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essing Day-8. 청년 신앙 | na kim | 2014-1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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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은 아래 빨간 글씨를 클릭해 주세요. http://vimeo.com/chodaepa/11-09-2014
본 문 : 열왕기하 20장 4-6절 말씀 제 목 : Blessing Day – 8. 청년 신앙 지난 주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 중에서 소위 마왕으로 불리던 가수 신해철의 죽음이 있습니다. 나이가 저와 비슷하고 동시대에 대학을 다녔고, 그가 만들었던 노래를 불렀던 세대였기 때문에 좀 남다른 감정으로 그의 죽음에 관한 여러 기사와 이야기들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 어르신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요즘 저는 좀 우울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에 있던 사람들이 질병이나 사고, 혹은 여러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내게도 그리 멀리 있는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아내와 자녀에게 남긴 글과 마음을 보면서, 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오늘을 참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잘 정리된 삶을 살지 않으면 언제 맞이할지 모르는 죽음 앞에 참으로 부끄러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facebook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이 한편 있습니다. 아마도 공익 광고로 만든 것 같은데요, 지난 2주 동안 가족을 떠나서 생활하면서 봐서인지 마음이 더 많이 뭉클했습니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동영상 1) 나이를 결정하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나이를 말할 때 태어난 때로부터 이 세상에서 살아온 날들을 계산합니다. 저는 이제 48에서 49세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을 셀 수 있고 알 수 있다면 좀 다른 방식으로 나이를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제게 100년의 시간을 주셨다면 이제 저는 51년의 시간이 남은 것입니다. 남은 시간을 통해서 그 사람의 나이를 다시 결정하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흔히들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태어나서 먹어가는 나이도 중요하지만 얼마를 더 살아서 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꽤 많이 이런 방식의 시간 계산법을 사용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코인을 넣고 직접 세차를 해보셨습니까? 어떻게 하십니까? 딱... 준비를 해놓고, 시작...과 동시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손이 안보이게 차를 닦지 않습니까? 요즘 인기가 좋은 이종 격투기를 보십시오. 5분 3회전을 합니다. 매 회마다 1분이 남으면 부저가 울립니다. 그리고 코너에 있는 코치들이 외칩니다. “야! 1분 밖에 안남았어. 밀어붙여!” 혹은 “1분 남았어. 조금만 더 버티면 돼!” 남은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가장 좋은 결과를 얻자는 것입니다. 어디 그런 것 뿐 입니까? 우리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수많은 프로젝트와 정해진 기간에 납부해야 할 몰게지와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하는 스케쥴 속에 살아갑니다. 남은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에 빠집니다. 어제 저녁 인디언 원주민 지도자 세미나를 마치고 아침에 일어나서 피닉스로 내려가서 예약된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피닉스에 가면 3-4분의 목사님을 만나야 했고, 식사를 해야 했고, 2시 30분에는 차를 반납해야 했고, 3시 55분에는 비행기에 탑승해야 합니다. 계획된 시간을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제가 얼마나 스케쥴을 점검하고 남은 시간은 계속 계산했는지 아십니까? 나는 지금 피닉스까지 200마일이 남았고, 내가 가진 시간은 앞으로 7시간 30분이고.. 그래서 휴게소는 3번쯤 들를 수 있고, 각각 20분 정도 쉬고 밥은 누구와 먹고 어느 집을 얼마동안 방문하고.. 뭐 이런 계산을 하고 점검을 하면서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여행에서 실패하지 않는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이라는 여정에 얼마의 시간을 더 가지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남은 나이는 얼마 쯤 될까요? 2. 그의 15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성경은 히스기야라는 한 왕을 소개합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누구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참 놀라운 사람입니다. 그는 유다에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왕입니다. 우상을 부수고 제단을 허물었습니다. 당시 가장 강대국이던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이깁니다. 부족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행이 닥칩니다. 전쟁에는 이겼지만 육신의 질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에게 삶을 정리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왕하 20:1)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의 기도를 보십시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 20:3) 그는 자신의 삶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신실하고자 했던 여정을 보시고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15년을 더 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 우리가 점검해야 할 기도의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다고 합시다. 기도와 응답, 영적이고 선한 것입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15년의 시간을 더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 것은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히스기야의 15년은 부정적입니다. 그는 쉽게 교만해졌습니다. 그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의 승리했고 죽을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베론의 왕은 두려워하게 됩니다. 작은 나라 유다에게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신을 보내서 유다를 정탐합니다. 히스기야는 마음껏 교만했습니다. 앗수르도 물리쳤고, 질병을 이겼는데, 이제 신흥 강대국이던 바벨론까지 자신을 찬양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바벨로의 사신에게 자신이 얼마나 강한 왕인지, 유다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는 사신들에게 유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줍니다. 여러분!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무엇을 보였어야 했을까요? 바로 그들을 앗수르로부터 지키셨고, 자신에게 15년의 시간을 더 허락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교만을 책망하고 그가 보여주었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앗수르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던 왕인 그는 바벨론에게 결국 나라가 멸망당하게 되는 첫걸음을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15년 동안 걷게 됩니다. 그의 15년, 차라리 얻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15년입니다. 이 시간을 얻지 않았다면 그는 종교와 정치를 개혁한 선한 왕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부흥을 인도했던 왕이었을 것입니다. 15년을 더 살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 헌신한 왕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는 기도의 응답으로 15년의 시간을 더 살았지만, 그의 교만으로 그 시간을 어리석게 사용했습니다. 인생의 가치, 시간의 가치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사용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했는가에 있습니다.
