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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성공의 두 얼굴(2) na kim 201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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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4.

 

본 문 : 대하 32:22-31

제 목 : 두 얼굴 6. 성공의 두 얼굴(2)

 

저희 교회가 2014년에 두 번째 성경 통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기에 15여명, 2기에 21명이 등록해서 매일 주어진 말씀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1기와 2기 통독팀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서를 읽을 때, 즉 사사시부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를 읽을 때 같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중에서 왜 제대로 하나님을 잘 믿은 선왕()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사울왕과 다윗왕, 그리고 솔로몬이 통일 왕국이 왕이었고, 그다음 시대에 르호보암의 남유다와 여로보암의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됩니다. 특히 북 이스라엘에는 거의 선왕이 없었고, 대부분 우상을 섬기면서 백성들을 압제하는 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신앙의 전통을 지켰던 남유다에는 몇 사람 좋은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네 사람 정도를 손 꼽는다면 요아스, 여호사밧, 요시아,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만나는 히스기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만나는 히스기야는 참으로 다이나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가 아닌 성공과 실패를 넘나들면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은 그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성공이 가진 두 얼굴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히스기야의 일생

 

우리가 읽은 본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어볼까요? ‘여호와라고 하는 주어와 히스기야라는 주어, 그리고 이 두 주어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서술어만 간추려서 읽어 봅시다. 예를 들어 역대하 32:22에서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라고 할 때 앞 뒤 수식하고 설명하는 말들을 다 떼고 주어인 여호와께서와 가장 중요한 서술어인 보호시매만 읽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오늘 본문을 다 정리해볼까요? 밑줄 친 부분만 읽으시되 가운데 있는 내용을 마음에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 읽어 봅시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떼와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여러분, 제가 이렇게 성경을 읽어보자고 권했던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읽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읽은 방식대로 본문을 편집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여내사.... 보호하시매

히스기야가..... 존대하게 되었더라

 

히스기야가.... 죽게 된고로.....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대답하시고.....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교만함을 뉘우치고

여호와의 노가.... 임하지 아니하니라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국고를 세우며..... 창고를 세우며..... 우리를 갖추며.....성읍들을 세웠으니

하나님이.... 주셨음이며

히스기야가..... 형통하였더라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떠나시고.... 시험하셨더라

 

2. 히스기야의 부흥

 

여러분! 하나님의 의도를 읽으셨습니까? 히스기야는 보편적으로 볼 때 선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였던 아하스왕의 전철을 밟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살아남을 뿐 아니라 부흥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를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을 이뤄냈고, 유다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부흥기와 침체기가 있었습니다. 먼저 그의 삶의 부흥은 언제 찾아왔을까요?

 

첫째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을 때입니다. 성경은 그의 성공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여내사.... 보호하시매

히스기야가..... 존대하게 되었더라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국고를 세우며..... 창고를 세우며..... 우리를 갖추며.....성읍들을 세웠으니

하나님이.... 주셨음이며

히스기야가..... 형통하였더라

 

그의 성공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주어를 분명하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매입니다. “하나님이 주셨음이며...”입니다.

 

그의 부흥의 두 번째 이유는 그가 회개하고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죽게 된고로.....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대답하시고.....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먼저 죽음으로 가는 질병 앞에서 그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병들었을 때 드린 기도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혹 읽지 못하신 분을 위해서 히스기야가 어떻게 기도했는지 함께 읽어보실까요? 이사야 389-20절의 말씀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의 병이 나은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내가 말하기를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 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38:9-20)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 아닙니까? 하나님도 이 기도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십니다. 우리가 고통과 고난 가운데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저는 혹시 여러분이 병들었을 때에 히스기야의 기도로 함께 기도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참 좋은 기도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징계를 만날 때 그가 엎드립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교만함을 뉘우치고

