까요? 우리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이어야 하고, 어떤 교회여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소원하기는 지난 3주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초대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예쁜 꽃 한 송이가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이어도 좋습니다. 백합화여도 좋습니다. 노란 겨자꽃도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성도들의 마음에서 삶으로 퍼져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성도와 가정과 삶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됐습니다. 대단히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고 다니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단히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피워내는 꽃 한송이, 그리스도의 향기와 기쁨을 전하는 꽃 한송이면 됩니다. 그 꽃들이 모여 아름다운 정원이 되고 지역사회와 이 시대에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들꽃과도 같은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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