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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ing Day- 6. Appraisal na kim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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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9 Blessing Day- 6. Appraisal

              

                          http://vimeo.com/chodaepa/10-12-2014

 

본 문 :마태복음 1238-45절 말씀

제 목 : Blessing Day 6. Appraisal

 

지난 주에 재융자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어서 한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저의 재정 상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저를 상담하신 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몇 일 내로 한 사람이 목사님 집을 방문할 거예요.” “왜요?” “집을 평가해야 하니까요. 준비하고 계세요.” “무슨 준비를 해야 하나요...?” “아무래도 집이 좀 정리되어야겠지요. 혹시 부숴지거나 구멍이 나있거나 너무 지저분하지는 않으세요? 그런 거 있으면 손 좀 보세요.” 사무실을 나오는데 그 분의 말이 귀에서 웽웽거렸습니다. “부숴지고 구멍나고 지저분하고....”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저희 집을 보지도 않고 정확하게 표현하셨을까요?

 

이제 저희 가정이 그 집으로 이사를 들어간 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집을 그리 잘 관리하는 편이 아닙니다. 저희 집 반지하 한 쪽은 가일이가 축구를 한다고 공을 뻥뻥 차대는 바람에 Drywall 여기저기 금이 가고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가구를 옮기다가 잘못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천장이 긁히고 구멍이 두 개나 뻥 뚫려 있었습니다. 2층 저희 방에는 한 5년 전에 비가 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페인트가 여기저기 일어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욕실마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건 좀 지저분해서 차마 설교시간에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자녀 셋이 자란 흔적들이 집 안 곳곳에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언제 집이 이렇게 망가졌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딱히 언제....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살다보니 그런 것이고, 또 그것이 살아온 흔적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너무 편하고 익숙한 집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가 온다는 것입니다. 집을 평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집 전체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이 집의 Value가 얼마인지, 얼마까지 융자를 해줄 수 있는지를 본다는 것입니다.

 

제게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어떤 때일까요? , 정말 수리하고 정리하는 일에는 젬병인 제가... 게으른 제가 드디어 집수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사람을 부를까요?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저를 기가 막히게 잘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교회당 수리하는 일을 지난 5년간 했더니 그런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페인트칠도 잘할 수 있고, 벽에 구멍 나고 crack된 것도 잘 때울 수 있습니다. 다만 좀 느리고 실수가 많을 뿐입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온 집안을 뒤집어 놓고 있고, 이번 주가 지나야 끝날 것 같습니다. 조만간 저희 집을 방문하시면....아주 작은 변화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집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귀신?

 

저는 어릴 적부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서 좀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적에 귀신이라 하면 머리 풀고 흰 소복을 입고 있는 상상을 했는데, 본문을 보면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다가 일곱을 데리고 들어온다고 하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의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어떤 귀신으로 생각하십니까?

 

성경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고 지배하는 악령들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귀신도 그런 악령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근거는 마 12:22에 있습니다.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12:22) 이후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에 논쟁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귀신은 어릴 적 제가 상상했던 소복입고 머리 푼 귀신은 아니지만, 분명히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악한 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중에서 43~45절에 나와 있는 더러운 귀신을 그렇게만 보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각각 다른 종류의 기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하나로는 안되니까 일곱 귀신이 협력한다는 이해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본문의 귀신을 글자 그대로 인격화해서 해석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입니다.

 

2.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악한 세대

 

몇 주 전에 제가 말씀을 전하는 중에 예수님이 주신 비유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비유를 이해할 때는 그 배경과 목적을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배경이란 어떤 상황 속에서 누구에게 이 말씀이 선포되는가에 있고, 목적은 왜 이 말씀을 주시는가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43-45절의 말씀을 비유의 관점에서 다시 보려고 합니다.

 

38절과 45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요, 둘째는 이 악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귀신이 들렸다라고 말하는 영적인 현상과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이 악한 세대가 보여주는 상태은 서로 일치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귀신에 들렸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그 세대를 놓고 일곱 귀신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성경은 종종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마 12:22에는 재미있게도 정말 그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뭘까요? 22절에서 성경은 그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을 왜 비유로 주시는지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13:13) 천국의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복음을 듣지 않으려 하고 보지 않으려 하는 악한 세대의 영적인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받으면 이 말씀을 그들을 살리는 말씀이 될 것이지만 그들이 마음의 문을 듣고 이 말씀을 들으면 그들은 이 말씀이 자신들을 향하는 말씀인 줄을 모르고 그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영적인 상태가 더러운 귀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마음, 성령의 집