3. 청년 신앙으로 살다. 성경은 때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이전과는 다르게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삭개오는 이제 재물에 헌신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는 삶을 결단합니다.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로 결단합니다. 심지어 이전에 살았던 모든 날들보다 더 귀한 단 하루, 아니 단 반나절의 시간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한 편에 달려 있던 강도는 범죄하며 살아온 인생이었지만 그의 마지막 짧은 시간을 예수와 함께 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실까요? 인생의 가치, 시간의 가치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사용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했는가에 있습니다. 시간의 길이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하여 무엇에 헌신하는가 하는 것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시작에서 함께 보셨던 동영상은 우리의 남은 인생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지금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면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얼마 남았는가?”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대로 이렇게 살고 있다면, 지금처럼 오늘처럼 살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남은 인생에 얼마의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되는 것일까요? 내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온전히 나의 마음과 삶을 드리는 시간, 온전한 믿음으로 헌신하는 시간, 믿음으로 사는 시간, 정신 똑 바로 차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시간... 얼마일까요? 청년이라 함은 앞으로 살아갈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청년들은 신앙에서도 청년일까요? 다른 말로 하면 신앙에서도 살아갈 물리적인 시간이 많은 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헌신할 시간도 많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에서의 청년과 물리적인 나이에서의 청년은 다릅니다. 히스기야와 같이 15년을 더 살았지만 이전에 그가 헌신하고 살아온 삶을 뒤집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15년이라면 그는 신앙에서의 청년일 수 없습니다. 15년이 아닌 30년을 더 산다 한들, 아니 60년을 더 산다한들, 심지어 100년을 더 산다한들 그의 삶이 목적과 가치를 상실한 삶이라면 어찌 청년의 신앙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청년의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허락된 믿음과 가치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80에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의 40년의 사역은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헌신의 시간이었습니다. 청년의 시간이 지나고 예수를 믿는 바울은 그때부터 다시 청년의 신앙으로 삽니다. 인생을 허락하신 가치에 불태웁니다. 그들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그저 흘러가는 인생으로 살기를 거부했습니다. 시간의 넓고 깊은 강물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일을 결정하고 최선을 다해 시간의 강물을 헤엄치며 살았습니다. 가장 푸른 청년의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4 “나의 15년을 주옵소서!” 한국에서 교회는 섬길 때 95세된 할머니가 한 분 있었습니다. 정말 정정하셔서 아파트 계단도 오르내리시고 교역자들 이름도 다 기억하셨습니다. 하루는 권사님들을 모시고 심방을 갔더니 나이 70대 중반이셨던 한 권사님의 등을 톡톡 두드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좋을 때다... 나도 10년만 젊었으면 이렇게 심방 다닐텐데....” 그 말을 듣고 혼자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분이 10년 젊으시면 85세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할머니는 10년 전에, 10년 더 젊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움직일 수 있을 때 심방도 함께 다니며 다른 성도들을 위해 헌신하며 사셨을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발랄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참 좋은 때다...”라고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하고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가면 지금과는 다른 삶, 건강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내가 그 어리고 젊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더 이상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나이와 삶의 상황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우리들 앞에 늘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고 내 삶이 더 발랄하던 때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교회도 이제 어르신들이 많아졌습니다. 참 좋습니다. 청년들과 어르신들이 잘 조화된 좋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편으로는 어르신들 앞에서 나이를 설교하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준비하면서 좀 불편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 모두거 오늘 말씀의 중심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시간’이라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서 생명의 길로 나와 죽음의 길로 갑니다. 성도 여러분! 흐르는 시간의 강물 속에서 그저 흘러가서 죽음을 기다리는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가장 의미있게 가치있게 살기로 결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까지 청년으로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하여 청년으로, 청년의 신앙으로 살아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젊어도 기다리는 삶을 살면 청년의 신앙이 아닙니다. 어르신들이라도 목적있는 삶을 살면, 그 목적에 헌신하는 삶을 살면 청년의 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가치와 목적이 중요하고 무엇에 헌신하며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2015년, 우리 교회의 표어를 ‘청년 신앙 초대교회’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믿음으로 사는 목회자가 되고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도 15년의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우리가 믿음의 청년이 되어 주님이 허락하신 이 모든 시간에 가장 뜨겁게 헌신하겠습니다.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게 허락하신 인생을 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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