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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질 수 있을까?" na kim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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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질 수 있을까?”

1980년대 초에 한국 사회에 안성기라는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킨 두 영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1981년에 나온 어둠의 자식들이고, 다른 하나는 1982년에 나온 꼬방동네 사람들입니다. 두 영화는 모두 이동철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자식들은 기지촌이 배경입니다. 실제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이동철이라는 작가는 기지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고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소설로 녹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와 같은 여성들이 매순간 상품화되는 골목, 폭력과 마약과 도박이 일상이 되고, 약자가 더 약자를 착취하고 강자는 그 위에 군림하는 골목에서 사는 사람들을 그는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꼬방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둠의 자식들의 후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소설에서 그는 서울 동대문밖 청계천을 끼고 있는 한 판자촌에 주목합니다. 그곳에는 행상, 윤락녀, 기둥서방, 포주, 앵벌이, 무당, 소매치기, 돌팔이의사, 호모, 불구자, 여자깡패, 사기꾼, 건달 등등 온갖 인생들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 두 소설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니면서 두 소설에 함께 등장합니다. 바로 공병두라는 목사입니다. 그는 어둠의 자식들에서는 기지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에서는 판자촌에서 살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공병두 목사, 그는 실은 작가 이용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한 실존인물입니다. 바로 허병섭 목사이라는 사람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목회자로서의 삶을 준비하면서 그에게서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닙니다.

 

한국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 최우수 논문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던 그는 군목(軍牧)으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에 청계천의 빈민들을 만나게 됩니다. 군복무를 마친 후 청계천으로 돌아가서 도시 빈민들을 돕는 활동을 하다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서울 하월곡동 달동네로 들어가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당시 하월곡동은 주로 일용노동자들이 살았고,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면서 도박하고 싸우는 일이 일상화된 동네였습니다. 그들을 위해 섬기고 헌신하면서 그는 목회에 한계를 느낍니다. 그가 섬기는 성도들은 주일 하루 한 시간 교회 나와서 예배하고 돌아가면 남은 모든 시간을 몸을 사용해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몸을 망가지게 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용주들에게 부당한 노동환경과 임금을 강요받으면서도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함께 모여 도박과 술로 탕진했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타일러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는 중요한 결심을 합니다.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이 일용노동자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2년 만에 최고 기술자가 됩니다. 건축 일용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생산협동공동체, 월곡동 건축 일꾼 두레라는 일용노동자들의 노조를 만듭니다.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하고 대신 건강하고 바른 삶으로 인도했습니다. 부당한 노동환경이나 임금 착취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또 한 번의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납니다. 평일에는 노동일을 하고 주일에는 말씀을 전하던 생활을 하던 중에 하루는 경찰에 잡혀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사용자와 노동자들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일용노동 조합원들도 함께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한 사람씩 취조를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경찰들이 목사님, 목사님...”하면서 깍듯이 예우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동료이자 성도들인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하대를 하고 욕을 하면서 취조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미안하고 또 부끄러웠다고 했습니다. ‘... 나는 노가다인 척 했지 아직 완전한 노가다가 아니구나...’ 그는 자신이 노가다인 척 하는 고상한 목사노릇을 계속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왕에 이 교회와 사람들에게 헌신하기로 결단했다면 그들과 완전히 동화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목사가 아닌 목수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교회를 후배 목회자에게 위임하고 그는 완전히 목수로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겸손의 당위성에 대해 동의합니다. 아름답고 선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낮아지는 삶의 현실은 부정하고 외면합니다. 스스로 낮아지려 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낮아지면 다시 높여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오늘 허병섭 목사를 기억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낮아짐이란 믿음과 의지로 선택하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아니고, 고백이 아니고,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가식 아니고, 장식품도 아니었습니다. 겸손은 실천이자 구체적인 삶의 현실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낮아짐을 선택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그에게 맡기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람들처럼 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목사직을 버렸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가장 목사다운 목사로 기억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를 높은 곳에, 일용노동자를 낮은 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은 믿음과 의지로 선택하는 구체적인 삶입니다. 겸손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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