 

성경은 자주 우리의 마음을 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2에서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라고 했고, 요한14:13에서는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1 4:13)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처소가 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성도가 마음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악한 생각과 더러운 욕심이 성령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도행전 5:3에서 말씀하시기를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5:3)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했던 생각, 하나님을 속이고 헌금을 통해서 자신의 만족을 구하려고 했던 것을 사탄이 그 마음이 가득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판단, 생각, 욕심, 결정을 영적인 문제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천국의 복음에 대해 눈과 귀를 닫고 마음을 닫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악한 세대에 대해 귀신 들린 현상으로 설명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들어서 영적인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현실과 천국의 복음을 거부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적대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악한 세대의 영적인 현실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봅시다. 원래 바리새파는 ‘be separated’의 뜻을 가진 분리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으로 스스로를 거룩하고 경건하게 구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로 불릴만큼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중심에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는 바리새인을 율법사 혹은 서기관으로 바꿔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한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게 하는 회복운동을 주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43절에서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라는 말씀과 병행됩니다. 한 때 그들은 스스로를 경건과 거룩함으로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 그런데 그들이 지금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거부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12장에서 그들은 아무리 복음을 가르쳐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4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것은 의논합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거리로 나가서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22절에서 귀신이 들려서 눈멀고 말 못하는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오히려 매도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바로 43-45절의 말씀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12:43-45)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적 상태를 원래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에게 장악된 상태라고 비유하신 이유가 이해되십니까?

 

4. Appraisal의 때가 옵니다.

 

성도 여러분! 저희 집은 언제 그렇게 부숴지고 더러워졌을까요? 하루 아침에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 저는 큰 일이 난 줄로 알고 바로 고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집은 10년에 걸쳐서 아주 오랜 기간 천천히 부숴지고 구멍나고 더러워졌습니다. 조금씩 벽에 금이 가고 천정에 얼룩이 지고 구멍이 나고 여기저기 못자국이 생기고 손때와 국물이 묻고.... 아주 천천히 우리의 눈과 감각이 그 더러움과 무너짐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집에 이렇게 문제가 많이 생겼는데도 전혀 불편함이나 불평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appraisal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시각이 아닌 그의 시각으로 집을 한번 보니까 엉망진창입니다. 내가 얼마나 편하고 문제없이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각으로, 이 집의 객관적인 가치와 현실을 보려고 하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듣고 깨달으면 집을 고치고 깨끗하게 하겠지요. 앞으로 집을 좀 더 잘 관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보고 듣고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 집이 엉망이 되겠지요. 아무도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본문의 비유를 주시기 전에 먼저 심판을 언급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37) 또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꾸중을 그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확대하십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12:41-42)

 

예수님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보고 듣고도 믿지 않는 그들, 한 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과 삶을 정리한 적이 있었던 그들, 그러나 더 큰 교만과 아집이 그들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셔도 오히려 메시야를 죽이려는 그들..... 예수님은 심판의 때, 평가의 때, appraisal의 때가 있다고 그들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비유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바로 한 귀신이 나갔다가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온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큰 죄와 악이 바리새인들과 그 세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방인이면서 복음을 접했던 니느웨 사람들이나 남방 여왕이 그들을 평가하고 손가락질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집을 잘 관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사시는 집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깨끗하고 품위 있게 관리하고 계십니까? 구멍 뻥뻥 뚫려 있고 여기저기 금이 가고 부숴져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여러 손때가 묻어서 지저분하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우리의 마음과 삶에 appraisal day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한 때 저희 집도 깨끗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때 저도 회개하고 마음과 삶을 정결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 함께 젖어드는 나태함과 게으름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아마 좀 더 빨리 집수리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했던 우리들, 한 때 구원의 복음에 엎드렸던 우리들, 한 때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기로 결단했던 우리들, 한 때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헌신한 적이 있던 우리들.... 우리는 아주 천천히 무너지고 아주 편안하게 망가지고 아주 익숙한 구멍 숭숭 뚫린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숴지고 무너진 모습이 더 익숙하고, 더러워지고 지저분한 모습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과 사역에 대해 적당한 타협이 더 합당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엄중하게 경고하고 계신 appraisal day를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삶에 대해 appraisal을 하실 주님의 시선으로 우리를 다시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Appraisal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우리를 평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눈과 귀를 열고 마음과 삶을 열고 그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의 집을 정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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