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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ing Day-2.교회, 복음의 거울 na kim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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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본 문 : 고린도전서 151-4절 말씀

제 목 : Blessing Day 2. 복음의 거울

 

제가 전에 ‘Delivery’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번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Delivery - 미국에 사는 우리들이 한국어와 섞어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 ‘배달하다’ ‘전달하다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 속에서 이 단어를 사용할까요? , Pizza를 시킬 때 delivery 해달라고 합니다. 우편배달도 delivery입니다. 여기까지는 한국어와 그리 다르지 않은 개념입니다. 하지만 아기를 분만하는 것도 delivery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이 단어가 참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산모의 역할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모는 스스로 생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생명을 이 땅에 배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설교를 delivery 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하는 것을 한 단어로 ‘preach’라고도 하고, deliver a sermon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이나 목적으로 변경시키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배달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편지를 바꿔치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피자를 배달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피자를 싫어하기 때문에 호떡을 만들어서 배달해도 되는 것일까요? 산모가 출산할 때가 되었는데, 검사를 해보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들을 원하는데 딸입니다. 쌍둥이를 낳아서 한방에 끝내고 싶은데 하나만 낳아야 합니다. 바꿀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으로 온전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설교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가장 잘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과 목적이 가미되지 않은, 하나님의 뜻이 듣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설교이어야 합니다.

전도자의 역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아주 단순하게 증거합니다. 바울의 역할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바로 ‘delivery man’입니다. 그는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 15:3)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듣고 보고 배운 복음을 그대로 각 교회에 전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받은 대로 전하는 일, 이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최초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아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하와에게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받은 대로전했을까요? 아담이 잘못 전했는지, 하와가 잘못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탄의 유혹 앞에서 하와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전하셨던 내용과 다른 내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6-17)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3:2-3)

 

만일 하나님이 아담에게 전했던 말씀과 전달받은 하와가 이해하는 말씀이 큰 차이가 났다면 주의하고 조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차이는 아주 작고 불투명합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가 주고 받은 복음은 받은 대로 전한 것이 아니라 받은 것에 자신의 이해를 더한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이 미묘한 차이를 예리하게 파고들었고, 아담과 하와는 시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초대교회에도 복음을 받은 대로 전하지 않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들의 철학과 이해와 이익을 결부시켰습니다. 그들의 철학과 관련해서 영지주의라는 대단한 이단이 나왔고, 유대민족 중심의 복음에 대한 이해는 할례와 관련한 잘못된 복음을 생산했고, 자신의 만족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부 성도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예수파로 교회를 나누었습니다. 복음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이익과 뜻으로 풀어 사용할 때 복음으로 오히려 성도와 교회를 해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2.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음을 과연 어떻게 받은 그대로 이 세상에 전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받은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될 때 그 복음이 우리 안에서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4-6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4-6)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춰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4절에 의하면 혼미하면어떻게 될까요? 바울은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를 섞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 복음 전하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복음과 비복음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드는 한 메시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긍정의 힘으로 유명한 조엘 오스틴 목사를 아실 겁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휴스턴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 목사입니다. 그는 아내인 빅토리아 오스틴 또한 목사로 교회를 함께 섬깁니다. 얼마 전에 빅토리아 오스틴 목사는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순종의 한 면만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할 때 기쁨을 얻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모두가 깨닫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아올 때, 예배를 드릴 때, 사실은 하나님을 위해서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메시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듣기 좋은 말들로 구성된 이 메시지는 사실 복음과 비복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 옳고 좋은 말로 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은 우리의 기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이 성취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우리가 즐거워하고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고 환란 가운데 있어도 믿음으로 살고 말씀으로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때로 믿음 때문에 가족을 잃고 가진 것을 빼앗겨도 슬픔과 눈물을 참으며 예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통해서 복음이 비틀리고 복음의 비복음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사람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교회는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받은 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받은 복음에 우리의 생각과 욕심과 이해를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두렵고 슬픈 교회의 현실입니다.

 

3. 복음의 핵심 - 죽음과 부활을 내 삶으로

 

제가 조금 전에 드린 질문을 다시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음을 과연 어떻게 받은 그대로 이 세상에 전할 수 있을까요?” 다시 본문을 봅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후 15:3-4)

 

이 말씀을 보시면 먼저 사도 바울이 받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고백합니다. 그가 전한 것은 성경이 예언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로 성취한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각 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자 전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안에 복음에 대한 어떠한 왜곡도 없이 받은 것을 그대로 전한다고 자신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받은 복음을 그대로 왜곡 없이 전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이 두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받은 대로 전할 수 있는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전하는 복음을 내 삶에서 먼저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전하는 바울은 자신의 죄에 대해 날마다 죽고, 교회와 성도를 위해 날마다 죽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다시 살아납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위해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울에게 비취고 바울의 삶은 맑고 깨끗하게 닦인 거울이 되어 그 복음을 세상에 두루 전합니다.

 

4. 나의 나 된 것, 은혜에 의지하다.(15:10)

 

오늘날 교회가 증거하는 복음에 왜곡이 일어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왜 우리가 받은 대로 전하지 못하는지 알시겠습니까?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과 우리의 삶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데 우리는 작은 손해도, 작은 상처도, 작은 고통이나 어려움도 경험하기 싫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에서 당하신 죽음인데 우리는 십자가를 목이나 귀에 거는 악세사리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죽음이 없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부활의 영광도 없는데, 도대체 죽지는 않고 부활만 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얻되 그 영광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은 거부하고 싶고, 하나님의 자녀는 되고 싶지만 그 아들이 지고 간 십자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는데, 나는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조금의 수고도, 땀 흘림도, 헌신도 아깝기만 합니다. 복음의 왜곡은, 고후 4:4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내 마음이 어두워지고, 내 삶이 복음과 멀어질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삶으로 복음을 거부하거나 비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죽음에 있고, 함께 부활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한 때 자신이 복음을 가로막는 포악자였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복음을 삶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은 나의 힘일 수는 없습니다. 내 능력과 지혜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4:10) 바울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니,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시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복된 일군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좋은 거울이 되어 왜곡 없는 복음만을 전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초대교회에도 그랬고, 사도였던 바울과 베드로 또한 그랬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완전한 복음의 거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더욱 그 은혜에 의지하여 우리가 오직 받은 사랑과 능력의 복음을 그대로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복음 증거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먼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잘 닦여진 마음과 삶으로 복음의 좋은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웃에게 하늘의 은혜와 사랑을 허락하시며, 능력과 영광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투명한 거울이 되는 성도와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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