여호와의 노가.... 임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성공에는 두 얼굴이 있습니다. 내가 어려움 중에 있을 때는 성공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성공을 하고 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얼굴이 달라집니다. 나의 성공은 나의 노력과 땀의 결과이며, 따라서 그 영광과 기쁨도 내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사울왕이 성공했을 때의 얼굴이며,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만나게 됩니다. 사울왕은 어리석어서 회개하지 못했지만, 믿음과 지혜가 있었던 히스기야는 곧 하나님 앞에서 돌이킵니다. 그는 교만함을 뉘우쳤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목적이 진노와 징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심과 은혜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용서하셨고 품어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그의 인생에는 늘 새로운 길이 열렸고, 가장 선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당시 가장 강성한 나라였던 애굽과 바벨론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은 스스로 히스기야와 유다가 살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3. 히스기야의 실패

 

반대로 그는 언제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게 될까요? 그 또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우리가 앞에서 생각한 대로 그가 교만할 때였습니다. 지난 주 생각했던 사울왕도,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히스기야도 그들이 만났던 인생의 위기가 그들의 패배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그들의 인생의 참된 위기가 시작되었을까요? , 그들이 잘 될 때였습니다. 그들이 승리할 때였습니다. 성경은 그의 거듭된 성공이 그를 교만하게 했고, 그것이 그의 인생의 위기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더니

 

둘째 그의 인생의 실패는 마음의 중심을 잃을 때입니다. 요약된 본문을 다시 봅시다.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떠나시고.... 시험하셨더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바벨론의 왕이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축하합니다. 실은 축하라기보다 유다에 임한 놀라운 기적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를 정탐하러 온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한껏 마음이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나았는데, 강대국이던 바벨론의 왕이 자신의 쾌유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큰 왕이며 위대한 왕인지를 바벨론의 사신들 앞에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왕궁이며 성이며 성전이며 유대가 가진 모든 뛰어난 유산들을 그들에게 다 구경시켜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것을 놓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시험하셨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확인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의 사신이 와서 쾌유를 축하할 때, 그들에게 내가 믿는 하나님, 유다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증거했다면 그들이 유다를 침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바벨론의 사신에게 작은 나라 유다의 왕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한 것입니다. 이후 바벨론은 두려움 없이 유다를 쳐서 멸망시킵니다.

 

저는 이것이 교만과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럴 때가 없습니까? 이건 아닌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틀린 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을 때.... 그저 잘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많이, 깊이 빠져 있을 때.... 꼭 그렇게 하려던 것은 아닌데 마음의 중심을 잃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범하게 되었던 일은 없습니까?

 

히스기야가 왕궁와 성전의 모든 것을 바벨론의 사신에게 보여주는 것, 그 한 사건을 놓고 보면 뭐가 그리 큰 잘못이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건으로 히스기야의 마음 속에 있는 가치관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는, 고난의 때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는, 유다에 넘치던 우상을 제거하고 종교 개혁을 이루었던 그는 그의 모든 업적을 자기의 것으로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 그의 마음의 무질서가 드러났습니다. 그의 마음을 주동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드러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여전히 자신이 누려야 할 영광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7:29) 우리들의 마음에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 우선순의를 보여주셨습니다. 다만 우리는 자꾸 다른 순위표를 내밉니다. 마음에 질서가 없는 것입니다. 잠시 소위 정신줄을 놓습니다. 부와 명예 앞에, 권력과 쾌락 앞에 마음이 산만해지고 정신이 흐려집니다.

 

4.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

 

지난 주일 말씀을 나누었던 사울왕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성도의 성공에는 두 얼굴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얼굴에서는 우리의 겸손함이 보입니다. 우리의 낮아짐이 보입니다. 우리의 사모함이 보입니다. 우리의 헌신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입니다. 겸손한 사람, 낮은 성도, 헌신하는 일꾼을 향한 하나님의 기쁨과 긍휼의 얼굴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얼굴로 성도와 교회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의 얼굴에서는 우리의 교만함이 보입니다. 성공에 취했고, 영광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즐거움과 쾌락에 정신을 못차립니다. 우리의 교만이 보이고, 우리의 욕심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어느새 내 인생의 변방으로 밀려나있습니다. 오직 내 소원과 욕심을 이뤄주는 그 어떤 대상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겼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수많은 우상이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아닌 하나님이 나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더욱 낮은 곳에서 더욱 겸손하게 섬김으로 말미암아 오늘 나와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낮은 곳에서 더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만나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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