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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25. 성탄 감사예배 김나래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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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25. 성탄 감사예배

 

* 본 문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

* 제 목 :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삶

 

‘존 스토트’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어떤 외적인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격이며, 그 인격과의 인격적인 관계다.”

 

신앙의 본질이 예수님의 인격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로마노 과르디니’라는 신학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인격으로 있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사람 각자는 원천적으로 본질적으로 하나의 인격이 된다. 이것은 취소되지 않는 인간의 특성으로 그의 인격의 내면성과 가치에 기초를 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그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으로 살면서 보여주신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성들을 말합니다.  그 특성들은 자기 안에 있는 가치와 목적에 근거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핵심적 가치는 손상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목적은 구원의 은혜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격은 창조적 인격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과 구속적 인격으로서의 십자가의 헌신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상함, 고결함과 십자가의 겸손과 헌신,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함이 예수님의 인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존 스토트는 기독교의 본질이 예수님의 인격일 뿐만 아니라 그 인격과의 관계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맺어진 관계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은 자기만족적이고 폐쇄적인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적 인격은 만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격은 자기가 아닌 사물, 사상, 다른 사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향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면서 영성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설명하시면서 요한복음 15:7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나누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함께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은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성장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더 나은 사람으로 더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비로소 사람이 아닌 사람을 지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고, 사람의 가치와 목적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가치와 목적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1. 세 번의 고백

 

우리가 어제 주일 말씀으로 갈 2:16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셔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사람이 가진 모든 한계와 연약함을 극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율법과 그들이 만든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가치있고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용하는 이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위대한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한 청년을 좀 특별하고 뛰어난 랍비 정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절대적 진리와 가치, 혹은 권위를 뜻합니다.  예수를 우리를 구원하는 절대적 진리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First name과 Last name이 아닙니다.  이 말은 “예수는 나의 그리스도입니다.”라는 선언이자 고백입니다.  

 

바울은 이 고백을 하고, 그 다음 구절에서 더 담대한 고백을 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세상이 기다리고 사모했던 절대적 진리와 권위, 즉 그리스도입니다....”라과 고백했던 바울은 이제 순서를 바꾸어서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그 무엇이나 누구가 아니라 바로 예수입니다”라는 담대한 고백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그의 군사력이 아니라, 로마의 돈과 권력이 아니라, 쾌락과 즐거움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고결한 가치와 권위는 예수의 십자가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갈라디아서 2장 16절 한 절에서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입니다”라는 고백에서 “그리스도는 예수입니다”라는 좀 더 강력한 고백을 하고, 마지막으로 ‘예수’를 빼고 ‘그리스도’라는 단어만 사용합니다.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앞에 구절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확정하고 더 이상 예수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고백을 생각하면서 2:16을 읽어 보실까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우리가 압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예수라고 고백하고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감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입니다.”

 

2.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안타까움 / 다른 복음

 

문제는 갈라디아 교회가 이 고백과 삶을 실천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는데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신앙의 고백이자 삶의 가치선언인데... 이것이 인격이 되고 삶이 될 때 우리가 성도로 사는 것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인데... 갈라디아 교회와 성도들은 이 고백과 삶을 살아가는 일에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근심은 이 교회가 신앙과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갈 1:6-7에서 그는 갈라디아교회와 성도들에게 인사한 다음 바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6-7)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서 떠나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원리, 즉 다른 그리스도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흔들었던 다른 복음이 바로 유대주의이며 율법주의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과 삶에 집중할 것인가?  그것으로 부족하여 다른 그 무엇인가를 채우고 보완해야 하는가?라는 것은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있었던 논쟁이었습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비록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했지만 예수 아닌 다른 것을 구원의 논리에 적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형성되고 그들의 삶이 고상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는 구원을 얻기에 부족하고 충분하지 않으며 그들의 율법적인 행위로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도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가장 가치있는 인생이란 어떤 삶일까요?  1세기의 성도들은 세상의 모든 근심과 시험에서 벗어난 구원을 얻는 삶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십자가의 은혜와 율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생을 가장 가치있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세상을 살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사는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인생입니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3. 내 안에 그리스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듣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바울은 ‘다른 복음’에 마음과 생각과 삶을 빼앗기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이 구절을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가 나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은 나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고 예수는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나의 그리스도가 되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섬기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섬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통함을 통해서 예수가 내 안에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의 가치와 인격과 목표가 내 삶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4. 첫 걸음에 마지막 걸음을 생각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회에 때를 따라 절기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절기들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일까요?  유월절이나 부림절이나 신약교회의 부활주일이나 성탄절이나 각각의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절기들의 공통의 목적과 의미가 있습니다.  한 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념하라!”에 있습니다.  기억하고 기념하며 내 삶에서 그 의미와 목적을 실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함께 있습니다.  성탄절은 우리에게 다가오신 첫 발걸음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 그 멀고 험하고 높고 거친 길을 우리 주님은 사랑으로 건너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복된 성탄절에 예수님의 마지막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바울은 그 발걸음을 해석하기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발걸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발걸음은 나와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이 박혀 있습니다.  결코 다른 발걸음을 꿈꾸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해 고정된 마지막 걸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탄절에 우리의 발걸음을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념하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마지막 발걸음을 고정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우리가 걸어야 하는 새발걸음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걸으신 그 멀고 험한 길,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우리가 이제 주님을 향해 주님과 함께 걷겠다는 아름다운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의 평강과 은혜가 교회와 가정과 성도들의 삶에 함께 하기를 축복하면서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발걸음을 사모하는 2023년의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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