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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습관입니다. na kim 201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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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습관입니다.’

실은 제가 얼마 전에 저희 타운하우스 관리인과 좀 다툰 일이 있습니다. 저희 집 뒤에 있는 숲에 겨울에 땔 나무를 좀 쌓아뒀더니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살짝 기분이 나빴습니다. 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벌금이 날아왔습니다. 제대로 정리를 하라는 겁니다. 기분이 더 나빴습니다. 그때가 마침 나바호 선교여행을 가던 때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치우고 정리를 했습니다. 선교를 다녀왔더니 또 벌금이 날아왔습니다. 합치면 꽤 많은 금액이었습니다. 전화를 했습니다. 담당자를 찾았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따졌습니다. 몇 가지 생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전화로 하지 말고 직접 나와서 무엇인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그냥 편지와 말로 하겠다는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당신들에게 Pay를 주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당신들의 직무가 아니라 입주자들이 보다 편하게 살도록 돕는 일입니다. 나와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세요.” 결국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그가 정리하라고 지적한 부분과 제가 정리한 것이 달랐습니다. 서로 오해를 없애고... 그리고 벌금도 없앴습니다. 악수하고 허그를 하고 헤어졌고, 저는 뒤뜰을 아주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왜 그 사람은 저를 꾸짖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교만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교만에 빠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 하나 더 가지면, 무엇 하나 더 하면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자랑하고 싶습니다. 공복인 공무원들이 권력화되는 이유가 그러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목회자들이 권위적이 되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Servantship은 사라지고 Ownership만 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쉽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망각합니다. 자신을 호랑이라고 생각한 여우는 참으로 불행합니다.

사실 예수 믿는우리가 겸손의 의무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겸손을 실천하기 힘이 들까요? 왜 우리는 쉽게 교만에 빠질까요? 어쩌면 우리는 겸손에 대한 아주 보편적이고 속기 쉬운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죄책감과 겸손을 혼동합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죄가 있다는 것과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은 같은 말일까요? 내가 예수를 믿고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을 더럽고 가치없게 여기는 것은 과연 겸손한 것입니까? 그것은 오히려 가장된 교만일 수 있습니다. 겸손함이란 십자가 밑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인정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죄 사하심을 얻고 십자가의 은혜의 인도하심을 받는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은 겸손에 대한 고백과 충돌합니다. 어릴 적 대예배에 참석하면 장로님들의 기도에 등장하는 자신은 늘 먼지 같고 벌레 같고 쓸모없고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낮고 겸손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로님들이 서로 다툽니다. 성도들에 대해 권위적입니다. 내가 고백했다고 해서 내 마음과 삶이 겸손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 우리의 삶은 고백을 배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창조주, 구원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에게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 중에 아무도 예수님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자신의 두 아들을 부탁하되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실 때 하나는 보좌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혀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보좌에는 앉지 않겠지만... 예수님 다음 자리를 노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적인 겸손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 자신의 무릎을 줄 수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내 앞 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문화와 세상의 문화를 구별하셨습니다. 세상의 문화는 지향점이 뚜렷합니다. 높아져야 합니다. 집중되어야 합니다. 많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지 않습니다. 낮아져야 하고 연약한 무리와 함께 합니다. 낮은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십자가가 있습니다. 낮은 성도, 더 낮은 교회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출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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