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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교회, 겸손한 성도 na kim 201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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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교회, 겸손한 성도

 

저는 요즘 낮은 교회라는 큰 제목으로 여러 주일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높은 교회도 있는가?’ ‘교회가 높아질 수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높은 교회의 두 예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에 대해 높은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에 나와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이 교회는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서도 문턱이 높습니다. 문은 열리면 길이 되고 닫히면 벽이 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문턱을 벽으로 만들어버린 교회였습니다.

 

또 한 예는 사람에 대해 높은 교회입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2:2-4) 야고보가 지적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교회가 사람에 대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때 문턱 높은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필요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이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없는 것이 기준이 됩니다. “얼마나 복음이 필요한 사람인가?” 이 하나의 기준으로 교회는 성도를 만나야 합니다.

 

아마도 제가 조금 전에 드린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분은 없을 겁니다. 잘 아는 말씀이기도 하고 당연한 말씀이도 합니다. 문제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에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이고, 야고보 사도 또한 교회에 대해 주는 말씀입니다. 왜 교회인데, 예수를 믿는데.... 마음이 점점 높아지고 고개는 뒤로 젖혀져서 뻣뻣해지고 마음에는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말들이 가득하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교만을 잘난 체 하는 성격이나 습관,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 정도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사람 참 교만해... 거만해...”라는 말을 할 때 대부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쉽게 무시하고 잘난 척 하는 것 같애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 말은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교만은 그런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 교만은 무릎 꿇고 엎드린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 교만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면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패배하고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교만할 수 있습니다. 교만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의 시작은 교만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삶의 태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창조적 관계를 외면하는 데서부터 왔습니다. 교만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관심을 외면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내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관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성공가도를 달릴 때도, 내가 군중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교만할 수 있고, 나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에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주권과 관심에 대해 문을 열고 내 삶을 하나님이 통행하시는 길로 만들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주권과 관심에 대해 문을 닫고 내 삶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만들 것인가? 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신다고 했습니다. 겸손은 내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명과 사역과 가르침과 그 영광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에게서 출발했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38-39)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적을 주시고 이루시고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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