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 홈 >
  • 훈련과 양육 >
  • 포도나무
포도나무
고난에 대한 성경적 이해 - 6. 숨은 그림 찾기 이응도 2011-09-12
  • 추천 1
  • 댓글 0
  • 조회 1947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96/545654

포도나무 성경공부 

6. 숨은 그림 찾기(롬 8:28)


1. 먼저 생각하기


얼마 전 인터넷 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와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오하이오에 산다는 18세, 더스틴 카터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하이오에 사는 올해 18세의 더스틴 카터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입니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 다른 게 있습니다. 허벅지이하 하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다 오른팔은 팔꿈치 밑부터 없고 왼손도 정상보다 짧습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십시오. 그의 특기는 레슬링입니다. 힐즈보로 고등학교 대표선수인 카터 올 시즌 전적 41승 2패로 지역 내 3위를 차지하며 당당 주선수권대회 본선에 올랐습니다. 카터의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이는 우리의 기적입니다. 아들일 뿐 아니라 나의 영웅입니다. 카터의 정신력은 아무도 못말립니다. 몸은 불편하지만 신께서 강한 의지를 주셨습니다.”


카터가 두 다리와 손을 잃은 것은 다섯 살 때였습니다. 수막염균혈증이라는 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간 그는 한때 호흡도 멈추는 등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고비를 세 차례나 넘기고 두 달 반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활발한 성품으로 적극적으로 생활하던 카터는 8학년 때부터 레슬링을 시작했고 드디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장차 영양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연사로도 활동하고 싶어하는 그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제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고 레슬링을 할 수 있어요. 내 힘으로 살 수 있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남들이 나를 안됐다고 생각하는 게 싫어요”


다른 이야기도 하나 소개할까요? 만일 다리가 없는 사람이 의족을 사용하여 달리기를 한다면 얼마나 빨리 뛸 수 있을까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0)는 무릎 아래 뼈가 없는 채로 태어나 한 살 때 무릎 아래를 절단했습니다. 철제 의족을 사용해 걷는 법을 배운 그는 네 발 자전거부터 수상스키까지 섭렵했고 럭비를 하다 다친 뒤 재활훈련 때 육상을 시작해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2007년 4월4일 장애인 육상대회에서 100m를 10초91로 뛰어 세계기록을 세웠습니다. 10초 91…. 믿기십니까? 그는 곧 200m와 400m에서도 1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3월, 일반인과 함께 겨룬 남아공 국내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그는 국가 대표가 되어 장애인 올림픽 뿐만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뛰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고 합니다.


2. 주의해서 성경 읽기

성경에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늘 성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늘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삶의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야곱은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목표가 정해지면 분명하고 단호하게 그 목표를 성취해냅니다. 장자의 축복에 대해서도 그랬고, 아내를 얻을 때도 그랬고, 재물을 얻을 때도 그랬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 47:9 /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그러나, 요셉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선택과 악한 마음이 요셉의 삶을 결정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원하지 않는 불행의 연속, 이것 외에는 요셉의 청년 시절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요셉이 인생의 고비마다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창 39:9 /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창 40:8 /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창 41:16 /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 45:5, 9 /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창 48:8-9 /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요셉이 자신과 삶에 대해 설명할 때 모든 진술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함께 하시며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따르고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찬양하며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3. 깊이 고민하기 - 집착할 것인가? 순종할 것인가?


마음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대답해 봅시다. 여러분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은 야곱과 같은 삶을 원하십니까?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했던 요셉과 같은 삶을 원하십니까?


야곱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소원을 벗어나는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네명이나 되는 아내는 서로 질투하고 싸우고, 12명이나 되는 아들들은 서로 미워하며 죽이고 팔고, 그 중 한 아들은 자신의 첩과 통간을 하고, 어떤 아들들은 잔인하게 한 부족 전부를 칼로 몰살시켜 버리고, 장자권을 준 아들은 자신의 며느리와 관계해서 자녀를 낳고… 제일 사랑했던 아내는 이리 저리 쫓기는 중에 길가에 묻어야 했고, 사랑하는 아들은 들판에서 짐승의 발톱에 찢겨 죽었다고 하고…. 들에서 돌아온 아들들은 아버지를 계속 속입니다. 누구 하나 정 붙일 수가 없고 누구 하나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다 잃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버지의 사랑 밖에는 없었는데 그것을 질투한 형들에 의해 더이상 아버지를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청춘도 빼앗기고 인권도 빼앗기고 사랑도 빼앗깁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통도 그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람들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줄로 알았는데 하나님은 그것보다 많은 것, 그것보다 풍성한 은혜를 채워주십니다. 요셉이 미처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은혜가 요셉의 삶에 밀려듭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죄와 악에 물들었던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시키는 놀라운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왜 야곱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불행했고 요셉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두 사람의 인생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야곱의 ‘소원에 대한 집착’과 요셉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에 있습니다. 야곱은 마음에 소원을 두면 반드시 그것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선택했던 인간적인 모든 방법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했습니다. 그의 삶은 늘 갈등과 분쟁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스스로 얻기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이뤄주실 때 비로소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강물 위에 자신의 삶을 띄우고 사람의 악한 의도가 자신을 흔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신의 대한 계획과 섭리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요셉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했지만 하나님은 더 놀랍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셨습니다.


4. 적용하기


신앙생활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습니다. 숨겨진 하나님의 보화들을 찾아 발견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드림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고난의 인생길 곳곳에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합력하여 이루는 선’이라는 보화들을 숨겨놓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찾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보화를 즐길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보화는 때로는 당장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고통과 눈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happy ending입니다. 하나님의 합력하심과 선을 이루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숨은 보화를 발견하고 환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빅토어 프랑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는 나치에게 가족과 재산과 자유까지 빼앗기고 수용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빼앗기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는 날마다 글을 쓰며 자신의 삶을 지탱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적어 놓았던 그 글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유일한 의미가 되고 힘이 되었던 글을 빼앗기게 되자 살아야 할 이유를 잃게 됩니다. “그래, 내가 발버둥쳐 봐야 뭐하겠어. 나도 다른 사람처럼 그렇게 의미없이 죽어가는거야….” 빅토어 프랑클은 절망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먼저 가스실에서 죽어갔던 한 죄수가 남긴 누더기 옷을 배급받아 입게 되었습니다. 그 옷 윗주머니에 부스럭 거리는 것이 있어서 보니 책에서 찢어낸 작은 종이 한 쪽이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것은 유대인들의 기도문에 기록된 신명기 6:4-5 를 찢은 종이였던 것입니다. 프랑클은 그 글에서 다시 자신이 살아야 할 의미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죽어간 한 유대인의 기도문 속에 그가 다시 살아야 할 이유라는 보화를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험한 처지에 있다 해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살아갈 힘을 갖는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고통스런 처지를 견디면서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사는가?’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아야 할 목적과 이유 없이 풍요를 누리는 삶은 짐승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만이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우리는 그 의미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빅토어 프랑클은 훗날 ‘로고 테라피’라는 치료법으로 심리학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로고 테라피란 소위 ‘의미치료’라는 것인데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는다고 해도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 사람은 충분히 고난의 과정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스틴 카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를 다시 생각해보시겠습니까? 그들의 삶이 왜 아름답습니까? 그들은 어쩌면 절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그들의 삶을 자신들이 발견한 의미로 가득 채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결단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의미로 여러분의 삶을 채우기를 원하십니까? 그 의미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포도나무 모임 소개 안명화 2012.02.24 1 1321
다음글 고난에 대한 성경적 이해 - 5. 고통을 이기는 힘 이응도 목사 2011.09.12 1 1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