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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4 주일예배/은혜란 무엇인가? 김나래 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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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호세아 2:23

* 제 목 : 은혜란 무엇인가?

 

얼마 전에 아주 잊지 못할 꿈을 꾼 일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보는 의사 앞에 앉아 있고, 의사가 저를 검사한 차트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주 불쌍하게 보인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3년 전에 받았던 암 수술이 잘못되었습니다.  다른 부위에서 재발했고, 당신은 앞으로 1년 정도를 살 수 있습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제가 그 자리에서 잠시 멍하니 생각하다가..... 벌떡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일어나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꿈이 꽤 생생했기 때문에 의사의 말과 표정, 저의 당황스러움과 두근거림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제가 의사 앞에 앉아있던 짧은 시간...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1년이라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왜....?”였구요, 그 다음에 든 생각은 “어땋게 하지?”였습니다.  잠에서 깬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슴은 두근거리는데.... 고민은 계속되었습니다.  꿈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동안 느꼈던 절망감...혹은 두려움은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참 연약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 시간의 끝을 걷다.

 

제가 지난 수련회에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사진1)  여러분은 이곳을 잘 아실 겁니다.  아침에 해변으로 산책을 하는 중에 문득 이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말씀 드린 꿈을 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꿈에 연결된 고민을 하던 상황이라.... 저기 바다를 향해 끊어진 길이 제가 꿈에서 봤던 1년 남은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썼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길은

만드는 것일까?

기다리는 것일까?

 

길의 끝에서

한 걸음만큼의 용기를 고민하며,

 

하늘에 묻는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인생의 길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시기를 기다리는 과정일까요?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시간의 끝을 살고 있습니다.  내가 내딛는 한 걸음이 바로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는 순간이며 곧 과거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저만큼 보장되고 남은 시간을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발걸음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보다 가벼울 수 있습니다.  어떤 발걸음은 배 위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갈릴리의 바다위로 내딛는 베드로의 발걸음처럼 무거울 수 있습니다.  길의 끝에서... 시간의 끝에서..... 나는 이 한걸음을 내 힘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합니까?   내가 갈 길을 만들려고 할 때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가 함께 하기를 소원하고, 내가 길을 기다려야 할 때 하나님의 때에 대한 믿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길에 대한 지혜와 때 앞에서 용기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아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2. 호세아서의 역사적 배경

 

선지자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말기에 예언을 했습니다.  그가 선지자로서 예언을 시작하던 때는 여로보암2세, 북이스라엘이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고, 그가 예언을 마치자 북이스라엘은 멸망당했습니다.  그 30년은 북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기원전 753년에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스가랴는 단 6개월 동안만 통치하다가 살룸이라는 신하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살룸은 다시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후 므나헴은 10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앗시리아에 막대한 공물을 바치며 왕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므나헴을 이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를 계승하지만 2년만에 갈릴리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왕조를 형성하고 있던 베가에게 살해당합니다.  베가는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후부터 약 20년 동안 갈릴리를 중심으로 스스로 왕이 되어서 나라를 양분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노리다가 브가히야를 죽이고 북이스라엘을 통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신의 군대 지휘관이었던 호세아에게 암살당합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왕으로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기까지 10년을 다스립니다.  그 마지막 비참한 상황이 열왕기하 17장에 잘 나타납니다.  이미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와 도덕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사마리아는 3년 동안 앗수르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질병과 기근에 죽어갔고. 그럴수록 왕과 관료들은 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시대를 잘 설명해주는 말씀이 열왕기하 17:13-18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 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왕하 17:13-18)

 

2. 고멜과 음란한 자녀의 시대

 

제가 2024년에 소선지서들에 대해 말씀을 나누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구약의 선지서들과 신약의 서신서들은 그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조금 전에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드린 이유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워낙 충격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퀴즈를 하나 낼까요?  우리가 오늘 선지자 호세아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호세아의 아내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네, 고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예레미야나 이사야나 에스겔의 아내의 이름을 아십니까?  다니엘의 아내의 이름을 아십니까?  같은 시대를 섬겼던 다른 선지자의 아내의 이름을 아십니까?  우리는 왜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호 1:2)  

 

음란한 여자가 누구입니까?  고멜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가 복음을 전해야 할 시대를 고멜의 시대라고 말씀합니다.  고멜은 단순한 한 여인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단절되고 소망이 없는 시대입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시대를 자신의 아내로 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희망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호세아가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고 사랑한다 해도... 그가 살아가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그의 시대를 복음으로 섬긴다고 해도.... 호세아는 ‘음란한 자식들’을 낳을 것입니다.  그와 민족의 미래가 더 악하고 어두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희망이 없고 소망이 단절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호세아는 왜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복음으로 살아도 안된다면....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배반하고 떠나는 여인을 다시 데려와서 용서하고 사랑해도... 그 자녀가 음란한 자녀가 태어난다면 왜.... 그 여인을 계속 아내로 섬겨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호세아가 되어서 질문하게 하시고, 호세아를 통해서 대답하십니다.  

 

4. 하나님의 두 가지 준비

 

하나님은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이스르엘’입니다.  ‘흩어지다’는 뜻이 있습니다. 둘째는 ‘로암미’입니다.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셋쌔는 ‘로루하마’입니다.  ‘긍휼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들을 연결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고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흩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절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의 계획을 호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르엘과 로암미와 로루하마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스르엘’의 이름의 뜻을 새롭게 하십니다.  ‘이스르엘’은 ‘흩어버리다’는 뜻이 있는가 하면 ‘파종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로암미’와 ‘로루하마’는 ‘암미’와 ‘루하마’로 이름을 바꾸십니다.  ‘암미’는 ‘나의 백성’이라는 뜻이고 ‘루하마’는 ‘긍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호세아에게 절망을 넘어서는 구원의 길을 준비하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들의 죄와 악의 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시대가 끝날 때 하나님은 구원과 회복의 시대를 준비하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서를 여기까지만 읽으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호세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다시 함께 읽읍시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 이후의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아닌 자들을 바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진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그 너머에 새로운 다리를 세워두신 것입니다.  새 길을 열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셔서 이스르엘에 복음의 씨앗을 심으십니다.  나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들의 회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시대를 열어가시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가슴을 품고 그 시대를 바라보면.... 호세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음란한 여인을 취하여 음란한 자녀를 생산하라고 합니다.  고멜도 절망이요, 고멜로 인해 낳은 자녀는 더욱 깊은 절망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길이 단절된 것 같고,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왜 내가 그런 선택을 해야 합니까?  내 인생의 길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호세아는 원망할 수 있고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혼란스러운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계획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호세아 앞에 놓아두신 길은 지금은 보이지 않고, 아직은 세워지지 않은 것 같으나... 시간과 공간의 창조자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속에 든든히 서 있습니다.  내가 만들지 않은 길을 믿음으로 걷는 것이 선지자의 삶이요, 내가 계획하지 않은 일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순종하는 것이 성도에게 허락된 믿음입니다.  호세아는 담대히 그 길을 가고 순종하고... 스스로 그 시대의 성도와 교회가 걸어야 할 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시대의 본질은 고멜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이스르엘과 로암미와 로루하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우리도 절망하며 우리도 고멜의 삶을 살까요?  아니면.... 단절된 복음의 길의 끝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의 길, 새로운 소망의 한 걸음을 내디딜까요?  (사진1)  저 끊어진 길의 끝은 바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 스스로 길이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으로 시대를 넘어서고, 내 삶의 한계를 넘어서고.... 로암미, 로루하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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